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의 명절대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예전에 명시된 바와 같이 대재는 대종사를 위시한 역대 선령열위를 공동향례 하여 모든 교도로 하여금 마음을 이에 합하며 정성을 이에 바치며 위의를 이에 갖추어서 법계향화가 한없는 세월에 길이 유전하게 하는 것이다. 명절대재는 과거 우리나라에서 거의 다달이 들어 있었던 명절을 통합하여 제정한 교단의 명절이기도 하다. 풍요를 구가하고 놀이를 즐겼던 태평연원의 성대에 우리겨레는 단조하고 한가한 생활에 활력을 넣고 정취를 돋우기 위하여 많은 명절을 가져왔었다. 그것이 시대가 복잡하고 다단해짐에 따라 많은 폐단을 낳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폐단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가 갈망되기에 이른 것이다. 더욱이 영육쌍전을 위하여 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우리 교도들에게 있어서 일반사회인보다 이를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당연하리라. 이와 관련하여 생각되는 것은 비단 명절뿐이 아니라 가정의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 교단은 개교 초부터 형식적이고 낭비적이었던 과거의 의례양식에 대하여 혁신의 메스를 가했던 것이다. 까다로운 예식과 과도한 출비로 앞으로의 생활에까지 위협을 느껴야만했던 재래의 예법을 과감하게 시정하여 진리에 근거한 실질적이고도 합리적인 제도로 고쳐 실천해 왔다. 원래 예식이란 우리의 정성을 표현하기 위한 형식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정성스럽고 엄숙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기본태도를 망각하고 격식만을 갖추기에 급급하다면 그 예식은 알맹이 없는 껍질에 불과하다고 극언해도 무방하리라. 우리 예전에 명시된 모든 예식의 절차는 진리적 뒷받침이 되어 있는 것이다. 원불교사상에 근거하여 그에 부합하는 제도들인 것이다. 일례를 상례로 든다면 과거 세속의 예법이 내방하는 조객의 접대에만 정신을 쓰고 또 그래야만 세인의 칭송을 받을 수 있었던 나머지 살생을 자행하여 망인에게 오히려 인과의 책벌만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던 것을 시정하여 떠나는 그 영을 제도하고 경비를 절약, 공익사업에 바치게 함으로써 후생 길을 위한 음덕을 쌓게 했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대감각에 적합하고 합리적이며 진리적인 우리 예법이 모든 교도들에게 보급되고 준수되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나 그러나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그것은 그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러함을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니다. 가정 식구 전원이 교도가 되지를 못하고 단독으로 입교했다든가 부녀자만이 교도여서 의례면에서 가족들을 설득할만한 발언이 서지를 않는다든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가족들은 이해를 하나 친족들이 이해를 못하여 반대나 비방을 당하게 된다든가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풍습의 광정은 자기단독으로 이루기 어려운 면이 있고 남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는 점도 알고 있다. 그러나 예전에 대한 투철한 이해와 꼭 준수하겠다는 열의를 가지고 스스로도 노력하고 설득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생활에 편리하고 합리적인 예법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욕심을 말한다면 비교도에게 까지도 우리 교리는 이해하지 못하겠으나 예법만은 받아들여 활용하겠다는 인사가 다수 생겨날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 교도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요, 그것이 교화의 첫걸음이기도 할 것이다. 국가에서도 국정의례준칙을 마련하여 그 보급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과거의 아름다웠던 상부상조의 미덕이 흐려지고 강요된 부조로 인한 비등하는 여론에 호응한 것이 그 동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의례의 간소화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바 이러한 시기에 우리의 예전이 모든 교도의 가슴에 깊이 뿌리박고 몸에 배어 어김없이 실천되고 널리 보급되도록 박차를 가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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