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인이 마땅히 밟아야 할 길>
역사와 후진은 우리를 지켜보며 심판한다.

정산종사의 창건사에 보면 「원기 5년 4월에 대종사께서 처음으로 본교의 교강을 발표하시니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강령 팔조목이다. 사은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피은, 보은, 배은을 말씀하신 것이요, 사요는 남녀권리 동일, 지우차별, 무자녀자 타자녀 교육, 公道獻身者以父事之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곧 인생이 마땅히 행할 도로써 세상을 구원할 요법이 되는 것이다.
삼강령은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를 말씀하신 것이요, 팔조목은 신, 분, 의, 성으로써 진행력을 삼고 불신, 탐욕, 나, 우로써 사연사조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곧 공부인이 마땅히 밟을 도로써 생령을 제도하는 요법이 되는바, 그 강령은 심히 간명하고 의의가 도한 원만하여 일반신자로 하여금 조금도 미혹과 편벽에 끌리지 아니하고 바로 대도에 들게 하는 본교의 원정교법이시다.」라고 기술하셨다.
이를 근거하여 생각하면 올해는 본교 교강을 발표하신 지 50년-. 반백년에 해당하는 뜻 깊은 해요, 4월이면 바로 그 달이기도 하다.
회고컨댄 대종사께서는 대도를 증득하신 뒤 각 종교의 교서를 열람하시어 스스로 증득하신 바를 시험하시고 기쁘고 마음으로 세상을 보시고 인심을 살피시었다.
대종사의 대오분상에 비치신 세상을 어지러울 대로 어지러워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 또한 인심은 그 본을 잃어 도탄에 빠져있어서 구원을 손길이 화급하게 비쳤던 것이다.
<생성과 상생의 윤리>
그러기에 그 첫 감상을 발표하셨으니 최초법어인 수신의 요법과 제가의 요법과 강약진화이 요법과 지도인이 요법으로써 교강 발표 이전의 본교 교법의 기본 원형을 밝히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최초법어는 직면한 세상인 한국사회를 구제의 대상으로 하여 장차 돌아올 미래의 세상을 내다보신 것이다. 상호 대립하여 상충되어진 사회를 근원적인 생성의 은에 근거하여 원만한 사회 윤리를 강약진화의 요법에서 밝히시고, 그러한 질서 속에 발전하는 기본원리로써 재가의 요법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시어 인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요법인 사은사요의 원리를 근거해 주시었다.
그러나 대종사께서는 이 사회윤리와 세계질서를 더욱 주관적으로 끌어들여 한 사람의 인간의 개조를 중시하시고 미래의 인간상으로서의 수신의 요법을 설하셨으니 개조된 새 인간의 요소를 삼학에 근거 지워 주시었고, 이 삼학의 끊임없는 적공의 원동력을 팔조목으로 뒷받침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삼학팔조로써 완전한 인간의 인격을 배양하고 사은사요로써 완전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도적 책임을 담당하도록 미래의 지도자상을 아울러 밝히시었다.
원기 원년 7월에 이와 같이 세상과 인심을 보신 첫 감상을 발표하시고 이 거대한 일을 위하여 투약시병의 교화방편을 베푸시어 혹은 정신작업 혹은 경제적 기초 혹은 동지규합의 기본적인 작업을 마치시고 원기 4년 10월에 봉래정사에 들어가시어 교법을 구상하시기에 이르렀다.
<마음의 표준 생활의 좌표>
그러므로 처음 발표하신 최초법어를 더욱 구체화시켜 만년대계인 교법의 강령을 완정하시고, 마침내 반백년 전인 원기 5년 4월에 세계와 인류를 향하여 선포하시었으니,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강령 팔조목은 우리 교법의 강령이요 세계와 인류에게 비추어진 광명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교법을 봉대해온 지 반세기 동안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서 우리들의 심법이 되고 생활의 좌표가 되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왔다.
그리하여 사은 사요는 신앙의 강령이 되고 삼강령 팔조목은 수행의 강령이 되어 종교적인 신앙의 행위와 도덕적인 수도의 행위는 처처불상 사사불공과 무시선 무처선으로써 불법과 생활이 일치화 되도록 공부해 왔고 구현해 왔다.
고도의 물질문명으로 인하여 소외당해만가는 세도와 인심, 급변해 가는 시대와 사회구조에 의연히 도전하는 이 세력이야말로 일조일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50년이란 연륜 속에 60만 동지들의 일심합력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때 대견하고 거룩하기만 하다.
<역사는 지켜본다.>
그러나 교강 발표 50년을 마음에 새기고 반성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대종사님의 끼쳐주신 본래의 뜻에 조금이라도 흐려지는 점은 없을까?
대종사님의 물려주신 그 일에 조금이라도 머뭇거리거나 물러섬이 없는가?
시대가 바뀌어지고 사람이 달라지고 보면 봉의 아니게 둔갑하는 수가 있다.
미신적인 기성종교나 사조에 오염되어 엉뚱하게 둔갑하기 쉽고, 그러는가 하면 세도인심에 다르다 보면 현대적 사상이나 풍조에 오염되어 또한 엉뚱하게 둔갑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도 없다.
우리 모두 반백년 성업을 목전에 두고 반세기를 반조해야 할 이 마당에 모름지기 대종사님의 대오분상에 비치신 교법인 사은 사요와 삼강령 팔조목을 다시 생각해 보고 대종사님의 구세대강인 사은사요와 삼강령 팔조목을 다시 정비하여 구현해 보기로 하자.
역사와 후진은 우리를 지켜보고 심판하고 있을 것을 다짐하며, 역사에 오점을 찍는다던가 후진의 입살에 오르지 않도록 늘 새롭게 생각하고 또 구현해보아야 할 것이다.
<동산선원 교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