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란 무엇인가 Ⅳ-그 수행을 중심으로
진리자체가 우리 인간생활에 어떻게 발현될 수 있는가?
일원상 수행은 인격도야의 궁극적 차원을 진리에 둔 수행
우주앞날과 접촉하고 산다는 것은 곧 진리의 당처?
일원상 진리에 입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진리를 체득할 수 있고 행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원상의 진리는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인간의 본성으로서 불생불멸하고 인과보응하는 것이며 원만구조하고 지공무사한 것이니, 만물은 진리의 실체로 죄복의 권능자이며 따라서 우리인간의 본성은 우주의 원리인 불성이므로 누구나 다 원만한 인격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 불성을 개발하는 것이 곧 일원상 수행이다. 일원상 수행은 인격도야의 궁극적 차원을 진리에 둔 수행인바 이는 곧 ?, 嗔, 我 등으로 은폐된 자아를 회복하는 길, 즉 나로 하여금 나일 수 있게 하는 공부이다. 일원상 수행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 인격은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그 인격완성의 정도에 따라 그 영향은 자기의 영겁전로와 가정, 사회, 국가, 전체에 직결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우주만물과 접촉하고 산다는 것은 곧 진리의 당처불 사은으로부터 복락을 직접적으로 수용하게 되나 반진리적 범부일수록 우주만물로부터 죄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격도야의 일원상 수행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일원상 수행은 일원상 진리를 수행의 표본으로 하여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알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양성하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상과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환연하면 이 일원상 수행은 곧 삼학수행인 바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를 말한다. 정신수양이란 뚜렷하고 고요한 성품을 향하여 정신의 자생력을 얻자는 것이요, 사리연구란 인간의 시비이해와 천도의 대소유무의 이치를 연구하여 사리를 밝고 빠르게 판단하는 지혜력을 얻자는 것이요, 작업취사는 심신을 사용함에 있어서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사하는 실천으로 용단력을 얻자는 공부인바 수양은 養成이요 定이며, 연구는 見性이 彗이며, 취사는 率性이며 戒이다. 이 삼학수행을 계속할 수 있는 공부의 강령을 무시선 무처선으로 밝혀 육근이 無事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有事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도록 하였고 또한 이 삼학병진의 효과적인 훈련으로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을 제정하여 靜할때는 수양연구를 주체삼아 상시공부 자료를 준비하도록 하였고 動할 때는 취사를 주체삼아 정기공부의 자료를 준비하도록 하였다. 이 삼학수행은 누구나 다 현실상에서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도 어떠한 처지에서도 할 수 있는 공부이다. 생활과 수행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수행으로써 생활을 하고 생활 속에서 수행을 함으로써 영육이 동시에 향상되는 것이다. 일원상 수행을 계속하고 보면 구경에 이르러서는 일원상과 같은 진리적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성불인바 그러한 사람은 십방삼계가 다 吾家의 소유인 줄을 알며 또는 우주만물이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을 알며 또는 諸佛祖師와 범부중생의 성품인 줄을 알며 또는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되는 줄을 알게 된다. 체득한 그 일원상의 진리는 바로 육극사용을 통하여 생활되는 것이요, 진리가 활용될 때 새로운 가치세계가 창조되는 것이다. 진리를 오득한 그의 일체행사는 다 참으로 나타나고 상생의 조화를 이루며 일체만물에 참된 불공이 이루어진다. 그는 자기의 존재근거가 恩임을 각득했기 때문에 안으로 감사의 심념이 충만하고 밖으로 전 인류 일체생령을 위하여 당위적인 봉공헌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법신불 일원상의 전모를 개현하는 진실한 생활인 것이다.
<여기숙사 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