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을 행하는 조용한 정신 혁명 〓

오는 7월 26일, 우리는 52회 법인절을 맞는다. 이 날을 맞으며 평소 알고 있으면서도 더 알고 싶고, 믿고 있으면서도 더 믿고 싶으며, 받들고 있으면서도 더 받들고 싶은 세 가지 우러름이 있으니, 하나는 그 날의 기도정신이요, 둘은 그 날의 법인자취요, 셋은 그 날의 아홉 분 선진이시다.
먼저 그 날의 기도문 중에서 충분히 밝혀져 있는 기도 정신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위로 대종사님의 성의를 받들고 아래로 일반 동지의 결속을 견고히 하여 시대에 적합한 정법을 이 세상에 건설한 후 나날이 쇠퇴해 가는 세도인심을 바로 잡기로 성심발원하오니-』하신 기도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중생제도의 만대 구감이 될 절대 복종의 대신성, 일심합력의 대단결, 사무여한의 대봉공의 3대 정신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불가에서 信行의 표준으로 혜가와 구정선사를 찾아볼 수 있으나, 이는 한 스승과 제자간의 구도와 전법을 위한 信에 그쳤을 뿐, 전체를 위하여 전체에 비치신 구인선진의 국한 없는 큰 신성에 비교할 수 없다.
나라에서 단결의 표준이 될 3·1운동 33인의 결속이 있었으나, 역시 한 민족만을 위했을 뿐, 전 세계를 하나로 연하게 하고 하나의 협력체로 결속시키는 국한 없는 단합은 아니었다.
동서고금의 많은 사람이 국가 세계 각계에 물심 공헌하고 있으나, 아홉 사람이 하나같이 사무여한의 굳건한 결단과 무아봉공의 참 약속으로 혼돈과 분립의 세계에 질서와 통일을 이루고 원망과 이기 차별과 빈곤의 세상을 감사와 공익과 평등과 풍요의 세상으로 개조 향도하여, 세상에 진실을 깃들이고 세계는 하나에 돌아오도록 첫 걸음 한 그 날의 그 마음 그 일에 비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이 기도의 3대 정신은 곧 창교 정신으로 불리운다. 본교의 창교 정신은 매우 특색 있는 출발을 보여주었다.
보아주는 이 하나 없고, 들어주고 알아주는 이 하나 없었던 영광 한 모퉁이에서 고요하고 은밀한 중에 인류 정신사의 수레바퀴 아래 커다란 레일을 깔아준 것이 그것이다.
과학의 발전에 불안이 가속화하고, 거기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문제로 유례없는 혼돈 시대가 아무리 온다 할지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닦아주신 것이다.
그러나 대종경 부촉품 19장의 법문, 스승이 법을 내는 일과 대중이 법을 받드는 일이 삼위일체 된다 하신 바와 같이, 그 날의 법인정신을 계승 구현시킬 「사명을 다하는 일꾼」「참을 행하는 일꾼」「법인을 받는 일꾼」이 나오지 않으면 새 세계 건설은 어려울 것이다.
우리 후진들이 사명감을 잊고 거짓으로 꾸며 일할 때, 누가 보아주고 들어주고 알아주는 일꾼이 되고자 할 때 이는 그 날의 법인정신과 맥을 연하지 못할 것이요, 자신과 고난과 세계를 위하여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젊은 세대가 사명감을 상실한 것이 현대 정신사의 큰 위기라고 말한다. 사명감의 상실은 혼돈과 분열을 부채질하고 종교를 등한시하게 된다.
혼돈과 분열은 퇴폐와 멸망을 의미한다. 종법사님께서 기회 있을 대마다, 우리 교단은 일하러 나온 사람이니, 재가· 출가가 다 같이 각자 맡은 일터에서 사명을 다하라고 당부하신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사명감에 불타는 정신은 이 법인 정신과 둘 아닌 정신인 것이다.
혈인 기도는 원기 4년 3월 26일에 시작되고, 7월 26일 밤 8시에 이르러 대종사께서 9인 제자에게, 창생을 위하여 자결할 것을 멸하고, 「사무여한」이라 쓴 증서에 백지장을 찍도록 하였다.
그 때 백지장은 혈인으로 나타났다. 대종사께서는 이를 보고, 「그대들의 마음은 천지신명이 감응하였고 음부공사가 이제 판결이 났다」하고 증서를 곧 불태웠다고 한다.
그러나 혹자는 그 당시 법인의 자취였던 혈인 증서가 소각되었다는 사실을 들어 법인을 의심하고 질문을 하기도 한다.
증서를 소각했으니 오늘에 와서 그 사실을 실물로 고증할 수는 물론 없다. 그 당시 단장인 대종사님과 중앙인 정산종사께서 혈인을 감정하였을 뿐이므로 그 밖의 누구도 이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혈인 성사는 어디까지나 이적임에 틀림없다. 종교의 이적을 실물 고증으로 이해시킨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종교는 고증보다는 그 정신을, 정신보다는 실천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혁명인 법인성사 역시 고증보다는 그 정신이 중요하며, 그 정신보다는 실제 실행이 중요하므로 소각된 증서 한 장으로 큰 마장을 삼는다면 어리석은 일에 불과하다.
우리가 법인절을 기념하고 그 날의 기도정신을 잘 이해하려면 기도 이전에 행해진 방언공사의 정신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방언공사의 정신 역시 창교의 정신으로서 기도정신과 방언정신이 창교 정신의 쌍벽을 이루기 때문이다. 하나는 정신을 모으는 움직임이었고 또 하나는 물질을 모으는 움직임이 없다.
「정신을 떠난 물질은 장님이요, 물질을 떠난 정신은 절름발이」라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과 같이, 법인 성사를 이야기 할 때는 반드시 방언공사를 말하고 방언공사를 말하고 방언공사를 말하여 이 두 가지 정신을 이해하는데 모자람이 없어야 될 것이다.
<수위단 사무처 근무>
<사진설명>
<기도봉으로 향하던 구간 도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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