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성삼신불 갖추어 있고제
2편 대종경 성리품성리의 세계에는 시ㆍ공이 없다

 [29] 대종사 조실에 계시더니, 때마침 시찰단 일행이 와서 인사하고 여쭙기를 「귀교의 부처님은 어디에 봉안하였나이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우리 집 부처님은 방금 밖에 나가 있으니 보시려거든 잠깐 기다리라.」일행이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여 의아하게 여기더니, 조금 후 점심때가 되매 산업부원 일동이 농구를 메고 들에서 돌아오거늘 대종사 그들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시기를 「저들이 다 우리 집 부처니라.」그 사람들이 더욱 그 뜻을 알지 못하니라.
 성리의 용을 강조한 대표적 법문이다. 시찰단이 물은 부처님은 법신불을 말하고 소태산 대종사가 대답한 부처님은 화신 불을 말한다. 그러나 시찰단은 법신불ㆍ보신불ㆍ화신불의 삼신 불을 잘 모르고 있고, 등상불이 곧 부처님인 줄로만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농구를 메고 들어오는 산업부원들이 부처님이라는 대답은 더욱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처님이란 말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다. ①불교의 교조인 석가모니불 ②법당에 모셔놓은 불상, 목불ㆍ토불ㆍ석불ㆍ금동불 등 여러 가지 조불이 있다. ③일원상의 진리를 크게 깨쳐 일원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성에 합한 성자, 곧 삼학병진 수행으로 삼대력을 얻어 만능ㆍ만덕ㆍ만지를 얻은 사람 ④마음속에 사기와 욕심이 끊어져 유순하고 자비심이 많은 사람 ⑤불법의 진리를 믿고 부처님의 인격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의미가 있으나 대개는 ①과 ②의 경우만을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있고, 시찰단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원불교의 경우에는 ① ②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③ ④ ⑤의 의미를 더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만유불ㆍ처처불의 의미까지도 갖고 있다. 처처불상 사사불공, 무시선, 무처선의 교리표어도 이러한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원불교에서는 또 활불이란 말을 강조하고 있다. 흔히 석가모니불과 같이 훌륭한 인격을 갖춘 고승을 활불이라고 한다. 그러나 원불교에서는 여기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불법의 진리를 알상 생활에 활용하는 사람, 한편은 수행하면서 또 한편은 현실사회에 직접 뛰어 들어 교화하기에 노력하는 사람을 활불이라고 한다.
 법신불ㆍ보신불ㆍ화신불의 삼신불은 나누어 설명하기도 하나, 사실은 각자의 자성에 자성 삼신불을 갖추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성을 활용하기에 따라서 스스로 삼신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원불교에서는 봉불ㆍ시불ㆍ활불을 강조한다. 마음속에 삼신불을 받들고 있는 것이 봉불, 어른을 모시듯이 가까이 옆에서 모시고 있는 것이 시불, 스스로 불법의 진리를 실천하고 체험하고 활용하는 것이 활불이다. 자성삼신불을 동시에 모시고 있는 것처럼, 봉불ㆍ시불ㆍ활불도 스스로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다같이 성리의 활용을 강조한 것이다. 불법의 시대화ㆍ생활화ㆍ대중화란 표어 역시 이러한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시찰단 일행이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의 뜻을 잘 몰랐지만 성리공부를 하고 보면, 서가 모니 불이나 등상 불만이 부처님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부처님이 될 수 있으며, 그들 스스로도 부처님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삼세 제불이란 말이 있다. 과거 세의 부처님, 현재 세의 부처님, 미래 세의 부처님이란 뜻이다. 시찰단 일행도 미래 세의 부처님이 될 수 있다. 상 불경보살이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삼세제불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주는 말이다. 석가모니불이 과거 세에 상 불경보살이란 이름으로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 항상 모든 사람을 부처님이라 부르며 합장 공경했다. 거지를 보고도, 바보나 어린아이를 보고도, 하천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을 보고도 부처님이라 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까닭을 물은 즉 그들이 비록 지금은 거지요 바보요 어린아이요 하천하고 가난한 사람이지만 미래세계 어느 때인가는 반드시 성불할 것이므로 지금부터 미리 부처님처럼 합장 공경한다는 것이었다. 성리의 세계에는 시간과 공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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