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록 한 가지의 재주로 가진 것이 없지마는 남의 재주를 발양해서 쓸 줄 알면 열 가지 백가지 재주를 지닌 사람보다도 더 위대한 인격자다.
△ 결국 자기 인격을 이룬 뒤에 사회도 국가도 세계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재를 얻어야 한다.
△ 근검 질박한 정신으로 본회 창립의 위업을 완성한다면 우리의 아름다운 이름과 빛나는 역사는 천추 만대에 찬란할 것으로 믿는다.
△ 사치에는 정신적인 사치와 육체적인 사치로 나눌 수 있다. 석가여래는 폐의걸식으로 일생을 지냈거니와 그 정신적 사치의 찬란한 광명은 오늘날까지 사주세계 일체생령의 안목을 부시게 하였다. 그러나 육체적 사치로 유명한 사람이 된 증거는 없다.
△ 전무출신에 한하여서는 의복을 제조할 때에 가장 염가의 것을 택하여 일률적으로 제정하며 염색도 동색을 취하여 그 규칙에 탈선이 되지 않도록 하자.
△ 검소란 창업의 본색이다.
<약력>
○ 1892년 12월 23일 전남 영광 묘량에서 출생
○ 원기 9년 4월 29일 이재철 연원으로 입교
○ 원기 9년 10월 1일 출가
○ 원기 13년 총부 서무부장
○ 원기 17년 총부 농업상조장
○ 원기 20년 9월 10일 도산 법호 증여 받음
○ 원기 25년 산업부장으로 봉직 중 5월 8일 49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심
○ 교단 봉직 19년
○ 제1대내 원성적: 준특등, 공부: 정식법강항마위, 사업: 특등
△ 생애
 아무리 지혜가 있고 덕이 있고 위대한 지도력을 가졌다 하여도 모든 사람이 다같이 숭배하고 받들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여기 악인과 선인이 다같이 고개 숙여 열복(悅服) 자백하며, 그들의 근심과 괴로움을 녹혀주고 새 힘을 얻어 새 사람이 되도록 보살펴 준 보살이 계셨다.
언제나 미타를 잘 부르시고 대학과 심경을 애송하며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과 이소성대는 천리의 원칙이라 하여 공부사업의 표어를 삼았고 평소 사색을 즐기시는 무시선 무처선의 활불 도산 이동안 선생님!
7남매 중 2남으로 탄생하여 26세시에 일산 이재철 선생님의 연원으로 대종사님을 처음 뵈온 후 사은에 대한 법문을 듣고 출가를 결심. 당시 선생님의 가정은 슬하에 5남매를 두고 상처를 하여 출가할 수 없는 형편이었으나 아우에게 모든 살림과 식구들을 5년 동안만 같이 합산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홀연히 출가하셨다.
창립 당시 모든 것이 빈약하고 어려웠던 총부에 오셔서 대종사님의 수족이 되어 뜻을 받드는데 일호의 사심이 없었고, 교중의 일을 하시면서도 「전무출신의 가정이 잘 살아야 공사에 지장이 없을 것이다」하시며 사업계에 투철하신 선생님은 총부 구내 사가의 이모저모를 살펴주셨다. 또한 고향에 내려가시면 밤도 없이 몰려드는 마을 사람들에게 때로는 아버지가 되고 형님이 되어 생활 상담자로서 구비 구비 얽힌 어려움을 해결하여주시고 새 힘을 얻도록 북돋아 주셨다.
선생님에게는 상하의 구별이 없으셨다. 계급의식도 없으셨다. 어느 누구를 대하여도 그 사람의 성격과 특기를 알아서 그 기국을 키워 열어주시고 특성을 살펴주셨다. 어떠한 어려운 사업의 시작도 선생님의 지도면 이루어졌고 모든 심중의 답답함도 풀어주시는 포근한 자비의 나래이셨다.
지혜 자비 용단 지조 이 모두를 이루신 인격의 소유자 도산 선생님은 49년을 살으시고 홀연히 떠나셨다.
「우리 재산 반이라도 주고 도산을 살릴 길 없냐」고 목 메쳐 애통하시는 대종사님과 동지들의 애절한 통곡 속에 조용한 보살님은 눈을 감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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