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애로와 난관이 남 달리 많지만 참고 견디어 나아가면 언젠가는 성공하는 날이 온다.
◇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나쁜 일이 있을 때 나를 가지지 말고 언제든지 한결같이 진실하게 살자. 진실하고 보면 모든 일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 지금은 교단창립의 초창기라서 많은 역경과 고생스러움이 있지마는 내 마음에 아무런 사심이 없이 꾸준히 일하고 보면 교단의 발전과 더불어 자신의 발전도 따라서 있는 것이다.
◇ 아무리 조그마한 일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신용을 잃어서는 안 된다. 내가 먼저 신용을 잃지 않아야 남도 나를 신용해 주는 것이다.
□ 약력 □
○ 1891년 2월 11일 전남 영광 백수에서 출생.
○ 원기 2년 수위단원에 피선
○ 원기 3년 8월 1일 출가
○ 원기 4년 7월 26일 일산 법호 증여받음
○ 원기 9년 4월 29일 오창건 연원으로 입교.
○ 원기 13년 영산 상조부장.
○ 원기 19년 총부 서정원장.
○ 원기 26년 총부 현사산업장
○ 원기 27년 총부 산업부장
○ 원기 28년 11월 15일 영광에서 열반.
○ 교단봉직 26년, 실무 19년.
○ 법훈: 대봉도위
○ 성적: 공부- 정식법강항마위, 사업- 특등.
○ 원성적: 준특등.
□ 생애 □
1891년 영광군 군서면 학정리에서 탄생. 온후하고 겸손한 성격, 휜 칠한 키, 시원한 몸매, 당당한 풍채의 선비였다.
원기 1년 5월에 대종사님의 명을 받들어 「불갑사」에 가서 「금강경」을 구해왔으니 때에 나이 26세의 청년.
평소 좌담과 사교에 능숙했던 관계로 방언공사 때에는 허가 신청의 분쟁이 일어나서 매우 곤란한 경우에 부닥쳤어도 이를 잘 처리했다. 총부를 건설할 때 미약한 경제기반을 세우는 데에도 은행과의 교섭을 잘해 크게 힘을 얻었다.
강단에 올라서서 설교를 한 일은 없었으나, 뛰어난 식견과 능숙한 화술로 사람들을 잘 설복시켰다.
대종사님과 같은 해에 출생, 같은 해 11월 15일에 열반, 원기 3년에 출가, 26년간 전무출신 하였다. 목포지부 이정무 교무는 일산님의 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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