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3월 26일 이른 새벽, 소태산 대종사는 20여 년의 구도 생활 끝에 마침내 일원의 진리를 깨쳤다.
3월 26일은 이와 같이 소태산 대종사가 진리를 깨쳐 새 부처님이 되신 날이요, 원불교가 창립된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3월 26일을 대각개교절로 경축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날을 맞이하면서 다시 한 번 원불교 개교의 의미와 소태산 대종사 대각의 뜻을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정신이 과연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가? 현대 사회에 있어서 물질문명의 눈부신 발달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정신문명의 확립, 인간회복 등의 필요성도 모두들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물질문명의 발달이 한계점에 거의 도달한 오늘, 인간 정신의 회복이 전 세계적 관심사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교단은 이와 같은 세계적 추세와는 역행하여 물량적 사고방식과 물질 추구의 풍조가 더욱 심해져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교단의 방향이 공부보다 사업을 위주로 하고, 정신적 가치보다는 물질적 이익을 더 추구하며, 수행인보다 사업인이 교단 지도층의 다수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도가의 명맥은 재물이나 시설에 있지 아니하고 법의 혜명을 받아 전하는 데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분명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원불교가 개교한 뜻은 이 세상에 물질낙원을 건설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광대 무량한 정신낙원 즉 모든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부려 쓸 수 있는 일원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마침내 일원상과 합일되는 인격완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우리 모든 원불교인은 대각개교절을 맞이하면서 다시금 수행인으로서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공부인은 공부에 집착하지 말고, 사업인은 사업에 얽매이지 말아서 오직 도를 구하는 수행인이 있을 뿐이다. 그래야만 일원대도는 인류 역사와 더불어 영원할 것이며, 일원의 광명은 시방삼세를 두루 비출 것이다.
총부 상주 선원의 개설
마침내 총부 상주 선원이 3월 12일 개설됐다. 이날 총부에서는 상주 선원 개원 기념법회와 아울러 현판식을 갖고, 많은 대중이 총부의 선 도량화를 기원했다.
대종사 당대의 총부는 명실상부한 선 도량이었다. 1년이면 여름 겨울 두 차례에 걸쳐 6개월간이나 전국에서 재가· 출가가 모여들어 수선 정진했다. 대종사는 중앙 선방에서 제자들에게 직접 법문을 전했고, 하나하나 근기 따라 지도했다. 총부에 사는 대중들은 틈나는 대로 염불 좌선에 열중했고, 심지어 산업부원들은 지게를 지고 가면서도 염불을 쉬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시선 무처선,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선 도량인 총부는 많은 정기가 감돌았고 그 기운은 멀리멀리 퍼져갔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변하고 교단이 발전함에 다라 선 도량으로서의 총부는 차츰차츰 변질해갔다. 수백 대중이 사는 총부는 집단사회의 성격이 강해진 반면 선 도량의 분위기는 차츰 흐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빅토리아 왕조나 엘리자베드 1세 시대의 영국은 마부들까지도 시를 읊었다고 하지만 산업부원이나 식당 공양원까지도 염불 좌선으로 수행 정진하던 초창기의 총부는 이미 옛이야기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이를 염려한 대산 종법사는 중앙훈련원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다시 상주 선원을 개설하느냐는 많은 사람들의 이해부족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상주선원의 개설을 추진한 것이다.
그 뜻은 총부를 다시 선 도량화 하고 교단의 구심점을 분명히 하며, 사업에 치중한 듯한 교단의 방향을 공부와 사업 병진으로 이끌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총부에 거주하는 대중은 항상 선객의 자세를 놓지 말아야 할 것이고, 사업 위주의 교역자는 공부하는 사업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전국의 모든 교역자는 상주 선원의 선객임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총부가 선 도량화 하고, 나아가 전 교단이 선 도량화 하며, 재가· 출가 전 교도가 선객이 되어야만 일원대도의 혜명을 받아 길이 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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