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전환기로 예견되는 70년대를 맞이하면서 원불교가 당면한 과제들은 무엇인가.

원불교의 60년대는 밖에서 볼 때에 비교적 「조용한 종교」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조용한 종교」의 이미지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체의 무기력으로 인하여 존재 이유마저 불투명해질 때 현실의 참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여진 조용한 상태의 종교가 그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충실을 기하고 스스로의 힘을 배양하는데 역점을 둔 종교 다시 말하면 「우리 여기 있다」라고 자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려는 종교가 그것이다.
원불교는 반백년을 걸어오는 동안 순탄치 못한 역경을 헤쳐 왔기 때문에 무에서의 창조활동이라고나 할까? 따라서 원불교의 60년대는 후자에 속한 종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원불교의 60년대는 매우 중요하고도 벅찬 일들이 안에서 진행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밖에서 볼 때는 자기 과시의 행사도 없었거니와 악순환 하는 어떤 사회의 국면을 규탄하기에 앞장서지도 안 했다.
그러나 안으로는 자기 충실이라 할까 자체정비에 열중하였음이요 결코 조용하지는 안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60년대의 조용한 가운데 움직여온 「靜中動」의 내면을 몇 가지 점으로 집약해 볼까 한다.
첫째 교서의 정비를 들 수 있다. 이미 있어온 경전을 위시하여 계획되어진 6대교서들이 현대판으로 재정비되어 출판하게 된 점일 것이다.
1961년 12월 25일 교전편수 완결을 촉진하는 정전편수 완결을 촉진하는 정산법사님의 유시가 있었고, 1962년 2월 20일에는 정전과 대종경을 합본하여 원불교 교전이란 제명으로 간행키로 결정을 보았으며, 동년 9월에 드디어 발간되었다.
1965년 12월 8일에는 「불조요경」이 간행되었으니 이는 과거 불서에서 간추려 엮어진 교서의 하나이다. 1968년 3월 26일에는 「예전」과 「성가」가 간행되었으며, 동년 10월부터 착수된 「교고총간」은 원불교의 창립사료를 편집 정리하여 간행한 것인데 현재 3권이 나온 것이다.
이와 같은 간행사업은 원불교가 60년대에 들어와서 추진된 사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의를 지닌 작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재단활동의 확충을 지적할 수 있다. 1961년 4월 27일에 발족된 은산재단을 비롯하여 동년 10월 12일 육영재단, 67년 7월 법은회가 모체가 되어 발족된 요양재단, 그리고 종교재단과 학원재단의 분립원칙이 정부로부터 시달되어 현재 원광대학을 비롯한 원광남자 중ㆍ고등학교, 원광여자 중ㆍ고등학교를 일환으로 학원재단이 분립되었다.
이와 같은 재단 움직임의 현황은 밀려오는 교세에 대응하기 위하여 그 밑받침으로서 원불교의 경제가 어떻게 형성되며 움직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셋째 해외포교에 끈질긴 배려가 있었음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포교는 국내에서의 포교활동에 못지 않게 상당한 진척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 11월 해외포교 연구회가 발족, 1963년 11월 25일 박길진, 전팔근, 송영봉 제씨가 일본 종교계를 시찰했으며 1964년에는 태국에서 열린 제5차 세계불교도대회 원불교 대표로서 박길진 씨가 참석했으며, 1966년 3월 26일 서세인 교무가 일본을 방문하여 불교계를 시찰한 바 있으며, 1967년 2월 전팔근, 정봉길 제씨가 도미하여 원불교의 포교임무를 띄고 유학의 길을 떠났다. 1969년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9차 세계 불교도 대회에 김정용 씨가 원불교 대표로 참석했다. 해외포교문제연구소는 원광대학 도서관의 협력으로 각국 종교계와 문화교류를 진행해 온 점도 다대한 성과라 하겠다. 현재 미국, 독일, 캐나다, 영국, 호주 등 서구 제국과 일본, 자유중국 및 동남아 지역 제국 등 70여개소의 종교 단체와 유대를 맺고 종교문헌 및 정기 간행물을 교화하고 있다.
넷째 제도상의 합리성을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을 들 수 있다. 1960년 1월 29일 원불교 상임기구를 보강키 위하여 기획위원회가 발족된 바 있었고, 1961년 1월 23일 교헌의 개정이 있었으며, 이에 따라 교단기구의 일부가 수정되기도 하였다. 1962년 2월 21일 제5회 임시 수위단회에서 교헌개정안의 기초위원회가 다시 발족되었으며, 1965년 서울에 총부출장소의 시무, 1968년 10월에는 교단기구 연구위원회가 형성되어 약 반년 간 검토 끝에 1969년 9월부터 수위단회사무처가 발족되었다. 특히 수위단회사무처가 발족하게 된 의의중의 하나는 수위단회사무처에 전문위원제를 두었다는 데 있으며 따라서 수위단원들도 분과위원제를 실시케 된 점이다.
