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화를 이 시대에 어떻게 볼 것인가?
좋은 기운 모아져 비로소 탱화완성
전통 바탕해 끊임없이 연구·발전시켜야
단풍이 아름다운 계절이다.이럴 땐 아예 절에 들어가서 한 달쯤 푹 눌러앉아 기도하면서 산도 보고 물도 보고 하늘도 보면 좋으련만 마음으로 끝내고 만다.
절에 가면 우선 아름드리 기둥 위에 알록달록 단청된 건물을 본다. 그 건물 안에는 어김없이 탱화가 있다. 부처님 뒤에는 후불탱, 산신각에는 산신탱, 관음전에는 관음탱, 지장전에는 시왕탱, 칠성각에는 칠성탱 등 탱화의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표현되는 채색이나 기법 등이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
탱화는 종이나 비단 또는 베(布) 바탕에 불보살의 모습이나 경전의 내용을 그려 벽에 걸도록 만들어진 불교 그림이다. 현재 전하는 고려·조선시대 불화 가운데 대부분이 이 탱화의 범주에 드는 그림으로 탱화하면 곧 불화를 떠올리거나 같은 뜻으로 쓰고 있지만 이는 불화의 한 형식이다.
탱화의 종류는 그려진 주제의 내용에 따라서 상단(上壇)·중단(中壇)·하단(下壇)탱화로 구분된다. 상단탱화는 전강의 상단 즉 불전(佛殿)의 중앙에 모셔진 불보살상의 뒷면에 거는 탱화다. 중단탱화는 불단의 좌우측에 있는 영가단(靈駕壇)에 거는 탱화로서 주로 신중(神衆)이나 호법신(護法神) 등을 그린다. 또 하단탱화는 명부전의 지장보살·시왕상 뒤에 거는 탱화이다. 대체로 불전의 좌우측 벽면에 설치되는 하단의 전면에 영가의 위패나 사진을 봉안하고 그 뒤에 감로탱화를 건다.
우리나라 탱화의 특징을 살펴보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그리고 현대 이렇게 크게 나눌 수 있다. 고려시대 탱화는 세계 경매 시장에 나오면서 그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알려졌다. 고려불화는 백 수십 점이 현존하는데 대부분 일본에서 소장중이다. 고려불화에 관심이 많아진 것은 호암 미술관에서 고려불화 작품을 대부분 일본에서 빌려와 전시한 후일 것이다.
조선시대 탱화는 오방색으로 그려진 탱화가 주류를 이룬다. 고려불화에 비해 기량이 부족하다는 학자도 있지만 시대의 변화로 보는 것이 더 맞는 말일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는데 수 백년 동안인데 탱화라고 변하지 않을까.
현대 탱화는 탱화장들이 각자 신심과 열정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데 다른 그림에 비하여 훨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현대를 사는 지금에는 현대에 맞는 탱화가 있어야한다는 생각에 많은 작가들이 변화를 주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한다. 그러나 탱화는 예술 이전에 예불이 목적이기 때문에 절을 할 때 거부감이 들어서는 안 된다. 요즘 그려지는 탱화를 보면 전통 기법을 바탕으로 금빛이 나게 그리기도 하고, 전부 갈색 톤으로 하면서 엷게 채색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훌륭한 탱화작가들인데 그 진가를 알아주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 탱화가 나오기까지는 탱화를 그리는 사람의 마음과 탱화를 주문하는 스님과 탱화에 시주하는 대중들의 마음이 모아져 비로소 예불을 할 수 있게 완성되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많은 이들의 좋은 기운이 모아져 비로소 탱화가 완성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오늘의 탱화는 분명히 과거의 것과 차별화되어야한다.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과거의 것을 완벽하게 모사해내는 것이 아니다. 전통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연구하여 발전시키는 것이 올바른 전통계승이라는 생각이다. 그러기위해 탱화를 그리는 이들은 전통을 공부한 후 전통을 바탕으로 한 탱화를 그려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탱화가 다른 예술과 비교해 볼 때 더욱더 중요시되는 것은 예불 대상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종교 미술은 교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과 장엄하기 위한 것이지 예배 대상은 아니다.
