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공부<37>/제2편 대종경 성리품
평등과 차별, 대와 소, 유와 무는<br>나누면 둘, 합치면 하나가 된다
 [27] 대종사 선원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대를 나누어 삼라만상 형형색색의 소를 만들 줄도 알고, 형형색색으로 벌여있는 소를 한 덩어리로 뭉쳐서 대를 만들 줄도 아는 것이 성리의 체를 완전히 아는 것이요, 또는 유를 무로 만들 줄도 알고 무를 유로 만들 줄도 알아서 천하의 모든 이치가 변하여도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중에 변하는 진리를 아는 것이 성리의 용을 완전히 아는 것이라. 성리를 알았다는 사람으로서 대와 무는 대략 짐작하면서도 소와 유의 이치를 해득하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아니하나니 어찌 완전한 성리를 깨쳤다 하리요」
 여기서는 대소유무의 이치와, 성리의 체와 용이 중심문제이다. 대소와 유무를 합쳐서 대소유무란 말로 사용하는 것은 원불교의 독특한 단어이다. 우주의 일체세계와 현상세계 그리고 변화를 설명하는 말이다. 대란 우주만유의 근본적인 본체, 소란 천차만별ㆍ형형색색으로 나타나 있는 현상의 차별세계를 말한다. 따라서 대란 우주의 진리, 우주의 본체, 우주의 실체를 말하는 거이고, 소라는 것은 우주의 삼라만상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대란 평등의 진리를 말하고, 소란 차별을 말하는 것이다. 평등이란 만법의 근본 진리의 본체를 형용하는 말이다. 높고 낮고 깊고 얕은 차별, 종류와 이름의 차별이 없는 것이 평등이다. 차별이란 우주만유의 천차만별한 차별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의 경우에 평등은 본래심ㆍ청정자성심을 말하고, 차별은 분별심ㆍ사량계교심을 말한다. 진리의 경우에 평등은 체이고, 차별은 용이 된다. 유무란 우주의 조화 또는 변화를 말한다. 유는 존재하는 것, 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대소유무를 다시 설명해 보면 대는 우주의 본체, 우주 그 자체를 말한다. 소란 육도 사생ㆍ남녀노소ㆍ빈부귀천ㆍ동물 식물 등을 말한다. 유무는 우주의 성주괴공, 만물과 인간의 생로병사, 춘ㆍ하ㆍ추ㆍ동, 풍ㆍ운ㆍ우ㆍ로ㆍ상ㆍ설의 변화, 역사의 흥망성쇠, 인간의 희로애락 등을 말한다.
 이 법문에서는 대소를 잘 아는 것을 성리의 체를 알았다 하고 유무를 잘 아는 것을 용을 알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이외에 대와 무의 진리를 아는 것은 체를 안 것이고, 소와 유의 세계를 아는 것을 용을 알았다고 구별할 수도 있다.
 성리의 세계는 우주와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하여, 대와 무의 세계는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소와 유의 세계는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흔히 대와 무의 진리만 깨치면 된다하여 현실 세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는 편벽된 견해이다. 평등과 차별, 대오 소, 유와 무, 체와 용은 나누면 둘이 되지만 합하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등이 곧 차별이요 차별이 곧 평등이며, 체가 곧 용이요 용이 곧 체이며, 유가 곧 무요, 무가 곧 유인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성리의 체와 용을 완전히 아는 것이다.
 법신불ㆍ보신불ㆍ화신불을 삼신 불이라고 한다. 구별해서 볼 때는 셋이지만 합해서보면 하나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화신 불을 떠나서 법신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 삼라만상이 그대로 법신불의 화현신인 것이다. 우리 마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본래 심은 법신불이요 분별심은 화신 불이다. 반야의 지혜(보리심)는 법신불이요, 사량계교(번뇌심)는 화신불이다. 번뇌심이 잠자면 보리심이 되고, 보리심이 경계에 물들면 번뇌심이 되는 것이다.
 성리공부를 하는 사람은 대소유무의 이치를 마음대로 활용하고, 차별 평등이 하나인 줄을 알아야 하며, 번뇌가 곧 보리요 보리가 곧 번뇌이며, 부처가 곧 중생이요 중생이 곧 부처인 줄을 알아서, 어느 하나에 집착하고 편벽 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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