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단적 자세 버리고 인류 공통성을 찾자

쉽사리 달라질 것인가?
전자계산기의 개발과 보급을 계기로 70년대는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그야말로 엄청난 큰 변화가 닥쳐올 것만 같다. 우주시대라고 하거니와 달세계 여행을 비롯하여 또 무슨 획기적인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는지 모를 일이다. 그에 따라 사람의 생활양식도 달라질 것이요, 생각하는 태도도 전과 같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이 무척 편리하고 보다 행복스럽게 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랴 마는 그것이 사람의 뜻대로 그처럼 좋기만 할 것인지 매무 의심스럽다. 예기치 못하였던 어떤 새로운 고난에 부딪치지 않으리라고 단언할 수가 없다. 아무리 살기 좋은 시대가 온다기로서니 과연 이 세상에서 생, 노, 병, 사라는 괴로움이 영영 사라질 것이라고 꿈꾸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그에 반비례하여 종교적인 신앙심은 희박하여질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함은 잘못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 흥망성쇠가 있게 마련이라면 어느 종교나 시대를 따라 언제나 꼭 같을 수만은 없음직하다. 지나온 과거의 역사를 보아도 짐작된다. 그의 근본적인 뜻이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신앙생활과 깊은 관계를 가진 여건들의 변천과 추이로 인하여 형태를 달리하여 왔음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70년대라고 하여 종교가 갑자기 어떻게 되리라거나, 되어야 한다고 쉽사리 말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몇 가지 생각할 수 있는 점을 들어보기로 한다.
사람이란 뜻밖의 감당하기 거북한 일을 당하면 인간으로서의 무력함과 덧없음을 새삼 느끼게 되며 새로이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거나, 또는 믿는 마음이 다시금 독실하여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하도 딱한 경우에 부지불식간에 하느님을 부르는 사람, 또는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사람을 가끔 본다. 이 모두가 약자의 짓 같아 자기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로만 생각하려는 사람도 있을는지 모른다.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언제 어떤 불행한 일에 직면하지 않는 법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설사 그와는 반대로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 치더라도 나날이 더욱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여 뜻 있는 향상을 하는 데는 깨끗한 마음씨와 경건한 태도가 언제나 밑받침이 되어 정신적인 힘이 살아있어야 할 것이요, 그러한 의미에서 이 세상이 장차 어떻게 변하든지 종교적인 신앙의 요구는 더욱 세차질 것이 틀림없다. 물질만 귀하게 여긴다고 걱정도 하고 퇴폐적인 향락만 안다고 근심도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그러한 시대니까 더욱 종교의 신앙이 절실하게 요구될 것으로 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종교적인 신앙이 각 개인의 내면적인 정신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로부터 힘이 솟아나야 하는 것이나, 그렇다고 각 개인의 문제에 그치는 것일 수 없다는 점이다. 자기가 구원을 얻은 기쁨은 그대로 남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중생을 제도하고 싶게 될 것이요, 여기서 차차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단체적인 접촉이 시작되는 것으로 안다. 동시에 그에 따르는 제도와 방편이 필요하게 되며 또 처지를 따라 꼭 같기만 할 수도 없을 것이요, 여기에 교세의 성쇠가 생기게 되는 것인 줄 안다.
기업가들이 앞장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성행하였고 조선조 이른바 이조시대에는 유교가 성행하였음은 누구나 잘 아는 일이다. 불교나 유교 자체가 어느 시대에는 훌륭하였다가 어느 시대에는 그렇지 못하였다는 식으로 원인이 종교 자체에 있는 것일까?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신도가 되며 국가가 어떤 태도로 뒷받침하는가에 따라 많이 좌우되었을 것이다.
신라나 고려시대에는 임금들 중에 불교 독신자가 많았고 심지어 왕위를 내놓고 스스로 절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버린 임금들로 있었고, 그에 따라 왕비까지도 여승이 된 일까지 있었다.
그만큼 되고 보니 왕자나 기타 귀족 또는 권력층의 인사들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리하여 나라의 돈으로 막대한 경비를 아낌없이 불교의 진흥을 위하여 쓸 수 있었다. 여러 천 칸짜리 절을 짓고 황금의 불상과 탑을 마음대로 만들었으며 많은 토지와 노복을 세금을 내는 일도 없이 소유하고 있었다.
조선조가 되면서 유학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과거에 급제하여 양반 행세할 수가 없었고, 권세 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으니 자연 유학이 흥할 밖에 없었다. 성균관이다 향교다 또는 서원이다 이 모든 시설이 국비에서 도움을 받으려니와, 잘 사는 양반들 자신의 장래를 위하여서도 보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즉 옛날에는 국가가 일정한 종교를 국교로 정하고 그의 진흥을 위하여 국력을 기울여 도와주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었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현대 특히 우리나라에는 헌법으로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어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같이 낸 세금을 가지고 국가가 어느 하나의 종교만을 두둔하여 도와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오늘의 우리나라 종교들 중에서 어느 하나가 특히 우세하게 되기 힘든 이유가 있다. 이미 전통적으로 불교와 유교가 계승되어 와서 단순하지 않은 터에 기독교가 새로이 들어와 더욱 어느 편만을 돕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제는 종교가 옛날처럼 국가의 도움을 얻어 발전하며 진흥하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독자적으로 잘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면 옛날의 국가를 대신하여 종교의 뒷받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오늘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일까? 교세의 진흥이 돈만 가지고도 안 되겠지만 재정을 무시하고는 좋은 이상ㅇ도 실지로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종교 자체는 물론 정신적인 것이지만 경제력 없이는 종단 자체가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 뻔하다. 재정을 떠나서 추상적인 진흥책만 논의해 보았자 신통한 결과는 얻기 힘들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에 있어서 이러니저러니 하지만 그래도 종교 사업을 위하여 뜻있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기업가라고 본다. 기업가야말로 돈을 정신적인 사업에 쓰기를 주저한다고 할는지 모르나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요. 반드시 참으로 이해하고 자진하여 힘을 다하겠다고 하고야 말 것만 같다.
