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를 위해 태어난 사람
부군 김도영씨는 알려진 장학 사업가
사직지소 손성인화 씨

대종사님을 알기 위해서 이 세상이 태어났고, 원불교 일을 평생의 사명으로 부여받아 살아가는 사람, 사직지소 손성인화 할머니(67세).
원기 27년 개성에서 박창기, 이경순 선생을 연원으로 입교한 이래, 원불교만을 생각하고 원불교 일만을 생명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온 가족이 입교하기를 10여 년이나 기도한 끝에 드디어 종교 가정이 되던 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한 가정이 제도 받기를 염원하는 소박한 자세에서부터 믿음이 시작한다.
꿈에서까지 대종사님으로부터 교당을 하나 이루어야 한다는 분부를 받을 만큼 간절한 믿음이었다. 그래서 평생의 소망으로 이룩한 것이 사직동 교당이다.
교당 마련 비용 1백 50만원을 모으는 데는 20여 년을 통한 절약의 결과였다. 차비며 찬대를 아꼈다. 푼돈을 모아 교당을 마련한 것은 믿음이 아니고는 도저히 불가능했으리라.
성인화 할머니가 이처럼 푼돈으로 큰돈을 마련하기까지는 부군 김도영님(67세)의 이해와 협조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 두 분의 사이는 그야말로 인생의 정직한 반려자이다.
김도영님은 이미 장학 사업가로서 널리 알려져있다. 서울대학교에 소계 장학금으로 많은 장학생을 길러내었다.
원불교 육영재단에도 일찍부터 특공장학회원이 되어 육영사업에 큰일을 하고 있다. 현재도 매년 8만원씩의 장학금을 보내고 있으며, 내년도부터는 매년 10만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도영님은 장학에 뜻을 두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어렵게 자랐고, 점원생활도 했습니다. 애써 돈을 벌면 그것으로 보람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결국 장학 사업은 30대부터의 염원이었던 것입니다. 8·15, 6·25의 수난도 겪고, 부산 피난시절에 원불교를 믿게 되고, 이때부터 장학 사업을 더욱 열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63년도부터야 겨우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김도영, 손성인화 두 분은 원불교 일을 위해서, 또 장학 사업을 위해서 태어났고, 거기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
장학 가족이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음은 박청수, 백지명, 한혜근 선생을 따님 같이 데리고 있으며 알뜰히 보살펴 준 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우리 교단에 유능한 인재를 길러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일이 얼마나 큰일인가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하루의 부식비가 1백 원이라는 점에서, 또 성인화 할머니가 과로로 자리에 누웠을 때 약값 4천원도 많다고 약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얼마만큼이나 교단을 위하는가를 충분히 알 수 있겠다.
「이제 원불교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것이 여생의 소망입니다. 특히 장학 사업을 많이 해야겠습니다.」 김도영님의 즐거운 염원이다.
「항상 대종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길이 그랬듯이, 대종사님의 말씀만 받들고 살아가겠습니다.」손성인화 할머니의 하늘에 사무친 서원이다.
그러나 아직도 두 분에겐 어려운 문제가 남아있다. 그것은 사직교당을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고 손색없는 법당을 마련해서 큰 교당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과제이다.
원불교를 위해 삶을 얻었고 원불교 일을 함으로써 즐거움과 보람을 찾은 두 분이기에, 사직교당의 발전은 물론 원불교의 발전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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