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회 대각개교절을 맞으며
우리의 이러한 자세는 앞으로도 변함이 있을 수 없고, 또 있어서도 안 될 일이라 믿는다. 그것은 창교 당시 이미 치성했던 물질의 세력은 오늘에 와서도 오히려 그 도를 가중해가고 있으며 정신의 세력은 날로 쇠미하여 만회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재인식하여 그 완수에 박차를 가해야 할 줄 안다.
우리는 먼저 진리적 신앙의 뿌리를 모든 중생의 마음 속 깊이 심어 주어야 하겠다. 세상이 어지럽고 생활이 복잡해질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지주가 될 신앙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신앙을 갖고자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신기한 요술에만 마음이 끌리고 있고 이 경향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진리를 체득 실천하고 그 위력을 얻으려는 데는 도세 관심조차 없고 지엽적이며 이단적인 기적만을 추구하니 생사대사를 비롯한 인생의 고뇌와 번민에서 해탈하여 안심입명을 얻는 날이 언제나 찾아 올 것인가. 우리는 사술에 오도되어 고해 속에 깊이 끌려들어가고 있는 중생들에게 질기고 튼튼한 진리적 신앙의 밧줄을 던져줌을 제일의 사명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종교는 다시 봉사를 그 생명으로 하고 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무한한 사랑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 사랑은 봉사로 발현되고 있다. 우리 교단의 삼대사업 중 교육과 자선은 공히 사회에 대한 봉사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사무여한의 창립정신이 사회봉사면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면 아낌없이 주고 바라는 바 없는 자비의 극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해방직후 귀환동포 구호사업에서 보여주었던 우리 교단의 봉사활동을 통하여 봉사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대소사간에 교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봉사활동에 정진하여야 하며 그것이 바로 사실적도덕의 실현임을 인식해야 될 줄 안다.
우리는 또 종교가 영적구제만으로써 그 사명을 다했다고 속단하는 것을 엄계해야 한다. 인간이이 영과 육의 결합체라면 이 양면의 겸전을 기해야 하며 따라서 종교는 경제적으로도 잘사는 현세의 생활을 뒷받침하는 생산적 종교이어야 한다. 우리 교단이 창교 당시 먼저 방언공사로써 維特재단을 조성하고 근검저축을 권장하여 공부비용을 마련시켰으며, 산업부의 생산 활동을 주시해 온 것이라든지 공부사업의 병진을 강조해 온 것에서 생산적 종교의 면목이 若如함을 볼 수 있다.
신앙을 심어야 하고 그러기 위하여 경제활동의 정도를 밝혀야 한다. 우리는 일찍이 자리리타의 도를 천명하여 경제생활의 있어야 할 모습을 밝혔다. 우리는 이 기풍을 온 천하에 진작하여 종교적 경제생활을 명시함으로써 잘살아보자는 의욕을 선도함을 사명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사명이 어찌 이상 몇 가지에 그치리오만은 우리는 스스로 그 사명을 인식하여 시방세계의 佛恩化에 일로매진해야 할 것이다.
원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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