종교적 신앙이 기업정신과 배치되긴 커녕 참으로 살리는 힘이 된다는 것을 깨치고야 말 것이다. 현대의 기업정신이 제대로 발달하면 할수록 종교적인 신앙의 필요성을 그 어느 곳에서 보다 느끼게 되겠기 때문이다. 기업가는 세상을 위하는 것도 되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자기의 기업체를 위하여 종교운동의 재정적인 뒷받침을 하는 것이 얼마나 뜻 있는 일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옛날에는 국가 외에 넓은 농토를 가진 지주들이 시주로서 절의 재정을 도왔다. 오늘은 기업가들이 앞장서야 할 때다.
시대적 전환을 나의 것으로 살리는 용기
70년대가 특히 문제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역사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킬만한 기틀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미 시작되고 있는 엄청난 전환이요 그 규모와 양상을 미리 짐작하기 힘들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라도 합리적인 성격을 띠고 움직일 것이다.
그리하여 걸핏 보기에 종교적인 신앙과는 대립되는 현상같이 짐작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속단이요 잘못이다. 종교적인 신앙이 언제나 고차적인 위치에 엄연히 자처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에 의하여 신앙의 근본적인 태도가 뒤흔들릴 수는 없다. 과학기술이 승리라도 한 것 같이 생각한다면 그것은 천만 잘못된 착각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더욱 경건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만한 조심성을 상실하는 때 인간은 자멸할 위협에 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과학기술은 그것을 무엇에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전 인류를 잘 살게 할 수도 있고 멸망시켜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에 어떻게 싀어질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과학 기술 자체가 하는 일이 아니다. 인간의 결단에 달린 것이다. 그리고 이 중요한 결단을 좌우하는 궁극적인 힘이 믿음에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종교적인 신앙은 과학 기슬과 대립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 기술을 마음대로 구사하여 참으로 인간에 봉사하는 과학 기술이게 하는 고귀한 임무를 가졌다고 자부하게 되어야 한다.
과학 기술을 무서워하거나 미워할 것이 아니라 알고 또 잘 쓸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늘에 있어서 중생을 제도하는 종교의 사명을 다하려면 과학 기술을 무시하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과학 기술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주어진 고마운 은혜임을 알아야 하겠다. 과학 기술을 적대시 할 것이 아니라 그의 고마움을 감사할 수 있도록 옳게 바르게 쓸 것을 신앙의 힘으로 인도하여야 한다. 위대한 종교적 신앙은 옛날에 있어서도 그 당시의 과학 기술을 최대한으로 구사하였다. 멀리 찾을 것도 없다. 경주의 불국사, 석굴암이나 합천의 해인사 대장경판만 보아도 충분히 짐이 되는 일이다.
그리고 70년대의 종교는 날로 현대화되고 있는 모든 사회 조직 속으로 파고들어 생활화하는 노력을 보다 활발하게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농사나 짓고 수공업으로 살던 대가족시대와는 달리 공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나날이 그 규모가 커지고 따라서 우리의 생활양식이 또한 달라지지 않을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소가족제도로 가족이 분산하여 생활하는 동시에 그나마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단란한 가정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차차로 적어지고 있다.
어린이들만 하여도 가정을 떠나 유치원이나 학교 같은 일정한 사회조직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아졌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직장이나 기타 가정과는 다른 사회조직 속에 참여하여 사회가 발달할수록 가정에서 지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이것을 종교적인 신앙과 관련하여 생각할 때 무엇을 의미하게 되는 것인가?
오늘에 있어서도 종교적 신앙이 각기 가정에서 어려서부터 어떤 분위기 속에 자라났는가가 매우 중요한 것임에는 다를 리가 없다. 그러나 가족들과 같이 지나는 시간이 차차로 줄어들고 그 대신 사회적인 다른 조직의 멤버로서 참여하여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만큼 그 참여하는 사회에서 받는 영향이 날로 커가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에 70년대는 유치원 학교 등 교육을 비롯하여 공장 회사 등 직장 속 깊이 얼마나 파고드는가에 따라 그 종교의 교세가 좌우될 것만 같다.
그리고 가능한 한 번거롭게 이해하기 힘든 까다로운 의식 절차보다는 누구나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인류 공통성을 찾도록 될 때 그 종교의 세계성을 드러내게 되는 것인 줄 안다.
종교가 생활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일이지만 안정된 시대와는 달라서 70년대야말로 급격한 전환이 상상되는 때인 만큼 그 새로운 생활에 적극적으로 파고들어 그 전환을 나의 것으로 살리는 용기가 필요하리라고 생각된다.


박종홍
약력
◇ 1903년 평양출생, 아호 열암
◇ 경성대학 법문학부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철학박사
◇ 46년 서울대학 교수
◇ 54년 한국 철학회 회장
◇ 6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 64년 한국 사상 연구회장
현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장
저서: 철학개설, 일반논리, 인식논리학, 철학적 모색, 부정에 관한 연구, 변증법적 논리학, 이퇴계 연구, 하이데거 외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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