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중근기병
마음에 오만함 있으면 겸양 사라져<br>겉모습으로 사람 가늠한다는 것 경박해 보여
 사람들을 만나보면 처음에는 잘 모르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무언가 특별한 재주를 한두 가지는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마다의 나름대로 재주가 있으니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가늠한다는 것처럼 경박한 일도 없다.
 어릴 때 짚으로 짚신을 삼는 머슴 옆에 아무리 따라 해봐도 제대로 되지 않더니 짚신  뿐만 아니라 망태기며 멍석까지도 손재주가 뛰어남을 부러워한 나머지 몰래 틈을 내어 짚신 삼는 연습을 해본 기억이 난다. 속에 든 글은 짧았지만 손재주만은 가치 배울만하여 놓치기 아까 왔던 때가 있었다.
 몇 해 전에 옆집에 사시든 할아버지께서 단소를 그럴 듯 하게 잘 부시어 심심하면 옥상에 올라 단소가락을 뽑으시는데 어지나 선율에 매료되었던지 틈만 나면 찾아뵙고 단소강습을 난적이 있었다.
 당신께서 쓰시던 단소까지 주시면서 어쨌든 음을 자유자재로 낼 때까지 아무소리라도 연습한 후에 찾아오라고 당부하셨는데 틈틈이 단소를 불어봐도 소리가 신통치 않고 내 맘대로 나주지가 않으니 며칠 해보다가 내 재주에 무슨 단소를 배우랴 싶어 접어두고 말았다.
 결론은 재주는 재주 있는 사람이 부려야지 아무나 흉내를 낸들 힘만 들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다소 터득하면서 끈기 없음을 대변하는 말로 위안을 삼고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보면 나 같이 재주 없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방노래 한 곡조인들 제대로 할 줄 모른다면 분명 뒤진 인사임이 분명하다. 음치가 아니더라도 한 두곡 자기의 노래를 가질법한데 쉬운 일이 되지 않으니 무능의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어디 그 뿐인가. 수영을 할 줄 아나, 글씨를 예쁘게 쓰나, 말을 조리 있게 하나, 그도 아니면 신체라도 반듯하게 태어나 추남이라는 소리라도 면해야 하는데…
 신언서판 어느 한구석인들 두루 갖춘 곳이 없으니 자신을 일러 덜 떨어진 인사랄 수밖에. 그러면서도 볼 것은 다보고 들을 것은 다 듣고 할말은 다 하며 남들이 하는 일에는 비판을 멈추지 않으려 하며 남들보다 한 수를 더 아는 체하고 가진 체하며 있는 체 하는 재주 아닌 재주를 가지고 있다.
 회광반조의 진리를 도외시 한체 남의 말을 듣기가 무섭게 역겨움부터 낸다거나, 변명의 구실을 찾는데 급급하다가 급기야는 네가 뭔데 당신은 얼마나 잘하는데 그러느냐 든 지, 당신은 당신 일이나 하고 남이사 무슨 일을 하건 상관하지 말고 쏘아 부친다든지 하는 게 실제로는 체면이 있어 과감하게 못한다손 치더라도 속에 그런 마음이 먼저 깃들어 버리면 아무리 충고와 옳은 말을 해줘도 향상이 있을 수 없고 일년을 가나 삼년을 가나 그 모습 그 마음 그대로 남아 발전이 없고 그 모양으로 남아 발전이 안되고 요모양 요꼴로 남아있게 된다.
 마음이 겸허하면 몸은 낮아진다. 마음이 오만함이 남았으면 몸은 더 뻣뻣해지고 겸양은 사라지게 된다. 이 세상 누군들 하루 세끼 먹지 않은 사람 있을까. 내 것 달라고 귀찮게 하지 않은데 왜 그리 남을 미워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누구는 예쁘고 누구는 미웁고 하루에도 열 번씩 떨치지 못하는 철없음이 떠나질 않는다. 또 돈이나 물건이나 내 것을 빼앗아 갈려고 달려들면 미워서라도 욕도 하고 험한 말을 하겠지만 내게 당한 일이 아닌데도 남을 못되게 비하시키고 폄하하는 향기롭지 못한 일을 저지름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세월만 축내다가 어언 오십이 되고 있다.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마저 깨서는 안 되는 게 최소한의 인정인 것처럼 말 한마디라도 남을 헐뜯고 궁지에 몰고 안한 말을 보태거나 이 말을 저 말로 옮기는데 재미를 붙이는 지극히 세속적인 처세에 머물러 만족을 찾으려드니 향상이 되려 후퇴로 변하고 말려 자해야 제자리에 머물고 말일이다.
 이런 재주 저런 재능 다 버리고 오직 눈감는 재주만이라도 가졌으면 좋으련만 내 몸 속에 있는 대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 속에 든 가시는 보이니 눈이 밝아서 잘 보이는가 아니면 가시 보는 남다른 재주가 있어 선지…, 그래 자기 몸 속이 몇 천리라도 떨어졌나 대들보를 못 본다면 눈뜬장님이지 정상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자기를 보기란 참으로 어려운가 보다. 눈을 뜨면 앞만 보이고 뒤는 보이지 않게 한 조물주가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던지 사람은 앞만 보고 살라고 만들었던가 보다. 그러니 조물주의 뜻대로 자개속도 볼 줄 모르고 뒤는 더구나 돌아 볼 줄 모르고 오직 눈앞에 보이는 대로 앞에 것만 보는데 그것도 남의 좋은 점의 대부분은 흘려 스쳐버리고, 험하고 좋지 못한 점만 찾아보아지니 오묘한 이치로 되어 있는가 보다.
 정 볼 것이 마땅치 않거든 눈을 들어 산천을 보며 「산은 말없이 산으로 있고 무심한 구름만 두둥실 떠가는 구나」하고 피로에 쌓인 눈을 씻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쉬운 일조차 무엇에 얽매여 오늘도 어절 수 없는 속인의 심연에 빠져 정처 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도식<교도ㆍ남중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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