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상사를 통해 본 원불교

근세적인 여건 속에서 불교를 연원으로 일어난 원불교는 현대 한국의 특유한 사상이다.
1. 사상과 역사성
인류의 사회생활이나 사상 및 그 밖의 모든 문화상에는 역사성이란 것에 있어서 하등동물계와 구별이 있게 된다. 인류의 사상문화는 일시에 형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터전을 닦아 놓으면 후세 사람들은 그것을 기초로 해서 그것을 더욱 더 키워나게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토대로 해서 새로운 사상문화를 창작하게 되는 것이지, 「무」에서 새롭고 훌륭한 사상문화를 현출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종교에 있어서는 그 역사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예컨대 불교 하면 바라문교를, 기독교 하면 유태교를, 개신교 하면 기독교를, 원불교 하면 불교를 각각 회상하게끔 된다.
역사성의 문제를 한국 사상사 위에서 볼 때 내적이면서 정신적인 역사성은 변이 되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며 외적이고 방법적이고 형식적인 양식은 알 수 있다. 여기서 한국 사상이란 한국의 철학 사상만을 일컫는 것이다. 이것은 외래사상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 대 자연의 불가사의하고 위대한 조직을 경탄 숭배하여 이것이 일종의 종교의 형식으로 발전하여 한민족에게 특유한 일생관과 세계관을 갖게 된 고유사상디대와 삼국 중엽부터 고려말까지 약 9백 년 동안 불교로서 대표되던 불교사상 시대와 이조초기부터 이조말엽에 이르는 약 5백 년 동안 유교로서 대표되는 유교사상시대, 전시대사상을 거울삼아 북한과 서학의 반동으로 나타난 동학과 비슷한 사회여건 속에서 불법을 주체 삼아 일어난 원불교로 대표되는 현금의 한국 사상정비시대 등을 보아도 종교사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사상사의 4기에 있어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은 「한」, 「心」, 「氣」, 「氣者」, 「圓」 등이라 하겠다. 이들을 존재론적 측면에서 개관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 「한」의 사상
「한」의 사상의 사상은 우리 민족이 본래부터 지녀온 고유사상이다. 「한」(Khan, Kan, han)은 「一」, 「大」의 뜻이다. 「一」은 각 개물의 하나를 뜻한다기보다도 全一을 뜻한다. 이 「一」은 만물을 낳아놓는 본체인 동시에 종교적 신앙의 대상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한」에는 성실이 밑받침된다. 노자의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의 「一」과 부합되는 점이 있다. 이 「한」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 하늘(天)의 사상이다. 天은 一과 大의 합자이니 唯一至大의 의미이다. 옛사람들은 존재의 원리이나 조건을 하늘에서 구하려 하였고 우주 안의 삼라만상의 근본과 삼라만상을 생성 변화시키면서 우주 대자연을 신비스럽게 꾸며내는 것은 하늘이라 보았다. 특히 하늘에 있는 태양을 최고의 광명신 및 생산의 주재신으로서, 또한 악귀를 몰아내는 권능가로서 숭배하였으니 이와 같은 하늘을 떠나서 일체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② 「心」과 「氣」
「한」의 원리가 다음 시대로 넘어가면서 「하늘」대신에 「心」으로 바뀌어진다. 불교사상에 있어서는 마음은 모든 만물의 본체이며 우주의 이법이라는 것이다. 모든 현상계는 여러 가지 차별상을 가지고 한없이 생성변화를 하고 있으나 그 본체인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원효가 당나라로 유학 도중에서 토굴에서 해골에 고여 있던 빗물을 마신 후 삼계유심 만법유식의 원리를 깨닫고 「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觸루 不二」라고 말한 것이라든지 보조가 자기의 마음을 버리고 만물의 진리를 밖에서 구하려는 자들에게 「苦欲求佛 佛卽是心 心何遠覓」이라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의천도 역시 현상계의 만물의 존재원인을 마음에 두고 있고 마음이 없는 우주의 모든 사물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이 같은 마음의 바탕은 동일성 무유차별 즉 誠이다. 유교사상 시대에서는 「心」이 「氣」로 대체된다. 화담은 우주의 본원처를 「氣」라 하고 氣는 형상도, 감각도 없고 무시 무궁한 것으로서 그 온 바를 알 수 없으나, 그러나 천지가 이에서 생겼고, 모든 삼라만상이 氣에서 발생하였고, 또 이 기의 작용에 의하여 만상의 무한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原理氣」에서 설명한다. 퇴계는 우주의 삼라만상은 모두 이기이원으로 된 것이며, 理와 氣는 상의 상존 하여 체용을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氣 있는 곳에 반드시 理가 있고 理 있는 곳에 반드시 氣가 있다는 것이다. 율곡도 퇴계와 같이 우주의 본체는 역시 이기이원의 개념으로 구성한다고 보고 理氣의 관계에 있어서 理通氣局이란 말로 표현하여 우주의 체를 이로 보고 용을 기로 보아 우주의 복잡한 생성변화를 설명한다.
