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문화적 주체가 되자
통일을 결정하는 역동적인 시기
문화적 서먹 거림 없도록 사회교육 전개

한국사회가 세계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부터이다. 그것은 완전한 주변부터 조금씩 탈피하여 세계사회의 한 주권을 가진 단위로 참여할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다면 보자 적극적인 중심부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나라가 통일의 될 것이며, 통일된 이후의 국가를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행후 우리나라가 세계체제에서 어떠한 의미를 결정하는 의미를 부여하리라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앞으로의 10년간, 즉 원기80년대는 통일을 결정하는 역동적인 시기가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앞으로 10년안에 통일이 달성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이러한 역사적인 과정에서 사회 내부의 어떤 단위가 능동적으로 역할했느냐에 따라 통일 한국의 좌표에서 자리 잡는 일이 판가름 된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치적 과정인가, 경제적 과정인가, 아니면 군사적 과정인가에 따라 새 나라의 주역이 정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종교가 통일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솔직히 말해서 없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 동안 한국사회의 여러 종교가 신도의 숫자를 늘리고 재산을 확충하는 일에 몰두해 온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한 교포학자는 한국의 종교를 관찰하고 나서 「종교 비즈니스」라고 평가한 일이 있었다. 종교가 기업화되어 경영의 원리에 따라서 조직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평가라고 할 것이다. 많은 종교가 북한교화, 북한선교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교세확장의 전략적 차원이나 선전적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식민지 시대에 소태산 대종사님이 어떤 일을 하였고, 원불교 교단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한 토론이 교단 내부에서 자주 있었다. 친일적인가, 항일적인가, 보다 적극적으로는 해방자로서의 역할을 했다던가. 또는 국가관이나 역사관을 실천할 만큼의 세력단위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무의미한 논쟁이라든다 하는 다양한 견해가 있었다.
후세 사람들은 오늘날의 원불교에 대해서 같은 종류의 역사적 평가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원불교도 통일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의미 있는 역할을 자임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과 관련하여 원불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선 동일교욱에 참여하는 일이다. 통일과정이나 통일된 이후에 남ㆍ북한 사람들 사이에 문화적 서먹거림이 없도록 사회교욱차원에서 교당을 통하여 활동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정부가 하는 일이 아직도 기대 이하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다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종교의 본령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남북한 사람들 사이에도덕적 일치를 유도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연변교도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사회적차원에서 훈련을 통해 개조해야될 만큼의 수준이다. 삼성훈련을 통해 가꾸어지는 동포에는 새나라의 원기(元氣)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원불교는 남북교류나 통일운동의 단위를 만들어서 실질적인 교류를 추진할 수가 있을 것이다.
종교인은 정치가의 남북협상이나 부간방문을 흉내내기 보다는 진실을 보여주는 언행으로 모범이 되어야 한다. 또한 종교인은 기업가의 남북교류를 흉내내기 보다는 사회복지의 차원에서 필요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것이 바람직하다. 언행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는 실제적 활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점에서 볼 때 원불교 청년회의 남북 한삶운동은 의미 있는 씨앗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단 내부의 지위 계통을 강화하는 조직활동이나 교도 숫자 불리기를 위한 선전활동보다도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이 종교의 존재 이유라고 하는 인식을 하여 원기80년대를 통일운동의 시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통일운동의 문화적 주체가 되는 것이 세계사회에서도 공헌할 수 있는 경력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김도종 <교무,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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