문명의 소외지대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가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이 머물던 옛집
“죽어 이 아름다운 케냐에 나고 싶다. 흑인이어도 좋아”
―흑인빈민가를 지나―
사진「아웃오브 아프리카」박물관 기념품 가게에서
 양영자 선생님과 나는 우선 나이가 같은 또래인데다 두 사람 다 독신이어서 취향이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분의 너그럽고 자상한 성품은 나의 케냐 여정을 알뜰하게 챙겨주었다.
 나는 다른 나라에 가면 문방구를 찾는 취미를 갖고 있다. 우선 그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그림엽서를 살 수 있고 색다른 학용품 몇 가지를 사들고 나올 때면 어린 소녀적의행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양 선생님은 내 뜻을 따라 큰 문방구점으로 안내해 주었다.
 관광수입을 세수의 큰 원천으로 삼고 있다는 나이로비 물건들은 관광객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나는 특징 있는 이곳의 그림엽서를 충분히 골랐다. 그분은 케냐의 자연과 풍물, 그리고 여러 원주민들의 모습이 담긴 책을 사서 나에게 선물했다. 그 책은 값비싸 보였지만 케냐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좋은 자료집이라고 생각되었다. 언제, 어떻게 그 호의에 보답할 것인가 하는 생각은 접어두고 나는 마냥 기뻐했다.
 나는 그분에게 아프리카에 오기 전에 케냐를 무대로 한 「아웃오브아프리카」란 영화를 감명 깊게 감상했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했다. 그분은 나의 말을 반기면서 영화의 주인공이 살았던 그 집이 지금은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다며 그곳을 가보겠냐고 물었다. 새로운 경험세계를 여행지에서 찾고 있는 나에게는 좋은 기회일 것 같아 현경교도와 함께 그분을 다라 나섰다.
 승용차가 나이로비의 중심 가를 벗어나자마자 색다른 아프리카의 전원풍경이 펼쳐졌다. 넓고 광활한 산야에 열대림의 숲들이 울창했다. 한 참 길을 달리던 양 선생님은 「여기 길이 있었는데…」하며 길을 헤매고 있는 듯 했다. 그렇게 이 골목 저 골목을 찾아 헤매는 동안 나는 정말 아프리카에 매료되고 있었다. 한집 울타리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큰 둘레를 잡고 있는 호화 저택 안뜰에는 하늘을 찌를 듯 키가 큰 나무숲이 빽빽이 우거지고 집안의 한적한 분위기를 호흡하면서 남국의 각색 꽃들이 정겹게 피어 있었다.
 참으로 위대한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그곳에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보고 느꼈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풍부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그곳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죽어서 이 아름다운 케냐에 태어나고 싶다. 흑인이어도 좋아’하고 말하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이 마을에서 어쩌다 만나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 목적지인 그 박물관에 다다랐다. 오랜 세월 인공적으로 가꾼 아름다움이 그 집 정원 안에 가득했다. 그분은 영화장면을 상기시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상하게 해 주었다.
 나는 백인부호인 여중인공의 표정이 항상 쓸쓸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곳 박물관기념품 가게에서 아프리카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색상의 사기촛대 하나를 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양선생님은 나에게 흑인들만 모여 살고 있는 빈민가를 멀리서라도 보겠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차로 양선생님은 나의 훌륭한 가이드라고 생각됐다.
 양선생님은 빈민가가 보이는 먼 거리에 차를 세우면서 「저―기」라고 작은 음성으로 말했다. 참으로 게딱지같은 집이란 표현을 빌릴 수밖에 없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 초라한 집들이 큰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면 어떠냐고 물어 보았다. 흑인이 아닌 이곳 사라들은 절대로 저 마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요즈음 나이로비의 치안 상태가 좋지 않아서 보통시민은 해가 진 뒤에는 운전도 삼가는 편이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구분은 마지못해 흑인가로 차를 집입 시켰다. 해질 무렵이란 퇴근시간이어서 귀가하는 원주민들이 큰길에 가득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저 걸어가고 있을 뿐인 그들이 두려운 군중처럼 느껴졌다. 양선생님도 숨죽여 운전하는 듯 아무 말이 없었고 나도 웬지모를 긴장감에 싸였다.
 낮 동안 화려한 나이로비 도심 가에서 백인들을 위해 온갖 궂은 일만하다가 밤이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고 가난이 기다리는 곳을 집이라고 찾아드는 그들의 심경은 참담할 것만 같았다.
 우리처럼 살빛이 다른 사람이 좋은 차를 타고 자기 마을을 버젓이 통과하는 하는 것을 보면 격한 울분이 치밀어 오를 것만 같고, 선량한 심성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성난 폭도로 표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마을 안으로 들어온 것이 큰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미 어찌 할 수 없는 빈민가의 한복판이었다. 아무 죄도 없으면서도 꼭 무슨 일을 당하고 말 것 같은 절박한 생각에 가슴이 조였다. 길을 비켜주는 군중 속을 헤치고 그 마을을 벗어나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교무ㆍ강남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