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부가 조각사들이 조각하는 것과 같다. 수행으로 만든 인격과 수행없이 만들어진 인격은 다르다. 또한 수행의 단계에 따라 인격의 차원도 다른 것이다.

여기서 인격을 만들어 놓고도 그 상이 없어야 참 인격을 이룬 것이다.

'수보리(須菩提)야 어의운하(於意云何)오 수다원(須陀洹)이 능작시념(能作是念)호대 아득수다원과부(我得須陀洹果不)아 수보리(須菩提)- 언(言)하사대 불야(不也)니이다 세존(世尊)이시여 하이고(何以故)오 수다원(須陀洹)은 명위입류(名爲入流)로대 이무소입(而無所入)이니 불입색성향미촉법(不入色聲香味觸法)일새 시명수다원(是名須陀洹)이니이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수다원(須陀洹)이 능히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내가 수다원 과(果)를 얻었다' 하겠느냐."

수보리 말씀하되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한 연고인가 하오면 수다원은 입류(入流)라 이름하오나 들어간 바가 없사오니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 과 부딪침과 법에 물들지 아니할새 이를 수다원이라 이름하나이다."

수다원은 입류(入流)란 뜻이다. 흘러들어가나 들어간 바가 없다. 색성향미촉법에 들어가지 않을 새 수다원이라 한다. 입류란 불보살 세계로 들어선 때이다. 들어가나 들어간 바가 없다. 즉 색성향미촉법에 물든 바가 없는 것이다. 불위역순뇌(不爲逆順惱)하고 무위성색전(無爲聲色轉)하는 것이다. 이 단계까지 가야 수다원이다.
예를 들면 술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갑자기 끊으려고 하다보면 몸에서 코피도 나기도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물든 것을 끊으려 애를 써서 끊고 보면, 나중에는 끊을 것이 없게 된다. 이 정도까지 가는 것이다. 물이 안 들었다는 것은 아이와 같다. 안 들었다는 것도 없는 경지에 가는 것이다.

즉 육진에 물들지 않고 한결같이 샘이 없는 업을 닦아 굵고 무거운 번뇌가 나지 아니함을 얻어 결정코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수라 같은 딴 무리의 몸을 받지 아니함을 이름하여 수다원이라 하나니 만약 상없는 법을 알면 곧 과를 얻은 마음이 없음이니 조금이라도 과를 얻었다는 마음이 있으면 곧 수다원이라 이름하지 못할새 고로 아닙니다! 라고 말씀하심이다.

만덕산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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