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무언가를 갈망하고 무언가를 이루려는 염원이 있다.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세계를 정복하려는 소망이, 예술인은 예술인대로 자기의 작품세계에서 우주를 창조하고 싶은 정열이, 종교인은 종교인대로 작 내면의 생활을 맑히고 밝혀서 승화시키려는 서원이 꿈틀거리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각자 각자가 생각하고 목적하는 원을 이루는 데에는 먼저 견문간의 대조하고 끊임없는 정성으로 일관해야 되리라고 믿는다.
사회적으로도 인류사회에 이바지한 사람들은 피나는 노력 없이 성공한 사람은 없다. 오늘의 문명을 낳은 발명왕 에디슨이나 헬렌켈러는 직접 생활 속에서 연마하고 노력하여 위대한 결실을 거두웠던 것이다.
우리는 인류 가운데에서 제일 크고 높은 성불제중의 큰 서원을 하고 모인 사람이다. 그러기에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범연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정당한 원을 세웠으면 그 원을 멀리 생각하지 말고 일거일동을 원에 대조하여 분발심을 일으켜야 하겠다.
우리는 우선 먼저 나를 발견해야겠다. 내가 무엇 하러 이곳에 왔으며, 또한 무엇 하는 사람인가,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 항상 나의 위치를 생각하고 서원에 반조해서 경계를 대치하고 서원을 요원한 것처럼 여기지 말고 가까운 주변으로부터, 적은 일에서부터, 실천하고 연마하는 성실성을 배워야겠다.
인간의 의미나 가치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생활태도와 의지적 노력에 있는 것이며,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대하여서는 자비롭고 경계를 대하여서는 용감히 뛰어넘을 수 있는 용단력을 기르고 일을 할 때에는 정성스럽고 충실해야겠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왔다. 세월의 흐름 따라 우리의 황금기인 배움의 시기도 그만큼 지났다. 우리의 인생도 그만큼 흘러갔다. 이 많은 것들을 보내면서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했을까? 어제와 오늘을 돌아볼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찰나 찰나를 헛되이 보내지 말고 소중히 알아 까닭 있게 보내야겠다.
시간은 우리를 위하여 머물지 않는다.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충실하게 주어진 일을 다 하면 내일을 잘 살 수 있고 내일 잘 살고 보면 영생을 잘살 수 있는 것이다. 순간이 영생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목적인 성불도 보고 듣고 생각하고 연마하여 정성스럽게 실천하는 데 이루어질 것이다.
몇 겁을 닦고 큰일을 하기 위해 출현하신 대종사님이나 부처님께서도 많은 고행 뒤에 도를 얻으셨다. 하물며 미급한 우리로서 피나는 노력도 없이 퇴굴심을 내고 적은 일이라고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대인접물에 있어서 항상 까닭 있게 보고 배워서 직접 실천하여 나 자신을 완성시키는 노력을 해야겠다.
자기를 개조한다는 것은 인간에게만이 주어진 특권이다. 우리는 이 특권을 잘 이용해서 일원대도를 세계에 전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항상 한 행동을 서원에 반조해서 항상 까닭 있게 보고 까닭 있게 생각하여 바른 지혜를 얻고 바른 역량을 갖추어 널리 일체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힘이 쌓일 때까지 뜨거운 정열과 용기와 인내로서 피나는 정진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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