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원불교 개교의 역사적 배경=

여기 고요한 동방의 한 나라에서 세계를 구원할 정신의 횃불이 터졌다.
물질에 시달리고 어둠에 헤매이던 온 인류에게 새로운 정신의 생명수를 부어넣을 새 회상이 터져 나온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20세기 초기 역사의 일대변혁의 시점에서이다.
1. 세계의 대세
1916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치열하여 온 인류가 피 흘리고 아우성치며 숨져 가는 처참한 모습을 차마 그대로 볼 수 없다는 듯이 여기 동방의 새 불토에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소리 없는 소리를 외치며 진리의 횃불을 들어 대각을 선언한 26세의 한 청년 성인이 있었으니 그가 곧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이시다.
원불교 개교 당시의 세계의 혼란을 몇 가지로 요약해본다.
첫째 전쟁의 비참과 경제의 공황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란 비참한 살육 속에 온 인류는 죽어야만 했고 더구나 거기에 겹친 경제의 공황으로 우선 먹고 입고 살 수 있는 인간 생명의 보존방도마저 막연했다.
둘째 사상의 혼란과 물질의 범람이다. 이제까지 철칙으로 믿어왔던 모든 사상의 밑바닥이 흔들리어 어느 사상에 정신을 뿌리박고 살아야 할 것인지 암담하기만 했었다.
물질의 범람으로 일면 인간의 물질생활은 화려해졌으니 일면 그와 반비례해서 인간의 허욕은 더욱 심해져 정신의 불안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러한 세계의 혼란에 부딪쳐 온 인류는 밖으로는 물질문명에 어떻게 대처해야 되며 안으로는 올바른 정신의 방향을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지 실로 일대기로에 헤매이지 않을 수 없었다.
2. 한국의 대세
한국의 혼란은 이러했다.
첫째, 사회의 혼란과 외세의 침해이다. 이조 500년 동안 저질러온 반상차별과 관권횡포에 대한 반발로 민권신장을 주장한 동학란이 일어나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있었다.
한편 청일· 노일전쟁을 비롯한 동서의 외세가 한국을 짓밟아 마침내 한국은 일본의 제물이 되어 망국 식민지의 백성으로 차마 죽지 못하여 사는 형편이 되었다.
둘째, 종교의 피폐와 혼란이다. 불교는 羅·麗시대에 걸쳐 이 나라 정신문명에 큰 업적을 끼쳐왔으나 이조의 숭유억불으로 인해 산간 불교화 되어 대중의 사회생활과는 격리되어 있었다.
유교는 이조 500년 동안 이 나라 도덕 생활에 큰 지주가 되어왔으나 당쟁과 허례와 공론으로 형식화되어 민중으로부터 불신을 받게 되었다.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는 이 나라 근대화에 공헌하려고 하였으나 이방 서교라 하여 대원군의 금교정책으로 큰 타격을 받고 겨우 명맥을 유지할 정도였다.
그 외 70여 종의 군소 신흥종교는 사회의 혼란으로 인한 민심동요에 따라 거의가 미신성으로 민심을 혼란케 하였다.
셋째, 윤리의 문란과 민족성의 타락이다.
윤리의 문란은 동서양을 막론한 세계적인 공통 현상이었지만 특히 한국은 처음 보는 화려한 물질문명에 제 정신을 차릴 힘이 없어 이를 얻기 위해서는 서로 싸우고 죽이는 형편이었다.
한편 민족성은 타락되어 남에게 의뢰하여 살던 습성은 그대로 남아 자주 자립의 정신은 찾아볼 수 없을 만치 타성에 절어 있었다. 남의 나라 못지 않은 경제적 빈곤과 허욕 때문에 늘어만 가는 것은 이기주의뿐이었다.
이러한 한국의 종교 및 사회의 혼란은 민중의 정신을 절망에 빠뜨려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정신의 방향을 찾기에 갈망하였다.
3. 역사의 전환기
대종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세상의 정도는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바야흐로 동방에 밝은 해가 솟으려하는 때이니 서양이 먼저 문명함은 동방에 해가 오를 때에 그 광명이 서쪽 하늘에 먼저 비치는 것과 같은 것이며 태양이 중천에 이르면 그 광명이 시방세계에 고루 비치게 되나니 그 때야말로 큰 도덕세계요 참 문명세계니라.」
대종사는 지금의 역사적 시점을 「동방의 밝은 해가 솟으려하는 때」라고 간파하였다. 한없는 기쁨이 용솟음 치고 뭉클 뭉클한 힘이 솟아나게 하는 역사관이다.
밝게 솟아오르는 역사의 태양을 더욱 밝게 비추고 고루 비치게 하는 것은 우리 인류의 사명이다.
동방에서 솟아오른 역사의 태양이 서양에 먼저 비쳤지만 그 뿌리는 동방인 것이며 그 역사의 태양이 점점 솟아오름에 다라 동서양에 고루 비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태양은 운명적인 것은 아니다. 비치는 진리의 태양 빛을 받고 못 받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역사의 사명적인 작업이었다.
첫째, 터져 나오는 새로운 좋은 싹을 발굴해서 키워야 한다. 튼튼한 뿌리를 찾아 진리의 맥을 찾아 온 천지에 새로운 힘을 심어야 한다.
둘째, 낡고 썩은 것은 용감하게 청산하고 전진해야 한다. 좋은 나무를 기르려면 쓸데없는 가지는 끊어 버려야한다. 후덥지근한 방안 공기는 활짝 문을 열어 새로운 청신한 공기로 바꿔야한다.
4. 새로운 세계의 구상
새로운 세계는 정신문명이 주체가 되어 물질문명을 잘 활용하여 두 문명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인간의 정신도 튼튼해지고 물질도 풍부한 이 지상의 낙원세계를 말한다.
정신문명을 발달시켜 물질문명을 대처할 면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간의 정신을 선용의 방향으로 들려 모든 물질력을 평화적으로 활용하게 하자는 것이며
또 하나는 아무리 화려한 물질문명이라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을 정신의 자주력을 길러 물질을 멋지게 뿌려 쓰자는 것이다.
세상은 넓어졌고 빨라졌다 움츠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원불교는 현대의 극도로 발달한 물질문명을 목격하고 그에 대처할 정신문명의 방안을 강구한 것이다. 방안으로 정신문명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문명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문명을 발전시켜야 영육이 쌍전하고 내외가 겸전한 결함 없는 세상이 된다.
인간의 정신에는 깊은 종교적인 수양의 힘이 있어야 되고 육신에는 현대생활에 대처할 능력도 있어야 한다.
어느 기성의 노대종교도 그 발생은 특정한 지역에서였다. 그러나 그 종교의 진리관과 방법론이 세계성을 지녔다면 세계적 종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에서 발생한 원불교가 여러 노대 종교의 새로운 모습과 힘을 합해가면서 세계의 정신문명 건설에 약진할 것을 한 종교인으로서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원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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