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산 김광선 대봉도 後裔(후예)
사진>형사법사(중앙) 가족ㆍ오른쪽 끝이 대현씨
교역자 삼대
一代 팔산…구인선진의 일원으로 교단창립 주역
二代 형산…13세 때부터 대종사 심부름 수위단원
三代 대

 새 회상의 법고소리 울린 지 60년. 첫 아침에 이 교단 초창 당시 주축이었던 9인 선진들 중 팔산 김광선 대봉도의 후손들을 찾았다.
 현 구인단원인 장자 형산 김홍철 법사(73ㆍ수위단원)와 장손 대현씨(38ㆍ원대 강사)로 이어진 교역자 삼대는 오늘도 이 공부 이 사업에 여념이 없다. 손녀 대심ㆍ대관은 일선교당 교무로 정심은 원대 원불교학과 재학중인 예비교역자. 그러니까 삼대에 와선 2남3녀 중 차남 대성씨(원청 전북연합회장)를 제외하고는 모두 교역자가 된 셈이다.
 팔산 대봉도는 대종사님과 이웃에서 태어나 서로 한 가족처럼 지내었고 그래서 의형제까지 맺었었다. 대종사님이 대 입정에 드시어 가정이 피폐 할 때도 남 먼저 알아보고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크게 조력한 분이기도 하지만 대종가 대각을 이루니 12년이나 손상임에도 일호의 사념 없이 대종사 첫 번째 제자가 되었다.
팔산대봉도는 가정이 빈한하여 공부를 맘대로 할 수가 없어 열 두어 살이 됨에 스스로 나무를 하여 學債(학채)를 마련하기도 했으며 향학열이 어찌나 지극했던지 범이 마당에와 있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혼자 글을 읽기도 했다고 한다. 4서 3경을 독파하다가 갑오동란이 일어남에 글방은 정지되고, 15세에 신정랑 규수와 결혼을 했다. 그로부터 자수성가를 하여 많은 재산을 모았으나 대종사 스승님을 좇으며 창립당시 방언공사에 바치니 가정은 끼니를 데우기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23세때 장자 형산 김홍철 법사를 두니 이 도량에 큰 별이 또 하나 태어났다. 평소 대종사님 곁에서 공사일념으로 지냈으나 맏이 형산 법사를 두게 되어 그가 점점 자라매 더욱 미덥기만 하니 90세 노모까지 계시나 팔산대봉도는 아들에게 살림을 맡기고 출가하여 새로이 공사에 전일하게 됐다.
 『원기 12년 총회 때 내가 전무출신 하겠다고 하니 대종사님께서 집안일 어쩔 테냐 너는 아직 못한다』고 만류했다고 한다. 그래서 『전무출신하고 싶어 생병이 다 났었다』고 형산 법사는 회고한다.
 그러나 열서너살 때부터 대종사님의 심부름이나 시탕은 곧 잘 해 드렸다. 방언공사 때도 어려운 일 궂은 심부름 다하고. 그러다가 27세 되던 해 『대종사님께서 드디어 새해 초 하룻날 나오너라 하시더군. 그래서아닙니다. 정산법사님께서 살림기반 잡힐 때까지 10년만 잡고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대종사님께서 이 녀석아! 이 회상이 어떤 회상인데 그러느냐 때가 있는 것이다』고 하시기에 집은 일 동생에게 맡기고 바로 출가했다고 한다.
 또한 장남  대현씨는 『대도회상 법열로 사는 것도 즐겁지만 어머님(이보응화)의 교훈이 저희들의 일생 공사에 더욱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머님은 평소에 우리 집은 정거장이다. 정법회상에 나가 일하기 위해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이라면서 부군 형산 법사를 비롯 자녀 모두가 이 공부 이 사업하도록 권면 하는 데에 정성을 다한단다. 그러므로 네 자녀가 일찍이 전무출신을 하게 됐으니 이 모두 정법회상의 보옥이다.
 장녀 대심(48)교무는 봉직 31년으로 현재 무주교무로 있고 차녀 대관(42)교무는 봉직 25년으로 현재 정읍교무로 있다. 또한 장남 대현씨는 중앙선원 동산선원과 서울한남 보화원 교무 등을 지내다가 중국 순 교무로 5년 간 있으면서 국립 대만대학원 중국문화학원 등에서 석사 박사 반을 졸업하고 금년 귀국하여 원대에서 중국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또 재학시절 세계 각국 우수학생에게 주는 「세계대학 장학생 봉사회」의 장학금을 받기도 했으며 원대, 성균관대학원 (동양철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차남 대성(34)씨는 재가로 현재 원청 전북연합 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막내 정심 양은 원불교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렇게 해서 개교 60년을 맞는 우리 교단의 거룩한 선진 팔산 대봉도를 비롯 장자로 이어지는 전무출신 삼대는 『사대까지 갈 갈 겁니다. 큰 녀석(덕상ㆍ11)이 전무출신 하겠다고 하니까요. 누가 하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물론 부모님들도 저희들에게 전무출신을 권한 적은 없었어요. 오히려 잘못하면 이 회상에 큰 죄가 될 뿐이라고 늘 말씀하시면서 저희들이 항상 염려된다고 하시니 까요』하면서 조부님(팔산)께서 몸으로 언을 막으셨듯이 신심 공심은 오직 내 한 몸이 움직일 때마다 교단에 利(이)가 되느냐 害(해)가 되느냐 하는 마음이 아니겠느냐고 대현씨는 말한다.<문>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