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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 創敎 정신의 계승
사설 / 創敎 정신의 계승
  • 원불교신문
  • 승인 1974.03.25
  • 호수 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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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회 대각개교절을 맞으며
 일제에게 침략당하여 망국의 통곡이 아직 멎지 않았던 무렵에 우리 교단은 문을 열었다. 조국의 명맥은 끊기고 이민족의 가렴주구는 필설을 전하여 땅을 빼앗기고 가재를 일은 채 노두에 방황하던 참상에 더하여 제1차 세계대전의 회오리가 몰아치니 정신적 지주와 경제적 지반을 일시에 상실한 민족의 한은 날로 쌓여만 가던 때였다. 이 민족적 위기에 구세의 기치를 드높이 내걸고 겨레의 칠흑 같은 마음속에 희망의 등불을 밝혀준 것이 우리 교단이었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구호도 우렁차게 영육쌍전의 생활종교로 등장했던 우리 교단이었기에 일제의 탄압 하에서도 꾸준히 겨레의 마음에 호소하여 무너져가는 도덕관념을 다시 일깨웠고 누대의 인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생활 속에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어 시대에 적합한 의식과 예법으로 부조리를 제거하고 인생의 요도를 펴내어 새로운 도덕의 선양에 앞장서 왔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자세는 앞으로도 변함이 있을 수 없고, 또 있어서도 안 될 일이라 믿는다. 그것은 창교 당시 이미 치성했던 물질의 세력은 오늘에 와서도 오히려 그 도를 가중해가고 있으며 정신의 세력은 날로 쇠미하여 만회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재인식하여 그 완수에 박차를 가해야 할 줄 안다.
 우리는 먼저 진리적 신앙의 뿌리를 모든 중생의 마음 속 깊이 심어 주어야 하겠다. 세상이 어지럽고 생활이 복잡해질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지주가 될 신앙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신앙을 갖고자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요술에만 마음이 끌리고 있고 이 경향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진리를 체득 실천하고 그 위력을 얻으려는 데는 도세 관심조차 없고 지엽적이며 이단적인 기적만을 추구하니 생사대사를 비롯한 인생의 고뇌와 번민에서 해탈하여 안심입명을 얻는 날이 언제나 찾아 올 것인가. 우리는 사술에 오도되어 고해 속에 깊이 끌려들어가고 있는 중생들에게 질기고 튼튼한 진리적 신앙의 밧줄을 던져줌을 제일의 사명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종교는 다시 봉사를 그 생명으로 하고 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무한한 사랑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 사랑은 봉사로 발현되고 있다. 우리 교단의 삼대사업 중 교육과 자선은 공히 사회에 대한 봉사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사무여한의 창립정신이 사회봉사면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면 아낌없이 주고 바라는 바 없는 자비의 극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해방직후 귀환동포 구호사업에서 보여주었던 우리 교단의 봉사활동을 통하여 봉사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대소사간에 교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봉사활동에 정진하여야 하며 그것이 바로 사실적도덕의 실현임을 인식해야 될 줄 안다.
 우리는 또 종교가 영적구제만으로써 그 사명을 다했다고 속단하는 것을 엄계해야 한다. 인간이이 영과 육의 결합체라면 이 양면의 겸전을 기해야 하며 따라서 종교는 경제적으로도 잘사는 현세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생산적 종교이어야 한다. 우리 교단이 창교 당시 먼저 방언공사로써 維特재단을 조성하고 근검저축을 권장하여 공부비용을 마련시켰으며, 산업부의 생산 활동을 주시해 온 것이라든지 공부사업의 병진을 강조해 온 것에서 생산적 종교의 면목이 若如함을 볼 수 있다.
 신앙을 심어야 하고 그러기 위하여 경제활동의 정도를 밝혀야 한다. 우리는 일찍이 자리리타의 도를 천명하여 경제생활의 있어야 할 모습을 밝혔다. 우리는 이 기풍을 온 천하에 진작하여 종교적 경제생활을 명시함으로써 잘살아보자는 의욕을 선도함을 사명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사명이 어찌 이상 몇 가지에 그치리오만은 우리는 스스로 그 사명을 인식하여 시방세계의 佛恩化에 일로매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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