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룡중학 발족을 앞두고

문교부의 교육평준화 정책에 따른 학구제의 실시와 지역별 중학설립안의 시책으로 지역사회의 이해가 얽혀 뜻밖에의 치열한 경쟁 끝에 6월 1일부로 본교 해룡학원재단으로써 해룡중학교가 정식인가를 얻기에 이르렀다.
당초 도양지부의 지역사회를 위한 문맹퇴치 운동으로 비롯한 야학이 공민학교로 발전하고 다시 해룡농업 기술학교로 발전하여 현지 책임자들의 희생적 노력의 결정으로써 교사가 건축되고 교지가 다듬어졌으며 학생을 모집하여 교육의 목적을 달성해왔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 현지의 2개 면의 학구를 확보하고 이에 중학교의 허가를 얻었으니 이는 현지 교장을 비롯한 당무자들의 강인한 노력에 의해 쌓아올린 금자탑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 남아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경시할 수 없이 당면하게 되었으니 금년 11월까지 시설의 완비라는 점과, 앞으로 운영대책이며 나아가서는 이 교육 사업에 대한 이념의 정립이란 과제가 또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것이다.
본교의 4대 사업 중 이 교육 사업은 포고사업에 못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은 오늘날 원광중ㆍ고등학교와 원광대학이 교단을 대표하리 만치 객관적인 호법의 대보루가 되어있고 또 음적 양적인 인재의 개발과 문화적 과업을 담당해오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여기 해룡중학의 경우는 본교의 발상지인 영광 성지의 지역사회라는 점에 더욱 그렇다. 본교의 발상지요, 10개 지부를 가지고 있는 영광이건만 지역적 교세가 극히 약세에 놓여있고 또한 일반의 인식도가 그리 높지 못함은 그저 지나쳐 버릴 일이 못 된다. 그는 민도가 얕다던가 종교심이 박약하다던가의 객관적 이류로 돌리기에 앞서 교단으로서 과연 발상지이기에 보다 다른 지역사회의 개발과 복지를 위해 참여함이 어느 정도이었는가를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창립 초기에는 오히려 상조조합의 본점이 영산에 있었고 교단의 인재들이 영산학원을 통해 개발되었다. 그러나 해방을 전후해서부터 영산의 피폐와 그 지역사회를 위해서 모든 면에 참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위치에 서지 못하였음은 영광 전역을 통한 그 지역사회에 공헌이 없기 때문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다행히 중학교육 기관이 설립되어 참여의 첫발을 들여놓았으니 이는 성지장엄에 못지 않은 오히려 보다 앞서는 거교적인 사업임을 크게 인식하여 그의 발전에 밑받침이 있어서 할 것이다. 영산에 총부 출장소가 있는 의의 또한 영광지역사회에 중점적인 배려라고 한다면 오히려 출장소의 사업으로써 귀속을 시켜서라도 이 시점에서 뜻을 모아 최대의 성의와 후원이 있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