탱화가 서양의 종교 미술과 다른 점은 세필로 표현한 한국의 독특한 표현기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전시를 할 때 프랑스 사람들이 감탄을 하며 사람 손으로 정말 그린 것이냐는 질문이 많았다.
탱화는 정성 그 자체다. 탱화는 누가 그리든지 서양인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그림이다. 세계화할 수 있는 그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의 탕카는 상품화되어 세계 각지로 보내지는데 우리나라의 탱화는 티베트의 상품화에 비한다면 시작도 안한 상태이다.
티베트를 다녀온 지인들이 선물로 준 탕카를 2점 가지고 있다. 나도 2점을 갖고 있는데 얼마나 많은 양이 세계로 흐르는지 정말 부러울 뿐이다.
우리나라의 탱화와 티베트의 탕카는 우선 상호에서 차이가 난다. 우리는 탱화의 원만상을 보아왔고 그것에 익숙해져 있는데 탕카는 상호가 탱화에서 보는 것하고는 차이가 나기 때문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같은 불상을 그린 탱화라도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탱화를 배우기 위해서 선필 연습을 10년 이상했다. 선필이 아무리 어려워도 10년이 걸리는가? 아니다. 그 기간에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게 아니라 힘든 일만 시키는데 못 견디는 사람은 떠나는 것이다. 좋은 품성을 지녔는가의 시험 기간이다. 탱화를 그리는 데는 기본적인 태도는 마음인 것이다.
처음 신중탱화를 주문 받았을 때의 일이다. 밑그림을 그리면서 잠깐 조는데 물소리가 났다. 그 뒤 초가 거의 완성될 무렵인데 계곡의 물이 보였다. 그 신중탱화의 하단에 바위와 물을 그렸다. 그 뒤의 얘기는 그 신중탱화는 딸을 위해 시주했는데 딸의 태몽이 물이라 했다.
그 신중탱을 어느 암자에 봉안했는데 영험이 대단하다는 소문….
좋은 마음으로 탱화를 그려야 한다는 나 스스로의 경험이고 그 마음을 지금껏 간직한다.
탱화를 배우기 시작한지가 벌써 햇수로 29년째이다. 은사님인 구봉스님을 처음 뵙고 문하생이 되어 18년 째 되던 1998년 88세에 열반에 드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빨리 가신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뿐이다. 100세 이상 사실 것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에 구봉스님 탱화 계보에 대해서도 자세히 여쭙지를 않았다.
구봉스님은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탱화장이셨고 열반에 드실 때까지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건강하셨다.
인생이 허망한 것이라 알고는 있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이승을 뜨는 것을 보면서 부처님의 법문을 본다.
10년 전에 옥과 성륜사 탱화를 그리면서 절에서 100일 동안을 살았는데 제자들과 함께였다. 절에서 보는 밤하늘은 유난히 까맣고 별은 왜 그리도 가까이 있는지, 달 또한 도시에서 보는 그런 달이 아니다. 새벽의 도량석은 하늘과 맞닿은 소리가 되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스님만이 느껴 보는 것을 나도 보는 것 같아 참 행복했었다. 마음이 커진 것 같은 느낌도 갖고 참 평안했었는데 절 생활이 그리워진다. 그 때는 청화 큰스님이 주석하셨을 때인데 탱화가 완성된 후 보시고는 '극락에 다녀온 사람만이 그릴 수 있다' 이렇게 크게 칭찬하셨다 한다. 몸 둘 바를 몰랐지만 그 또한 큰 스님의 큰 법문이라 느꼈다. 좋은 마음에서 좋은 말이 나오며 칭찬이 나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남 칭찬하는데 인색하다.
올해는 눈이 많이 오는 날 절에 가야겠다. 가서 절의 기운으로 부처님의 기운으로 좋은 마음으로 이쁜 그림을 그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