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란 무엇인가 Ⅳ-그 수행을 중심으로
진리자체가 우리 인간생활에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가?
일원상 수행은 인격도야의 궁극적 차원을 진리에 둔 수행
우주앞날과 접촉하고 산다는 것은 곧 진리의 당처?

 진리란 절대성(有當)과 상대선(無常)이 공존하고 있으나 그 반대개념의 양면성은 不二의 통일체이므로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진리가 인정될 수 없다. 이러한 원리에 입각해 볼 때 기독교의 진리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원불교의 진리도 따로 있을 수 없다. 다만 그 진리를 어떠한 관점에서 파악하느냐에 따라 각 종교의 진리적 표현이 다양하게 되며 인류구원의 진리 내용도 상이하게 되는 것이라 본다. 20世의 상황에 의해 인류정신이 더욱 극도로 약화된 위기에 대종사께서는 법신불일원상의 진리를 천명하시어 「진리적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정신개벽의 문을 개방하시었다. 이는 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한 소이이다. 원불교에서는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하여 일원상 신앙과 일원상 수행을 병진케 하고 있다. 일원상 원리에 입각하여 신앙으로 인생의 요도를 전개하였고, 수행으로 공부요도를 전개하였으니 그 내용이 이른바 사은사요요, 삼학팔조이다. 이는 진리의 전모를 양면으로 천명한 것이며 이 진리를 철저히 인간생활에 구현하려는 것이다. 내적으로는 진리적 인격을 양성하자는 것이요, 외적으로는 진리적 세계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모든 것을 진리화 하는 것이 바로 제생의세이며 일체만물의 본연의 자태이도록 하는 혁명이다. 오늘날 우리 인간사회에 서로의 반목질서, 폭력, 허위, 부정 등의 부조리는 진리와 인간과의 격리현상이다. 인간이 자기 상실의 존재로 물질추구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도 反진리적인 현상이다. 이는 지상의 항구평화를 저해하는 요이이며 곧 인류의 비극이다. 이 땅에 진리를 구현하는 것은 모든 종교의 본질적 문제이며 사실, 오늘에 처한 전 인류의 시급한 공동과제인 것이다. 원불교에서는 진리실현의 방도로서 일원상 신앙과 일원상 수행을 제시하고 있는바 일원상 신앙은 일원상 진리를 믿는 공부인데 대하여 일원상 수행은 인격을 일원상 진리와 같이 되게 하는 공부이다.
 일원상 진리에 입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진리를 체득할 수 있고 행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원상의 진리는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인간의 본성으로서 불생불멸하고 인과보응하는 것이며 원만구조하고 지공무사한 것이니, 만물은 진리의 실체로 죄복의 권능자이며 따라서 우리인간의 본성은 우주의 원리인 불성이므로 누구나 다 원만한 인격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 불성을 개발하는 것이 곧 일원상 수행이다. 일원상 수행은 인격도야의 궁극적 차원을 진리에 둔 수행인바 이는 곧 ?, 嗔, 我 등으로 은폐된 자아를 회복하는 길, 즉 나로 하여금 나일 수 있게 하는 공부이다. 일원상 수행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 인격은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그 인격완성의 정도에 따라 그 영향은 자기의 영겁전로와 가정, 사회, 국가, 전체에 직결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우주만물과 접촉하고 산다는 것은 곧 진리의 당처불 사은으로부터 복락을 직접적으로 수용하게 되나 반진리적 범부일수록 우주만물로부터 죄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격도야의 일원상 수행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일원상 수행은 일원상 진리를 수행의 표본으로 하여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알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양성하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환연하면 이 일원상 수행은 곧 삼학수행인 바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를 말한다. 정신수양이란 뚜렷하고 고요한 성품을 향하여 정신의 자생력을 얻자는 것이요, 사리연구란 인간의 시비이해와 천도의 대소유무의 이치를 연구하여 사리를 밝고 빠르게 판단하는 지혜력을 얻자는 것이요, 작업취사는 심신을 사용함에 있어서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사하는 실천으로 용단력을 얻자는 공부인바 수양은 養成이요 定이며, 연구는 見性이 彗이며, 취사는 率性이며 戒이다. 이 삼학수행을 계속할 수 있는 공부의 강령을 무시선 무처선으로 밝혀 육근이 無事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有事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도록 하였고 또한 이 삼학병진의 효과적인 훈련으로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을 제정하여 靜할때는 수양연구를 주체삼아 상시공부 자료를 준비하도록 하였고 動할 때는 취사를 주체삼아 정기공부의 자료를 준비하도록 하였다. 이 삼학수행은 누구나 다 현실상에서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도 어떠한 처지에서도 할 수 있는 공부이다. 생활과 수행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수행으로써 생활을 하고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함으로써 영육이 동시에 향상되는 것이다. 일원상 수행을 계속하고 보면 구경에 이르러서는 일원상과 같은 진리적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성불인바 그러한 사람은 십방삼계가 다 吾家의 소유인 줄을 알며 또는 우주만물이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을 알며 또는 諸佛祖師와 범부중생의 성품인 줄을 알며 또는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되는 줄을 알게 된다. 체득한 그 일원상의 진리는 바로 육극사용을 통하여 생활되는 것이요, 진리가 활용될 때 새로운 가치세계가 창조되는 것이다. 진리를 오득한 그의 일체행사는 다 참으로 나타나고 상생의 조화를 이루며 일체만물에 참된 불공이 이루어진다. 그는 자기의 존재근거가 恩임을 각득했기 때문에 안으로 감사의 심념이 충만하고 밖으로 전 인류 일체생령을 위하여 당위적인 봉공헌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법신불 일원상의 전모를 개현하는 진실한 생활인 것이다.
<여기숙사 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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