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의 『백범일지』
민족의 정신적 주축 되어

짧다란 생을 이어가고 끝을 마치는 양상은 천차만별이다. 그 중에서도 백범선생은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서만 몸을 바치신 분이며 부모님께 효성이 지극하신 분이었다.
일단 잘못하신 일에 대해서는 어머님께 사죄하고 또한 매 맞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니 가히 「충신은 효자의 문에서 구한다.」는 옛말이 백범선생을 두고 이른 말이 것 같다.
마침내 선생의 뜻이 이루어져 조국의 해방을 맞이하여 기쁨에 벅찬 마음으로 이십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을 때의 정국은 어떠했던가?
우후죽순 격으로 군웅이 할거하여 부르기 좋은 명칭을 총망라하여 무슨 당 무슨 단체를 조직하여 굶주렸던 사자들처럼 권력에 혈안이 되어 국가의 통일은 아랑곳없이 권력 재취에 급급한 나머지 국가는 분단되고 말았다.
평생의 소원이던 해방을 맞이하였건만 또 다시 국가가 분단되는 비참한 현실에 직면한 선생은 완전한 하나에로의 민주통일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이북과의 협상 차 삼팔선을 넘으면서 「내 이번에 민족의 숙원인 남북의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민족의 영원한 비극의 불씨가 될지 모르는 이 원한의 삼팔선을 베개 삼고 죽으리라. 조국의 독립, 조국의 통일은 하늘의 뜻이요 삼천만의 숙원이거늘 이 뜻을 어기는 자 천벌을 받아 마당 하리라.」하시면서 평양으로 떠났다.
이북의 사정은 너무나 기대와는 달랐다. 이미 소련 제국주의의 농간으로 이북동포는 그들의 손에 넘어가 통일에의 꿈이 수포로 돌아가자 선생은 숨겨둔 단도를 빼어 들었으나 동지들에 의해 제지되고 한만을 안은 채 돌아오셨다가 국민 앞에 면목이 없다하여 받들어 주는 자리마저 사양하시는 미덕도 보이셨다.
나는 그 분을 읽고서 종교인으로서의 자신을 반성해 본다.
애국 애족은 직업화된 어느 특정인만의 소관된 일이고 종교인은 가능한 한 국사에 무관심하고 국사를 모르는 농도가 짙을수록 참다운 종교인이고 도인인양 어처구니없는 착각 속에서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
역대의 성현들 세계의 지도자들의 행적을 거울삼아 본다 하더라도 그들은 종교적 사명감과 종교적 신념으로써 그 민족 그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그 민족의 정신적 주축이 되고 지표가 되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백범선생의 얼을 이어받아야만 되겠지만 우리 교단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세계를 향해 발돋움하고 민족의 정신적 주축이 된 우리 교단의 미래를 행여나 염려함은 하나의 기우에 속하겠지만 장족의 발전에 일시적 멈춤이 있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우리에게는 비극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대로 현재의 위치에서 종교적 자세를 져버리지 않고 미력이나마 국가 민족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신 백범선생의 영령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원광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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