③ 氣者와 一圓
한국 사상정비시대에 와서는 「氣」가 「至氣」로, 「心」이 「圓」으로 바뀐다. 전자는 동학사상이요, 후자는 원불교사상이다. 수운은 우주 삼라만상의 실재의 근본은 기이고 이 기는 미묘하고 아득하여 사물에 숨어 있으면서 사물에 관계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또 사물을 다스리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데 이 氣는 형태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형용할 수 없고, 들리는 듯하면서도 듣기 어려운 것이니, 이것은 만물이 갈리기 이전의 오직 하나인 氣이다. 이 氣가 발전하는 과정에 있어서 현실세계의 모든 상생상극의 묘용 즉 낡은 것과 새 것이 서로 교체하는 필연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대종사는 「一圓」으로서 우주만물의 본원으로 삼았다. 그는 만물생성의 근원을 일원이라 하고 우주에는 불생불멸과 인과보응 되는 진리, 즉 진공묘유의 이법이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일원은 인간의 언어로서는 설명할 수는 없고 또한 설명을 초월한 우주의 본체이나 설명되는 것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네 가지 범주로 나눈 현상계에 있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원은 초인식적인 실체이나 현상을 초월한 존재는 아니고 현상은 일원의 조화작용의 발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일원 즉 사은). 그는 또 현상세계의 전개과정을 유상과 무상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상에 말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 고유의 사상에서나, 전래 수용된 불교나 유교에서나, 그리고 한국사상의 정비라고 보는 동학 및 원불교에서는 내적이고 정신적인 역사성은 변이 되지 않고 고래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영역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근세적인 사상의 추이와 원불교
그리고 외적이고 방법적이고 형식적인 양식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으나 여기에도 수행의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을 근세적인 사상의 추이에 한정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조는 국가통치의 지도 원리로 儒道를 채택했다. 이조 유학 특히 주자학은 화담, 퇴계, 율곡, 노사, 한주, 녹문 등의 거유를 배출했으나, 일반적으로 우리의 실생활과는 무관한 공리공론만 되풀이하고 실천이 없었으며, 또 유교사상 중에 내포되고 있는 계급사상 같은데서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인간의 존재성 내지 존엄성이 완전히 무시되어 있었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현상에 대한 반동으로 정치, 경제, 윤리 등의 모든 면에서 재 비판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으니, 儒家 그 자체에서 먼저 일어난 것이 실사구시를 표방하는 실학파(북학)이다.
①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무실역행의 고조
그러니 박제가 이후의 사상가들은 대내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의 회복과 무실역행을 고조했다고 보겠다. 이것은 치자본위의 낡은 유교사상의 한 반동이다. 홍대용은 「재질과 배움이 있는 자는 농부나 상인의 자제라도 높은 벼슬을 한다고 분수에 넘친다고 아니할 것이요, 공경의 자제라도 재학이 없는 자라면 수레를 끌게 한다고 한할 것이 못된다.」고 하여 만민평등의 입장에서 오직 실력본위로 적임에 종사함이 당연하다고 하며, 일심불성이면 일이 모두 무실한 법이니 오직 실심 실사로써 날로 실지를 밟을 것을 말한다. 박지원도 양반전에서 양반의 고루한 형식주의와 이면생활의 자기모순을 꼬집고 독서를 하되 실용을 모르는 것은 講學이 아니오, 강학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 실용 때문이라고 하였다. 실학파의 성실은 인간의 존엄성을 이루는 것이었고 그 성실은 실천궁행을 위주로 하는 실사구시의 사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그 후 동학의 인내천, 사인여천의 사상과 원불교의 사은사요의 사상이 나왔다. 수운은 논학문에서 「吾心卽如心」또는 「天心卽人心」이라 하고, 해월은 「人是天이니 事人如天하라」고 하였고 의암에 이르러는 「自心自覺이면 身是天 心是天」이라 하여 인내천을 천도교의 요지로 하였다. 여기서도 誠을 근본자세로 역설한다. 해월은 「誠者는 心之主요 事之體니 修心行事에 非誠이면 無誠이니라.」