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윤리교육의 실천적 사회운동

傳聞된 바에 의하면 지난 10월 22, 23일 양일간에 걸쳐 전국 각 대학의 국민윤리 담당 교수들이 이화여대 강당에 모여 국민윤리의 효율적인 지도 방안에 대하여 협의하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교수들은 한결같이 『국민의 도덕력이 국력의 가장 기본적인 원천이 되며 따라서 국민윤리 교육은 단순한 知育으로 끝날 수 없고, 반드시 실천적 행위에 연결될 수 있도록 지도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한다.
 과연 국력의 기본은 국민의 도덕력임에 틀림없다. 대로마 제국이 멸망한 원인도 로마 시민의 도덕이 타락한 데 있었고, 신라, 백제, 고려가 멸망한 것도 모두 도덕력이 약화 된 데 그 기본적인 요인이 있었던 것이다. 중동전쟁에서 군대와 무기가 숫자적으로 월등하게 우세한 아랍을 이스라엘이 무찌를 수 있는 기본적인 요인도 바로 이스라엘 국민의 강력한 윤리의식에 있는 것이다. 이차대전에 패망한 일본과 독일이 단시일 내에 유수한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도 결국은 두 나라 국민의 높은 국민적 윤리의식에서 그 근본적 요인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에 머물러 있다가 정년퇴임으로 귀국하게 된 모 일본대사가 기자들이 묻는 한국인의 인상에 대하여 『한국인의 능력은 참으로 뛰어 났기 때문에 일본사람이 도저히 겨룰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 3인 대 일본인 3인이라면 아마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경제를 부흥하고 국토를 통일하여 자랑스러운 선진국을 이룩해야 할 우리 한국인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국민적 윤리의식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원불교의 큰 목적은 세계에 새로운 윤리를 실현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이 지역사회, 이 국가사회에 바람직한 윤리 풍토를 이룩하지 못한다면 어찌 세계의 윤리 풍토를 갱신할 수 있는 자격이 있겠는가?
 도덕력이란 분명히 실천력이다. 도덕력이란 아는 데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아는 것을 실천하는 데서 나오는 힘이다. 국민윤리 교육은 종국적으로 국민의 실천적 행위에 변화를 일으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 대학에 있어서의 국민윤리교육도 필요하겠으나 더욱 긴요한 것은 그 윤리교육이 실천적 행위로 연결되도록 하는 실천적 사회운동이다. 이 실천적 사회운동의 주도적 역할은 종교가 맡아야 할 것이며, 그 가운데서도 새 시대의 새 종교로 자처하는 우리 원불교야말로 이 실천 운동에 앞장 서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원불교가 말하는 새로운 윤리 방향이란 어떠한 것인가? 여러 가지 항목을 열거할 수 있겠으나 여기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하고자한다.
 첫째, 모든 장벽을 트는 윤리이다. 원불교의 기본 윤리는 恩의 윤리이니 우리 인간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네 가지 은혜로 말미암다 존재하는 우리이니 아무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은혜를 찾아 너와 나 사이의 장벽을 헐고 나아가 민족 간의 장벽, 지역 간의 장벽, 사상 간의 장벽을 헐어 본래 있었던 하나의 민족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 장벽을 트는 일원의 윤리를 북한에 있는 공산주의자들의 가슴속에까지 하루 속히 심어 줌으로써 사상을 넘어서서 한 형제의 자리에 돌아오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靈과 肉을 아울러 오롯이 하는 윤리이다. 곧 도학과 과학을 병진하는 윤리이니, 영과 육이 분리될 때 우리는 이미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의 윤리는 영혼의 구제를 주장하는 윤리이었으나 새 윤리는 인간의 현실생활을 위한 윤리인 것이다. 그러기에 佛法是 生活, 生活是 佛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불법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과학으로 육신을 다스려 마음과 몸이 아물러 건전한 인격을 이루고 나아가 너와 나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낙원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