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는 구도의 발걸음

짧았으나 굵고 뜨거운 생애을 살다간 각산 신도형 종사를 2월의 선진으로 선정했다. 각산 종사는 원기 21년 3월 19일 영광에서 태어나 원기58년 2월 1일 38세의 젊은 나이로 열반했다.

각산종사의 생애는 크게 수학정진기(원기42~47년)와 교역기(원기48~58)로 나뉘어진다. 각산은 원기42년, 22살의 나이에 출가는 정산종사와 누님인 신제균 종사의 큰 배려와 관심이 있었다. 정산종사는 『큰 법기가 왔다』고 기뻐하였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육조의 후신이 왔다해도 학비 없어서 안 가르치겠느냐』고 가지 할 정도였다.

각산은 건강하지를 못했다. 원기44년 지병이 재발하여 4년여를 장수교당등에서 정진요양하면서 큰 법력 얻었다. 이 기간중 그는 「눈을 떠도 잠을 자도 오직 이한길, 이공부 이사업」의 대서원을 세우며 3대력을 쌓는데 무서운 적공을 쌓였다.

원기48년 총부 예무를 시작으로 교역의 길을 걷게 된다. 완도교당 보교(補敎:교무역할 보좌)로 불목교당의 터을 잡았고 교화부 순교감, 교화과장, 법무실 법무를 거쳐 원기53년부터 동산선원에서 후진을 양성하게 된다.

6년간 의 선원근무동안 그는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각산은 강의하기 전 『이 회상 만났을 때 마음공부 잘 합시다』고 한 후 강의하였고 평소에도 훈련을 강조한 공부인이었다. 독특한 문답식 공부로 특색있는 경지를 개척하였다. (이때의 강의 교재가 사로(원기59년) <교전공부>로 출판되었다.) 후진들에게 성불제중의 서원을 불어넣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고 자신도 구도의 발걸음을 쉬지 않았다.

방학 때나 휴일에는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전하느라 애썼다. 원기58년 열반하던 그해 겨울에도 교리강습을 하던중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주사를 맞다가 부작용으로 갑자가 열반에 들었다. 대산상사님은 「여래판이다」고 인증하였고 교전공부가 출판되었을 때 「짧은시간에 이와같이 큰 일을 하였다」고 찬양하였다.

저서로서는 후진들에 의해 <교전공부> (원기59년, 워기77년 각산문집 Ⅰ로 개정판발행) 각산문집 Ⅱ<여의>가 있다. 법위는 출가위로 추존(원기76, 4. 28)되었다.

이달에 열반한 선진은 이원화 이태연 조만식 유건 최도화 황명조 이순전 정관음행 유귀남 한귀지화 송일환 이선경 이보국 이현진 이춘풍 박원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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