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교조의 방향
사심 없이 교단에 바쳐버린 선진들의 일생
사은사요는 현대인의 생활원리

 반백년을 넘어선 원불교는 50년 역사를 꾸며야 한다고 문제시하고 있다.
원불교 역사의 서술은 먼저 대종사의 기본정신과 그 위업의 독창성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아야 한다. 역사관과 역사의식이 없는 설명위주의 변호적 이론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역사는 한 두 사람의 손으로 기록될 수는 있지만 한 두 사람의 참여로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갖고 참여하여 모색되어져야 한다.
 원불교 교단이 반백년을 넘어서면서 내외적으로 기적이라고 하리만치 호응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안으로 경험 많은 기성 인재들이 찾아들며, 인품이 훌륭한 젊은이들이 이곳에 깊이 있고 뜻이 있다고 찾아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밖으로 교화활동이 활발하여 상층사회의 지성인들로부터 저층사회에 이르기까지 기대하고 갈망하는 교법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원불교는 현대인의 생활원리로서 어느 사회에서든지 역할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대승적 교화의 장이 마련된 만큼 그에 따라 대중감화의 위력도 크게 발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야말로 대종사, 그리고 역대 종법사의 인간학을 다시 새롭게 계발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세계를 위하여 살고 간 선진들의 행적을 파헤쳐 그들이 심은 얼을 찾고, 법으로 질박아진 일생의 경륜을 살펴 체계화, 조직화해야 될 시기에 놓인 것이다.
 오늘날의 원불교를 형성해 온 것은 곧 교단을 이끌어 온 선진들의 위대한 단합력, 공명정대한 정신력, 일사불란한 질서의 유지 등이 있었기 때문이라 본다. 그들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암담한 시기에 법도 있는 실천행으로 한국인의 정신자세를 바로잡고, 나아가서는 그 당시에 이미 세계의 복지화 운동에 앞장서는 실천을 감행했던 것이다.
 대종사가 대각을 한 후 교화하고 열반에 들도록까지는 일제의 식민지탄압이 극심했던 시기였다. 그 당시 일제는 내선일체라는 미명아래 한민족의 정신을 돌려놓기 위해 무단정치에서 소위 문화정치라는 방향으로 전환하여 우리의 기본문화를 파헤쳤다. 그리하여 그들은 귀신, 무격, 풍수, 점복, 예언, 부락제, 석존, 기우, 안택 등 민간신앙 자료와 고유종교들을 조사 집성하여 책으로 발간하였다. 그들은 고도의 지능적인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나라의 대다수 신흥종교들은 그 특성을 상실하고 소위 유사종교로 전락되고 만 것이다. 이런 속에서 원불교가 그 독창적인 교조의 방향을 잃지 않고 발전지속 할 수 있었던 그 정신은 과연 무엇인가?
 첫째 사은사요로써 도덕의 원천을 밝혀 대생명의 윤리를 드러낸 점, 둘째 삼학팔조, 상시훈련, 정기훈련법을 내놓아 교육의 인간화를 꾀한 점, 셋째 강자약자 진화상 요법으로 일제의 식민지사관을 돌린 점, 넷째 영육쌍전, 이사병행의 산업 활동으로 근대주의 산업사회를 지향한 점, 다섯째 정교동심의 국가관을 제시하여 공상적 이상주의에 떨어지지 않는 현실주의를 제창한 점 등이다.
 대종사는 일원상이라는 궁극적 진리의 상징을 통하여 세계의 모든 종교가 서로 융화하고 만날 수 있는 방향을 시사하였다. 또한 이 정신을 계승한 정산종사는 이 일원대도의 실천 강령으로 삼동윤리를 내놓았다.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동원도리, 동기연계, 동척사업)라는 대 세계주의를 제창함으로서 방향을 구현하였다. 이 뜻을 이어받은 대산종법사는 「일원주의, 공화제도, 십인일단」의 삼대실천으로 세계평화의 삼대요소를 삼자고 역설함으로써 교조의 방향을 더욱 견지하는 법설을 선포하여 오늘에 이른다.
 원불교는 교명에서 풍겨지는 인상에 의하여 불교와의 관계는 어떤 것이냐고 얘기된다. 또한 교단의 창립이 1916년으로 반세기를 경과해 온 천단한 역사이기 때문에 당시를 전후해서 일어났던 국내 신흥종교들과는 어떠한 관계 속에 파악될 것이냐 하는 물음을 받게 된다.
 물론 이와 같은 문제들은 일단 원불교 교단 안에 들어와 보면 자연히 명료하게 알아지는 것이지만 외부 지성들에 의하여 종종 야기되는 문제이다.
 한 사상이 대두되면 반드시 그것이 바탕 하는 기저적인 사상이 있기 마련이다. 대종사가 대각 후 불법에 연원을 한 것이라든지 혹은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창립됨으로써 한국 토착사상이 원불교의 기저에 흐르고 있음이 그것이다.
 이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 「창건사」이다. 대종사는 교화력을 펴갈 때 정산종사를 시켜 「불법연구회 창건사」를 꾸며 놓았다. 이 속에서 원불교의 독자적 흐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반백년을 지난 지금까지의 교단사는 밝게 이룩되어 왔고, 선진들의 창업에 누가 되지 않았다고 본다. 그러나 교단이 커지면 역사를 꾸미는 기저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또한 오늘날의 세계는 급속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각종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닌 시대적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대두하는 사회적 문제라고 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위대한 원불교의 정신이 이 나라 이 민족, 더 나아가 세계 인류의 정신적 주축이 되기 위하여 무엇이 원불교의 정신인가를 점검하여 그 방향성을 보편화하는 일이다.
 굳어진 전통을 고발하고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위해 우리 모두 모여든 이 회상의 일꾼들은 그 사심 없이 바쳐버린 선진들의 일생을 통해 그들의 심법과 단결력, 그리고 조화력과 그 뚜렷한 합목적성을 찾아 기릴 뿐만 아니라 이 교단을 통해 유감없이 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원광대 문리대학장, 종교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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