70년과 71년의 임무
원불교의 70년(원기 55년)과 71년(원기 56년)은 원불교가 창시된 지 반백년의 고개를 넘게 되는 해로서 대종사께서 이 원불교 법은 4·50년이 되면 어느 토양에 가져다 심더라도 결실하게 될 것이라 하신 바 이와 같은 원불교의 전망은 우리 후진으로서는 그대로 넘길 수 없게 된 것이 70년대의 임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6년 전 원기 48년에 반백년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50년대에 이러한 일을 이루어 한국은 물론 세계만방에 원불교의 존재의의를 널리 선양해 보자는 성업봉찬을 위해서 준비하여 왔었는데 50년 그 당해 연도에는 자체충실과 정비라는 이유로 이루지 못하고 55주년에 행사할 것을 준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한 원기 55년이 70년이 되어서 행사와 사업을 완결 짓는 해에 해당한다. 교도로서는 법위향상이라는 정신적 자세의 확립과 원불교적인 인간상을 구현하는 등 자기수련과 실천수양을 강조해 왔으며 다른 일면으로는 경제적으로 추진해야 될 사업을 계획해왔다. 그리하여 신도들의 경제협력으로 이루어질 사업들은 70년 봄 해빙이 되면서부터 착수된다. 그 일련의 사업계획을 본다면 건설사업과 편찬사업이 주가 되어 있으며 70년도 후반기에 성업봉찬회의 피날레를 장식할 계획들이 이미 수립되어져 있다.
이와 같이 70년과 71년에 폭넓고 의의 깊은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고는 하지만 이는 기성종교의 비만된 체제하에서처럼 무종교 영역과 선을 그어가면서까지 자기과시의 인상이 풍기는 그와 같은 행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여기에 평가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본다.
50년이라는 짧은 역사의 원불교가 하는 행사인 점에서 그 행사자체가 세계인류를 향해 새로운 지표의 구상이 들어있어야 할 것이며, 인류에게 새로운 가치창조의 계기가 제시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본다. 우리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종교행사의 일반적 행태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한다. 사실 종교행사는 어떠한 행사보다는 종합문화의 표현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기성문화권에 기여할 수 있는 의의를 지님으로써 후에 문화사가들이 새로운 문화의 창조적 패턴으로 평가되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70년대의 과제
원불교의 70년대라 하면 한국의 70년대 아니 세계의 70년대를 떠나서 생각할 수가 없다. 한국의 70년대란 이미 항간에서나 정부에서 하여진 이야기로 미루어 역시 국제정세의 미묘한 상황에서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를 씻기 위하여 자립경제를 확립하고 도약에로의 몸부림을 친다.
이에 반하여 한국의 70년대는 정신문화의 황폐한 사태에 직면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혹자는 70년대에는 권리의 주장은 강해지지만 금권만능의 가치관의 팽배로 책임회피, 안일무사에 떨어지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외래문화의 접촉에서 수용능력이 결핍될 때 지나친 기계화는 인간상실의 비정적 사태가 수없이 야기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도 있는 것이다.
현재에도 매스컴의 대중화는 거대한 매스미디어의 파워가 인간을 상품화하고 있으며 종교 도덕 등은 물론 확실히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기계적인 일상생활과 톱니바퀴적인 기능본위의 세대가 개발 성숙하게 되면 젊은이들이 등용될 것이고 그들에겐 의식의 희박과 가치측정의 양적 전이현상을 모면키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사회 안정성을 크게 저해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 또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원불교는 어떠한 자세로서 이 70년대를 맞을 것이며 또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원불교도 역시 70년대를 향하여 내적으로 무척 부심 해왔다. 그러한 상징이 앞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55주년 기념행사로 부각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는 객관화되어 양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분야들이라고 본다면 이에 못지 않게 질적으로 고양시키기 위한 연구적 자세는 얼마나 잘 행해지고 있으며 또한 재검토되는지 회의해 본다.
여기에서 70년대의 원불교를 향해 연구되고 검토되어져야 할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해 본다.
첫째 교단의 경제관 확립과 더불어 교단경제의 운영방법을 일원화하는 문제가 있으며.
둘째 인력 검토와 이에 의하여 인재의 발굴 및 인사관리, 능력개발을 위한 연구가 되어야 한다.
셋째 명확한 교육이념을 제시하고 인재들을 훈련하고, 더 나아가서는 원불교 교도에게만 국한되는 교육의 이념이 아니고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로 향한 뚜렷한 지표가 될 이념을 교육화 시켜야 할 것이다.
넷째 보다 새로운 교화 방식을 찾기 위하여 연구해야 할 것이다. 청년과 일반교도의 교화문제, 농촌과 도시 및 남자와 여자의 교화문제 등은 좀 더 구체적으로 구분하고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 동안의 교화방식을 직접적 교화방식이라 한다면 이제 앞으로 대비해야 할 교화방식은 간접적인 교화방식 즉 매스컴을 선용하는데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제도 체제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이다. 현대 사회구조 속에서 대비하기 위한 많은 제도와 체제들을 구상하고 또한 도입시키려 하고 있으나 제도와 체제 면에서는 가능한 한 단순화시키고 그러한 제도를 가지고 운영하는 묘를 들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이에 따라서 리더쉽의 훈련은 절실하게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것들이 원불교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서기 위하여 질적이며 정신적으로 새롭게 문제되어질 분야라고 본다.
이러한 문제들이 늦어도 70년대의 전반기에서 연구되어질 때 이를 바탕으로 70년대의 후반기에는 원불교의 「해석학」이 정립될 것이며, 원불교의 「사관」도 수립될 것이다. 따라서 원불교 70년대의 후반기에는 차원을 달리하는 청년 활동이 이루어질 것이며, 국내 포교나 해외포교도 바란스가 맞아서 그 실효를 거둘 것이다.

유병덕
약력
▽ 1930.9.2 충남 서산 출생
▽ 56년 원광대학 교학과를 거쳐 전북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졸업
▽ 현재 원광대학 교수, 원광대학 대학원 위원
▽ 문화공보부 유사종교 실태조사위원
▽ 원불교신보 논설위원
주요논문: 「계룡산하 종교 집단체와 모악산하 종교단체의 비교연구」(보고서 발간)
「인명입정이론」에 대한 연구 외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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