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제중이라고 대답하겠다.

○. 지극한 신심을 가지면 천만고락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괴로움도 괴로움이 아닐 것이다.
○. 나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반드시 성불제중이라고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생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반드시 신심이라고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 부지런히 정신의 힘을 갖추라. 그렇지 않으면 창황전도함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세월을 허송하고 뉘 탓을 하려느냐.
○. 오전에는 마음이 덤덤하기만 하여 스승님께 향하는 간절한 마음이 나지 않는 것을 걱정했더니, 오후에는 그 마음이 일어난다. 이것이 걱정한 대가인가, 아니면 걱정을 않했더래도 다시 살아났을 것인가.
정말 지극한 신심과 서원이 없다면 빈 껍질이며 가치 없는 사치품의 인간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 내 항상 그리워하는 영산회상은 지금도 우담화가 피어있을 것이다. 보살피고 아끼고 사랑하고 양보하고 감사하는 영원한 보금자리일 것이다. 어리석은 중생도 부처로 변하는 곳일 게다. 대중이 살면서도 싸움과 오해는 없고 웃음꽃 피어나는 극락일 것이다.
○. 무엇인가 잡으려하고 의지하려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마군일까? 모든 선악이 이것으로 씨가 된다. 지옥도 극락도 이 마음이 건설한다.
○. 이기심과 이타심을 대조하는 공부를 하니 이타심이 증장되며, 침울 명랑을 대조하니 경계에 국집 되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지 국집 하고 보면 반드시 열등감, 급속심이 나며 그 마음이 바로 침울성을 가져온다.
○. 중생은 부처를 키우고 부처는 중생을 깨우친다. 부처가 다른 곳에서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중생계를 지나고 시달리고 나면 그 속에서 하나의 깨우침이 생겨 부처가 되고 곧 이 불심은 갖가지 중생심을 바르게 제도해 준다. 때문에 많은 중생을 지내고야 그 중생들을 거느릴만한 힘과 자비가 갖추어질 것이니 중생을 잘 대우해야겠다.
언제나 어떻게 맞이할까, 어떻게 상대할까, 어떻게 활용할까 생각하여 늘 환희 봉대해서 그들의 심정을 상하게 하지 말라.
○. 객진번뇌가 나타나거든 대접도 박절도 하지 말고 구경만 하여라. 대관절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 관찰만 하라. 바로 그것이 대치의 지름길이 되나니.
○. 다 같은 생명이지만 수없이 쓰러져가는 파리 떼들에 대해선 죽음에 대해 슬픔의 말 한 마디 하는 사람도 없지만 개가 죽으니 천도재까지 지내 주었다. 이것이 자기들의 일생에 쌓은 공적에 의해서 받아지는 대가일 것이다.
○. 나의 중생계, 한 가지 경계를 두고 드려다 보면서 내 모습을 보여준다고 감사도 드려보고, 자꾸 보이게 한다고 원망도 하고. 나타난 내 모습을 멸시도 하고, 보기 싫다고 쫓아내려 하고, 흉측하다고 열등감도 내고, 부족을 보고서 겸양도 해보며, 울고 또 웃어보는 징검다리생활, 때로는 경계를, 때로는 나 자신을 미워도 해봤다 반겨도 보고 원망도 해보고 감사도 해본다.
○. 울지 마라. 죄를 지었다고 울면 마음까지 상처가 나니 제발 울지 말아다오. 내일을 위해서 마음을 더욱 챙겨라.
<동산선원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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