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해방을 실천하는 예전자적 기능 회복 시급
체제옹호에서 벗어나 남녀의 동등한 참여 제도화 돼야

사진>일본 가나가와 현 여성센터에서 개최된 제1회 동아시아 여성 포럼에 교단에서 4명이 참석했다.
 세계역사상 새로운 종교의 출현을 보면 어떤 종교이건 그 출발에서는 불평등의 타파와 인간해방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종교자체가 또 하나의 억압적인 제도로 정착하고 기존 현실사회의 억압적인 제도들을 뒷받침하게 됨을 발견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한국에서도 기성의 종교들은 유교문화의 가부장적인 전통과 결합하여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제거하기 보다 지속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는 지금 주요 종교로 유교ㆍ불교ㆍ기독교(천주교, 개신교)와 토착종교로 원불교ㆍ천도교ㆍ증산교 등이 있다.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주장도 없지 않지만, 아무튼 유교는 일찍이 3세기 또는 그 보다 앞서 한반도에 전해졌고, 조선왕조에서는 일종의 국교가 되었다. 그 후 조선조 중엽 이후로는 한국문화의 보편적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유교 본래의 취지가 얼마나 성차별주의적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전통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주의를 밑받침해온 이념이 유교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여성의 삶을 가장 기본적으로 규정한 유교의 예의도덕이던 삼종지도와 칠거지악은, 모든 여성의 생활의 구심점은 남자이고 심지어 결혼한 여성의 위치도 극히 불안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하여, 한국에서는 이제 남아의 수가 여아 수를 훨씬 앞지르게 되었고, 1999년에는 6명의 남자 중 평균 1명은 결혼상대자를 찾기 어렵다는 통계가 나오게 되었다. 유교는 이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 한국인의 의식을 가부장적으로 길들여옴으로써 한국의 모든 여성문제의 근원이 되어있으며, 그 후에 불교ㆍ천주교ㆍ개신교 등도 그 자체의 교리를 떠나 이러한 사회통념에 지배당해왔고 그 조직에 있었어도 성차별 적인 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불교는 4세기에 처음 전해하여 한국 전통문화의 발전을 불교와 떼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 불교의 교리는 평등사상을 강조하고 있지만, 승단 내부의 남녀 차별적인 규율이 원래부터 있었던 데다가 유교가 지배하는 조선왕조 사회에 적응하는 가부장적인 성격이 더욱 뿌리깊어진 면도 있다.
 18세기 후반에 들어온 천주교는 하느님 앞에서의 인간 영혼의 평등을 가르침으로써 초기에는 특히 중인계급과 여성들에게 해방 적인 기능을 하였다. 그러나 교리 자체가 남성 중심적인 면을 지닌 데다가, 사제직의 남성 독점이 전제되는 등, 여러 모로 유교사회의 가부장주의를 보강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박해를 겪은 뒤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점차 여성차별을 지속시키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개신교는 전파 시기가 19세기 말엽으로 천주교보다 훨씬 늦었으나 빠른 속도로 교세를 확장하였다. 그리고 외국 여성 선교사들의 활동과 한국 최초의 여성고등학교육 기관이 개신교에 의해 설립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여성이기에 교육과 사회참여의 길이 막혀 있던 젊은 여성들에게 기독교는 곧 여성해방의 길로 비쳤다.
 그러나 선교자들이 주로 이원론적이고 제국주의적인 근본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현실과 쉽게 타협하고 유교의 가부장주의와 결합하여 해방 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엽에 걸쳐 창건된 한국의 토착종교인 천도교ㆍ증산교ㆍ원불교 등은 모두 「후천 개벽」을 표방하여 현실세계의 일대 변혁을 꿈꾸었으며 사회적인 불평등의 타파와 함께 여성해방의 기치를 들고 나온 종교들이다. 특히 이들 신흥 토착종교는 반상ㆍ적서 등의 계급타파와 함께, 과부재혼금지 제도나 축첩제의 폐지 등 구체적인 여성문제들을 혁신하였다. 그 중에서도 원불교는 진보적인 교리뿐 아니라 실질적인 제도화를 통해 상당한 남녀평등을 실현하고 있어 기존의 종단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비교적 모범적인 대안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신흥종교들 역시 교단의 세력확장을 위해 기성사회와의 마찰을 피하는 선교를 하다보니 성차별주의가 구조화되어 있는 현실을 개혁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는 경향이 있다.
