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수유주(山河雖有主) 풍월본무쟁(風月本無爭)
우득춘소식(又得春消息) 매화만수생(梅花滿樹生) <서산(西山)>
산하는 임자가 있다고 하지만
풍월이야 본시 다툴 이 없네.
게다가 또한 봄소식을 ...

산하수유주(山河雖有主) 풍월본무쟁(風月本無爭)
우득춘소식(又得春消息) 매화만수생(梅花滿樹生) <서산(西山)>
산하는 임자가 있다고 하지만
풍월이야 본시 다툴 이 없네.
게다가 또한 봄소식을 들으니
매화는 나무에 가득 피었다네.

인간이란 참으로 이기적인 동물이다. 배고플 땐 한 그릇 밥이면 충분하고 목마르면 한 바가지 물로서 갈증을 풀 수 있다. 한 벌의 옷으로 추위를 막을 수 있고, 한 평의 땅이면 죽은 몸뚱이를 편히 잠재울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란 「내 것」이란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내 물건, 내 집, 내 가족, 내 나라, 내 것은 만족이 없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갖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선생이 일어나고 고해에 헤매이게 되는 것이다.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죽어갈 인간들이 살아있을 동안 내 것 만들기에 눈 코 뜰 새 없다. 윤리나 도덕도 정의나 양심도 내 것 만들기 작전 앞에서는 무력해지고 만다. 인간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것뿐만이 아니라 말 한 마디 없는 나무나 강물, 심지어 돌멩이나 흙에까지도 자기 것이라 하여 소유권을 다툰다. 땅 몇 평을 더 차지하겠다고 다투는 것이 곧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놓고 인간은 서로 싸움이다. 오늘에 와서는 영해니 영공이니 해서 하늘과 바다까지도 서로 자기 것이라 다투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거기다가 달빛이나 풀내음을 놓고 자기의 것이라 하여 다투지는 않는다. 세상 사람들이여 무엇이든 많이들 차지하라. 부귀영화 권세 재산 사랑 미움을. 아무도 다투거나 탐내지 않는 풍월은 내가 차지하겠다. 그래서 나는 풍월의 주인.
지금 이 순간, 세상 사람들이 그처럼 자기 것 만들기에 정신이 없는데, 나는 봄 오는 소식을 듣는다. 나뭇잎 떨어진 자국에서 새싹 돋아나는 소기를, 땅 위에 썩으며 뒹구는 낙엽에서 화려한 새 봄의 합창을, 꽁꽁 얼어붙은 대지에서 훈훈한 봄의 입김을 듣고 느끼고 보고 즐긴다.
아아! 친구여 보는가, 싸늘한 겨울 하늘에 피어나는 봄의 아지랑이들. 친구여 취하는가, 메마른 나뭇가지에 가득 돋아난 매화의 향기에. 친구여 저기 저걸 듣게나, 매포소리 자욱한 저 벌판 위에 울려 퍼지는 평화의 교향악을. 그리고 친구여, 내 것 만들기에 바쁜 인간들의 모습이 모두들 부처 얼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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