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麗)타원 김지원행 법사
「일원상 서원문」은 내 생활의 원동력
하루를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으로

『바라는 것 없이 주는 사람이 되자. 잘잘못에 대해 당하는 사람이 되자. 그래서 무아봉공으로 생활하자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완전히 파악하는 일입니다. 처지에 안분할 줄 아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이며 큰 부자이지요.』
여타원 김지원행 법사님의 생활철학이다. 일찍이 경남여고를 졸업하고 장귀안씨와 결혼, 다복한 가정생활을 주위의 부러운 시선을 받았다.
원기 35년 꿈속에서 대종사님을 뵙고 다대교당에서 입교 일원의 법음에 도취된 초발심 수행자로서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으로 속 깊은 공부하도록 진리의 시험이 다가 왔습니다. 평소 건강하시던 분이(당시 서울 제일은행 상무였던 부군) 갑자기 졸도하여 중풍으로 돌아섰습니다. 이 때 제일 먼저 걱정되는 것은 원불교의 창조자가 되지 못하고 파괴자가 된다는데 있었습니다. 그동안 온 가족이 반대를 했기 때문에 원불교 믿어도 소용없다는 비난의 화살이 두려웠지요.』
하루아침에 달라진 현실, 안분하지 않고는 헤쳐 나가기 어려운 생활, 처음 당하는 이간 고뇌를 안고 기도를 시작했고 해탈공부에 두 주먹에서는 땀이 나야했다.
『대종사님께 받은 은혜 어떻게 보은해야 할 지 모릅니다. 그때 이 공부법이 아니고는 도저히 살 수 없었으니까요. 기도생활 3년은 보행이 불가능했던 그 분에게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게 해주셨고 철저하게 인과의 진리를 체득하게 해주셨습니다. 법신불의 위력이지요. 그래서 「일원상 서원문」은 제 생활의 원동력이 되어 어떤 걱정도 세 번만 읽으면 후련해지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잡혀집니다. 일원의 진리는 곧 내 마음의 등불이며 약재이기도 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품이 되어 꼭 안아주시고 벗이 되어주시기도 하지요.』
일원의 위력을 얻고, 체성에 합하도록까지의 서원에 대한 지극한 정성은 후회 없는 인생을 엮게 하였고, 항마의 터전을 닦았던 것.
『그동안 봉독했던 대종경이었지만 특히 불지품 11· 12장은 새롭게 나의 뼈와 살이 되어 현실 고뇌를 초월할 수 있게 해주었고, 떳떳하고 여유 있는 새 삶을 개척하도록 촉구해 주겠습니다.』
원기 52년 법사님 부부는 학생 신분과 미혼으로 있는 3남매를 서울에 두고 대 용단을 내려 총부 부근으로 이사를 했다.
『훈련 없는 공부는 지속이 안 되고 수박 겉핥기임을 뼈저리게 느껴 하루 생활을 좌선 기도 염불 교전공부 등 정기훈련과 무시선 무처선 유무념 공부 등 상시훈련 과목으로 설정하여 닦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해 놓지 않으면 해이해지니까요. 저는 교무님들이 제일 부럽습니다. 그러나 이생에는 어쩔 수 없는 일, 심출가(心出家)나 하자고 다짐합니다만….』
심고도 올리다 보면 습관성이 되기 쉬워 기도 단축시간으로 정하고 정진한다.
종법사님께서 『정신 육신 물질로 다 바쳐라 하신 말씀을 받들고 그 분을 돕다 보니 ① 성지에서 살게 해 주신 은혜 ② 산 경전을 보게 하신 점 ③ 자력생활 하게 한 점 ④ 필요한 사람 되게 한 것 등 감사심을 발견하게 되었고 동업자로서 받는 괴로움 달게 받고 있으며 인과를 알기에 받아야 할 것 모두 다 받고 가도록 기원합니다.』
시지불견(視之不見) 청지불문(聽之不聞)이 잘 안 되고 자기화 하려는 때가 있어 깜짝 놀라 적공한다는 법사님. 그러나 안 좋은 인연이 화(和)할 때, 경계를 당해 끌리지 않고 취사할 수 있을 때, 진리와 대화할 때 통쾌한 기쁨을 맛본다. 특히 둘째 자부 유영수씨가 사직교당 「꽃단」단장으로 법맥을 이어가니 무엇보다 대견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자식들에게는 다만 대종사님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주어 대대손손 이 법문에서 제도 받을 수 있게 하는 염원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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