 현재 한국의 각 종단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유교는 교단 적인 찍을 갖추었다가 보다는 앞서도 말했듯이 전통적 한국문화의 보편적 이념으로 생활화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천주교 : 무엇보다도 사제직의 남성 독점과 모든 정책결정과정에서 여성이 소외되어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예수의 사제는 그리스도와 육체적으로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여자가 될 수 없고  애초의 열두 사도가 모두 남자였다는 사실을 특수한 역사적 현상이 아니고 예수 자신이 여성 사제를 원천적으로 배제했다는 해석에 따라 교리 차원에서 변화를 봉쇄하고 있다.
 개신교 : 소수의 교단 이에는 대부분의 교단이 여성의 성직참여(여성안수)를 금하고, 정책 결정과정에서 여성이 배제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불교 : 불교에서는 남녀 승려 모두가 사제라기보다 평신도와도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수행자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출가인의 계율과 권한 등 모든 면에서 남녀의 차별이 극심하다.
 원불교 : 신흥 민족종교 중 남녀평등의 제도화에 비교적 성공하여 여성 성직자들의 수효가 오히려 많고 최고 정책의결기구인 수위단원 조차 남녀 동수로 되어 있지만, 교단의 행정직 진출에서는 남자 교역자들이 현실적으로 우세할 뿐더러 이런 사실이 당연시됨으로써 구조적인 가부장제도에 동참하고 따라서 장기적으로 여성 교역자들의 자질 향상과 경험 축적이 봉쇄될 우려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근본적으로 종교가 현실사회를 혁신적으로 개혁해 가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체제 내에 안주하여 교세확장에 급급한 나머지 체제옹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는 범상한 인간에서 신의 뜻이나 부처님의 법에 맞게 살기 위해서는 금욕과 자기희생이 필요함을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는 자칫 인간적이니 욕구, 나아가서는 인간해방의 열망까지도 부당한 개인적 욕망으로 착각하고 잠재우도록 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인간해방에서는 오히려 비종교자 보다도 소극적으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문제점에 더하여 한국에서는 분단 상황이라는 또 하나의 질곡이 남북한 여성 모두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에 힘입어 8ㆍ15해방 훨씬 전부터는 기득권을 유지해 온 남한의 지배 세력은 철저히 남성 중심적인 세력이다. 이들의 계속되는 지배로 남성과 여성 모두가 외세와 독재정부 하에서 생활의 고통을 받았지만, 여성들은 사회진출의 기회가 제한되고 노동에 있어서 동등한 권리와 보수를 받지 못하고, 가정 안에서의 불평등을 감수하는 등 여성 특유의 고통이 더욱 가중되었다. 한편 북한에서는 여성의 사회진출과 그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담당해온 가사노동 등이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겨지기 일쑤다. 또한, 남성 지도자를 정점으로 하여 가족적인 일체화의 순종을 강조하는 체제의 이념이 분단과 군사적 대결상태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지도 몰라도, 그러한 이념의 가부장적 성격을 간과하기 힘들다.
 종교의 궁극적 목적이 부당한 차별의 타파를 포함한 인간해방이고 그 인간해방의 대상인 인간이 여성을 포함하는 인간이라고 한다면, 모든 종교는 마땅히 성차별의 타파에도 앞장서야 옳다. 또한 종교가 추상적 인간이 아닌 구체적인 인간들을 구제 혹은 구원하기 위함이라면 한국의 종교인들은 누구나 분단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의 삶의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통일을 위한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될 것이다. 종교가 종교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종단의 경직화ㆍ보수화 될 가능성을 경계하며 항상 깨어 있고 열려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인간해방을 실천하는 예언자적 기능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각 종단에서 모인 우리 종교분과 회원들은 다음을 우리 행동강령으로 채택한다.
 1. 가부장제의 철폐 없이는 인간해방이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전 사회의 의식개혁을 위해 모든 종교가 앞장선다.
 2. 여성 목사 안수 불허를 포함한 모든 성차별적 규정의 폐지와 일체의 남성 중심적 교리해석을 악으로 규정한다.
 3. 각 종단의 정책결정기구에 남녀의 동등한 참여를 제도화하고 성직자 및 신도들의 성역할 고정을 거부한다.
 4. 분단상황이 남북한 여성 모두의 고통을 가중시킴을 유의하면서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한지성<교도ㆍ종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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