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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 어려운 시기의 극복
사설 / 어려운 시기의 극복
  • 원불교신문
  • 승인 1974.12.10
  • 호수 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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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서 벗어나 귀를 기울이자
 비상한 시기일수록 국론이 한데 모아져야 할 것이요, 혹 갈라지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대립이 극한상황으로 치달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 나라 의 실정은 어떠한가? 모처럼 트인 남북대화에 걸었던 온 민족의 간절한 소망은 산산조각이 난 채 남과 북의 대립이 날로 악화되는 가운데 이제 북괴는 휴정선 중립지대에 땅굴을 팜으로써 또 다시 전쟁을 도발하려는 저의를 들어내고 있지 아니한가.? 이렇게 어려워져가고 있는 때를 당하여 국론이 크게 분열되어 날로 극한상태로만 치닫고 있으니 참으로 암담한 생각을 금할 길 없다. 국사를 거론해야 할 국론에서는 정상적인 대화의 길이 단절된 채 데모와 籠城(농성)이란 극한 투쟁에 돌입했고, 가두에서는 반대 데모에 기지대로 맞서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있으니 지금 이 나라 이 겨레는 어디로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 앞에 삼가 옷깃을 여미고 경건하고 참된 마음으로 있는 슬기를 다하여 이 니라 지도층을 향하여 호소하려는 것이다. 이 어려운 때를 당하여 국민총화는 기필코 이루어야 할 것이며,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은 극한적인 대립상황에서 총화를 이룩하려면, 북받치는 감정을 넘어서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끈질긴 노력이 없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정부의 방향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는 지도층들이 감정을 넘어서지 못할 때 건설을 위한 비판에서 비판을 비판으로 치닫기 쉽고 정부의 방향을 찬동하는 입장에 서서 있는 지도층들이 감정을 넘어서지 못할 때 건설을 위한 비판마저도 報復(보복)措置(조치)로 대응하기 쉬운 것이다. 경에 이르기를 『업이 업을 낳고, 원한이 원한을 낳아 인과보응의 업연이 끊이지 않을 것이니 갚을 자리에서 쉬어 버리라』하였다. 이렇게 쉬어버릴 수 있는 힘이 바로 큰 인격의 밑바탕을 이루는 자유력이다. 지금이야말로 이 나라의 지도층들이 이 자유력을 행사해야 할 중대한 시기이다. 이 자유력이야 말로 불같이 일어나는 분노를 억제하는 힘이요, 불같이 일어나는 사욕을 억제하는 힘이다. 새마을 운동이 보다 잘 살기 위한 부흥운동일진대 정부가 미워도 그 미움을 넘어서서 그 부흥운동에 우리의 힘을 서슴없이 합해주는 것이 자유력을 갖춘 인격자의 참된 애국이요, 반면 국정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하더라도 복받치는 혐오감을 억제하고 거기 담긴 애국충정을 갖춘 지도자의 참된 애국이 될 것이다. 자녀들이 잘하면 잘 한 대로 못하면 못 한대로 고움과 미움을 넘어서서 끝없는 사랑을 베풀어주는 것이 어버이의 크고 넓은 사랑이 아니던가? 이 어버이의 사랑이 지금 이 나라 지도자들의 가슴속에서 울어 나오지 아니하면 이 어려운 난국을 헤쳐나갈 길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 이 어버이의 사랑은 시비이해를 초월한 사랑이요, 이 사랑 속에서는 상대측의 잘못이 드러나기에 앞서 그의 잘 함이 먼저 드러나는 것이니, 정부의 경제건설이 소중한 것으로 먼저 드러날 것이요, 정부에 대한 비판자들의 애국충정이 소중한 것으로 먼저 드러날 것이다. 정부의 충만한 건설의욕과 비판자들의 진실한 애국충정이 하나로 연결된다면 무엇이 두려울 수 있겠는가? 여기에서 국민의 대 총화가 이룩될 것이요, 국민의 대 총화가 이룩될 때 북괴의 땅굴도 일본의 이기적 타산주의도, 중공의 인해전술도 두려울 것이 없다. 소수의 이스라엘이 수십 배의 아랍 제국 앞에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대총화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라서 여야의 의견대립이 없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 대립을 슬기롭게 지양시키면서 총화를 이룩하는 곳에 그들에 번영과 국력이 잇다.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극한적인 국론의 대립을 지양하고 총화를 이룩해야 하겠기에 위대한 자유력과 크고 넓은 사랑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 자유력과 사랑을 길어 내는 것이 모든 종교적 수행의 목표일 것인바 이 나라 지도자들이 이 자유력과 사랑을 체현하도록 어려운 대를 당한 우리 원불교인의 사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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