하고 純一을 誠이라 하며 無息을 誠이라 하는 것이니 이 純一無息之誠으로 하여금 천지와 더불어 同度同運케 하면 方可謂 大聖人이라고 하였다. 의암도 誠이 覺의 유일한 밑받침임을 밝히었고, 역시 誠之又誠을 잃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소태산대종사는 과거에는 반상, 적서, 노소, 남녀, 종족 등의 차별이 있어서 이러한 불합리한 차별제도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아왔으나 이제는 모든 사람을 근본적으로 차별 있게 할 것이 아니라 구하는 데에 있어서 지자본위로 할 것을 역설하고 (사요 중 지자본위 참고)또 말하기를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만유로서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나니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이든지 항상 경외심을 놓지 말고 존엄하신 부처님을 대하는 청정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천만 사물에 응하라」(교의품 4장)고 하여 인간의 존엄성 뿐 아니라 현상계의 여러 사물에 대해서까지 그 존재성을 고조하였다.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현묘한 진리를 깨치려 하는 것은 그 진리를 실생활에 활용하고자 함이니 만일 활용하지 못하고 그대로 둔다면 이는 쓸데없는 일이라」(교의품 8장)하여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이란 기치를 높이 든다. 여기서는 한 개인이 완전한 인격(佛果)을 이루는 동력인으로서 신과 분과 의와 성을 들고 있으며 이 네 가지만 지극하면 공부의 성취는 날을 기약하고 가히 얻을 수 있다고 한다.
② 주체 의식에 대한 각성
위에서 우리는 차별타파와 성실이란 정신적 기반을 통하여 인간의 존엄성의 회복과 무실역행의 면이 강조되었음을 보았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대외적인 면에서 볼 때 자기의 주체의식에 대한 각성을 들 수 있다. 무실역행의 고조는 經世擇民의 사상을 낳고 이것이 서학 즉 기독교가 들어옴으로써 외래의 사상문화 및 과학기술의 섭취에 따라 유럽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 민족은 민족적 의식과 국가적 의식에 대한 깊은 자각이 없을 수 없었다.
원불교에서도 우리 민족의 주체의식이 엄연히 살아 있음을 본다. 원불교의 개교표어에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하는데, 이것은 20세기 물질문명에 대비하여 물질을 사용할 수 있는 정신문명을 병행 발전시키자는 데 있으나 또 한편으로는 외래 문물의 무비판한 답습으로 우리의 고유의 사상문화를 흐리게 하지 말고 우리의 것으로서 외부의 것을 요리하여 소화하자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그 한 예로서 소태산대종사는 우리의 글과 금강산을 들고 있다. 즉 그는 한문지식만 중히 아는 처자에게 어려운 한문만 숭상하지 말라고 타이르며 우리말로 편찬된 경전을 세계 사람들이 서로 번역하고 배우는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전망품 3장)고 말하며, 또 금강산은 천하의 명산이라 멀지 않는 장래에 세계의 공원으로 지정되어 각국이 서로 찬란하게 장식할 날이 있을 것이며 그런 뒤에는 세계의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그 산의 주인을 찾을 것인데 그 주인된 이는 그들에게 자기의 특유한 것을 준비해서 보여주어야 한다(전망품 5장)고 한다.
③ 맺는 말
그럼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그 특유한 것은 무엇일가? 이것은 어떤 물질문명의 소산이라기보다 정신문화의 소산임을 가히 推知할 수 있다. 오늘에 이르러서 한국 사상사에서 그 특유한 사상은 전래 유교사상을 거울삼아 북학과 서학의 반동으로 나타난 동학사상과, 근세적인 여건 속에서 불법을 주체 삼아 일어난 원불교 사상임을 앞에서 말했다. 이 두 사상은 비슷한 상황의 여건이었으나 그들이 주체 삼고 이어받은 역사성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는 양식도 다르며 또한 포괄성도 상이하다. 포괄성의 문제만 보더라도 二者가 각각 토대로 삼은 유교와 불교를 비교해 보면 쉽게 추단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한국 종교로서의 원불교는 세계성을 가진다. 그리하여 소태산대종사의 뒤를 이은 정산종사는 「동원도리 동기연계 동척사업」의 삼강령을 내걸고 대세계주의자가 될 것을 역설하였다.
이상으로 한정된 지면 위에서 한국 사상사를 통해서 원불교를 개관하였거니와 한국사상사 위에서 원불교의 사상은 앞으로 중요하고 관심 있는 한 연구의 영역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산대학교 문리대 강사·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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