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와 국가발전 및 교운 융창을 기원하는 부산· 제주교구 대법회가 16일· 23일에 각각 개최되었다.
대산 종법사가 친히 법회에 임석하였고, 교단 원로와 간부진이 다수 참석하였으며, 부산· 제주교구의 교도들을 비롯하여 전국 각처에서도 상당수의 교도들이 모여 들었다.
대각 개교 경축절을 기념하여 일원의 진리를 온 누리에 널리 전하려는 이 행사가 대종사의 성령과 제불제성의 가호로 큰 성황을 이루었음은 매우 자랑스럽고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
이제 우리 교단은 이번의 행사를 계기로 국가와 사회에 더욱 큰 책임을 짊어졌다. 교단의 이익만을 도모하려거나, 교세를 허장성세로 뽐내려거나, 목적의식도 없이 대중이 모이기만한 행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 앞에 우리는 약속을 한 것이고, 진리는 또한 우리에게 세계평화의 횃불이 되며, 국가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사회정화의 거울이 될 사명을 맡긴 것이다.
세계평화는 법회나 기도식 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전쟁과 불의를 물리칠 용기와, 자신의 이익보다는 타인의 이익을, 오늘보다는 내일을 위해 생명이라도 희생할 수 있는 정열이 있어야만 평화는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오는 것이다.
국가의 발전도 글이나 말, 또는 대 집회만으로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조국을 사랑하는 충성심과 윤리도덕과 사회질서를 지키는 준법정신과 남보다 한 걸음 앞장서서 헌신 봉사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교단의 발전 또한 시위행사나 대 집회 또는 양적인 성장만으로 가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단 안으로 법과 질서가 잘 지켜지고, 제도와 행정이 합리적으로 운영되며, 상생상화 상부상조의 융화풍토가 조성되고, 교도 개개인은 진리의 일군으로서 사명감에 불타야 하며, 교단의 방향이 인류의 정신을 새롭게 바람직하게 이끌어가야만 진정한 발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우리 재가· 출가의 전 교도는 스스로의 서원을 더욱 반조하고, 교단은 모든 면에서 재정비 재검토의 과정을 거쳐 일원세계 건설에 힘찬 행진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사회 속의 종교
인류를 구제할 성자의 출현은 사회가 혼란하고 민생이 도탄에 빠졌을 때,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세상이 평화로울 때 군대의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며, 사회가 안정되고 윤리 도덕이 빛날 때 종교의 할 일이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는 사회의 거울이어야 하며, 사회는 종교가 발붙일 땅인 것이다. 원불교가 창립되던 1910대의 우리 사회는 극도로 불안하고 혼란한 시대였다.
그래서 당시의 종교계는 민족운동, 사회정화운동, 국민계몽운동, 국가 근대화운동, 자체 개혁운동 등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시의 종교는 사회 속의 종교였고, 고난의 사회를 대변하는 종교였으며,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종교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원불교 창립 당시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의 기치를 높이 든 것도 바로 사회와 고난을 함께 하려는 외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6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회 혹의 원불교라는 성격이 차츰 희미해져간다는 반성의 소리가 교단 안으로부터 일어나고 있다. 물론 객관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원불교의 사회성을 높이 평가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또한 원불교가 짧은 역사에 오늘의 발전을 가져온 촉진제 역시 사회성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창립 당시에는 교단의 이념이나 제도 운영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당시의 사회에 앞장서서 향도해 갔지만, 오늘에 와서는 사회에 오히려 뒤져있는 면도 상당히 있다는 사실도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많은 고민과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교단은 제도나 운영 면에 있어서 사회의 변천과 발전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발맞추어야 한다. 특히 교단 이념의 실현은 일원의 진리에 바탕 해서 사회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오늘의 사회가 안고 있는 진정한 고민을 외면하는 종교는 글이나 말 속의 종교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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