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정업에 대하여
6. 업력과 업보 ①
잠간 죽는 것이 잠, 오랜 잠이 죽음
마음이 실물이고 말은 그림자
우리는 있던 것은 없어지고 없던 것이 나타나는 것을 유와 무가 돌고 돈다고 하며 이를 만물의 변태라고 한다.
만물은 조금도 쉼이 없이 변하고 있다. 물을 하나 보자. 바닷물은 수증기로, 수증기는 구름으로, 구름은 비로, 비는 지상에 떨어져 모이게 되고 이는 다시 흘러 바다로 들어가게 된다. 한 시도 가만히 있지를 아니한다. 가만히 있지를 않는 면을 변(變)이라 하고 모양을 바꾸는 것을 태(態)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육안으로 무엇이 물의 본체인지를 모르지만 이것을 분석하면 수소 둘에 산소 하나가 합쳐져서 물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의 세계나 과학자가 말하는 과학의 세계가 같음을 알 수 있다.
인과세계의 원리나 과학세계의 원리는 우리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 알 수 없지만 진리를 깨치신 부처님이나 과학에 달통한 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분석하여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다.
이 물질의 세계처럼 우리 인과도 항상 변하고 있다. 마치 바둑을 두다가 그 판을 끝내고 다시 바둑을 두면 바둑을 모르는 사람은 바둑판에 얽힌 바둑알이 조금 전의 바둑 두는 것과 같지만 바둑을 아는 사람은 처음 판과 두 번째 판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세 판국이 벌어지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바둑알은 같은 알이지만 판이 다름을 아는 것이다.
인과의 세계에 있어서도 권리가 바뀌고, 인연이 바뀌고, 부자가 가난해지고, 하는 것은 판국이 바뀐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판국이 바뀌게 되는가?
업이라고 하는 것은 실물과 같고 몸이라는 것은 실물의 그림자 같은 것이다. 마음은 실물이고 말은 그림자인 것이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그 말이 표현되는 것으로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은 업이 근본이므로 모든 것을 마음이 돌어서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판국이 바뀌었다 함은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사람으로 사람의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은 과거에 사람의 얼굴을 가질 수 있게 지어서이다. 그러나 인간이 될 업을 지어 몸은 인간이 되었지만 짐승 같은 마음을 쓰면 인면수심(人面獸心)으로 짐승이 될 업을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는 짐승이 되는 것이다.
돼지가 될 마음을 쓰면 돼지가 되는 것이지 딴 것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몸이 죽어 새 판국이 열리게 될 때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 되고, 아니 하고 싶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우리가 눈을 뜨고 감고,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 걸어갈 때 오른 발이 앞으로 나가면 오른팔은 뒤로 나가게 되는 것과 같다. 내가 꼭 이렇게 해야겠다고 해서 되는 일들이 아니다. 자연적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이 이치는 낮과 밤이 바뀌고, 나타난 생태이며 죽으면 숨어지는 상태이다. 그러나 숨어지는 상태는 영원히 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자는 것과 같다. 잠자는 상태는 죽음과 같다. 옆에서 자기를 죽이려고 해도 모르며 욕심이나 인연이나 아무 것도 없다. 잠깐 죽은 것은 잠자는 것이며 크게 잠자는 것은 죽음이다.
우리들은 매일 죽기도 하고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우리는 매일 죽었다 살아나면서도 이 이치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죽음의 상태는 고요한 상태로 반드시 움직여지고, 움직이고 있는 것은 반드시 고요하여 지는 것이다. 바다의 물결도 솟아오르면 반드시 갈아않고 다시 그 옆으로 솟아오르지 않던가. 이 이치를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계속적으로 일고 사그라지며 춥고, 더운 것이 엇갈리고 있다.
모든 것은 이처럼 여울져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람들도 이 이치 속에서 나도 모르게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나도 모르게 가는 것이다. 늙은 것은 반드시 젊어질 근본인 것이며 젊음은 반드시 늙어질 것이다. 낳은 것은 죽을 근본이며 죽음은 낳음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디서 왔는가? 모두 갔던 사람들이 다시 온 것이다. 이것을 알 때에는 무엇보다도 올 때 어떻게 오느냐를 알아야 한다.
시장에 갈 때 많은 돈을 가지고 간 사람은 많은 물건을 사서 가져올 수 있으며, 팔 물건은 많이 가지고 간 사람은 돈을 많이 가지고 올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살 때에 돼지 같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돼지로 받게 되고, 돼지 업을 받는 것은 잠에 들었다 깨는 상태와 같다. 잠을(죽음) 깨면 돼지에 수태되어버린 것이다. 돼지 같은 마음을 먹었던 것이 새 판국으로 나타난 것이다.
새 판국은 어떻게 바뀌어지는가? 마음 가운데 있는 마음의 종자식은 무거운 데로 기울려지게 되어 있다.
우리들은 매일 살아가면서 천당 갈 마음, 지옥 갈 마음, 인간이 될 마음, 짐승이 될 마음을 쓰고 있는데 이 마음이 어느 쪽으로 많이 사용하여 무거워졌느냐에 그 사람의 새 판국이 결정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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