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보화당 발족의 종교사적 의의-

돈은 현대사회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돈이면 지위나 권세도 농락할 수 있으며, 죽어 가는 생명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돈에 의해서 조정되는 여러 사건들을 날마다 볼 수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인간의 선용의 측정은 결국 돈의 액수로 환산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종교도 돈을 무시하고 설 수 있는 땅이 없다. 돈 때문에 전 생애를 매달은 인간을 무엇보다도 고귀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말았다.
종교사회에서는 돈이 앞서는 것이 아니고 혼이 들어있는 정신자세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돈 없는 혼은 도리어 혼 없는 수전노만 못한 것이 되어버렸다.
돈으로 뒷받침하지 않는 정신운동은 잠꼬대 같은 무기력으로 도외시 당하게 된 것이다.
종교가 제 구실을 되찾으려면 자체의 수정과 개혁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가 과연 「힘의 종교」로 나타나서 180도로 달라진 이 사회를 파고들어 다시 유익 주는 종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체정비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산업종교」「상업종교」로 전환해야 될 것으로 본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생활종교」란 개념은 곧 「산업」과 「상업」을 통해서 만인을 소통시킬 수 있는 종교라고 규정지어 본다.
종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잘 살 수 있으며, 또한 부지런하며, 상냥한 인간성이 있다고 칭송을 받아야 할 것이다. 양심을 지키고 의를 내세우는 사람은 내세에서만 아니라 현세에서도 잘 살 수 있는 생활지표를 보여주는 종교여야 할 것이다.
원불교에서 경영하는 「보화당」은 대종사님 때부터 있어 온 약방이다. 약 36년의 전통을 지니고 산업정신을 길러왔으며, 상도를 지켜왔다. 이 기관을 통하여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양약, 한약 도산매에 요즘은 제약사까지 겸해 있다.
이 보화당은 어떠한 개인이 돈 벌기 위하여 움직여왔다면 이미 한국 사회의 명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불교라는 간판 밑에서 법을 준수하고 도를 행하며 주의 표방하는 산업이었으며 또한 상업이었기 때문에 치부의 꿈과는 사실상 거리가 멀었다.
「제생의세」의 이념 아래 「자리이타」의 원리로써 견지하고 왔으나 획기적인 발전은 있을 리 만무했다.
55주년을 계기로 보화당은 서울을 그 산업과 상업장을 일부 이동한다고 한다.
원불교 반백년 이후의 밝은 전망은 이 보화당을 통하여 종교인들의 생활을 산업화, 상업화하는데 효시가 되어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 종교인들에게 먼저 산업사회의 인식과 상업윤리의 파악이 올바르게 확립되는 날, 한국 사회의 근대화 작업이 성취될 것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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