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신급 십계문 제1조에 보면 「공중사를 단독히 처리하지 말며」라 하였다.
그런데 요즈음 이 계문은 심히 유감스러운 몇 가지 사례가 있음을 보고 우리는 이를 엄중 경계하여 마지않는다.
공중사를 단독히 처리 말라 함은 단독으로 처리하면 공중사에 큰 실패를 가져올 위험성이 많음을 물론 종단에 독재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종단의 질서가 문란케 되고 또 개인적으로도 아만심이 생겨 자행자지하게 되어 대중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어서 결국 그 개인이나 그가 속해 있는 단체가 모두 공멸하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라 하겠다.
공중사를 단독히 처리한 일의 거의 대부분이 파멸을 초래하였음은 우리의 교단사가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하나하나 예거하지 못하는 심정 안타까우나 교단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에 긍정할 것이다. 이 체면 저 체면 때문에 또는 대중이 미처 몰라서 제지하지 못한 일은 반드시 법과 진리가 들어서 어느 선에 이르면 제거 받았던 사실도 하나하나의 문제된 사건들의 과정과 결과를 생각할 때 긍정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요즈음 우리 교단에 이 특신급 제1조를 범하는 사건이 몇 곳에서 파생되고 있음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교역자가 여기에 해당된다면 이는 실로 더욱 유감된 일이라 할 것이며 반백년 성업 완성년도에 행하여지고 있는 완성 년도에 행하여지고 있는 금년의 법위사정에서 과연 이들의 법위가 어떻게 될 지 그것도 관심 있는 일이라 하겠다.
교단의 발전상이 눈부심은 사실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었다. 재가는 말할 것도 없고 이제 교역자도 다양하게 되어가고만 있다. 원광대학 교학과나 선원 정규 과정을 졸업하고도 교역자 교시에 합격 못하면 교역자의 자격을 바로 주지 않는가 하면 일반대학을 졸업하였거나 일반 사회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으면 교역자 교시도 치르지 않고 교역자가 되어 중책을 맡은 코스도 있다. 이렇듯 다양하게 되었다는 자체는 교단의 발전된 모습이기도 해서 좋게 받아드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그 자체가 곧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발전이란 분화에만 있는 게 아니라 분화된 것이 어느 정도의 응집도를 지니고 중심화 하느냐에 있다. 연륜이 오랜 나무는 가지와 뿌리가 나무의 중심인 줄기나무를 위하여 수분과 산소와 영양을 왕성하게 흡수하여서 중심으로 보내어 줌으로써 그 전체의 생명이 지탱된다. 뿌리와 가지는 분화된 현상이요 그들이 영양을 공급해 줌은 중심화의 현상이다. 이가 조화 있게 되는 것을 가리켜 발전의 현상이라 하겠다.
우리 교단도 진실한 의미에서의 발전이 되고 있는가 점검해야 되겠다.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는 분화작용에만 관심을 쏟지 중심화 작용에는 별로 역점을 두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왜 이런 점을 지적하는가 하면 공중사를 단독히 처리했던 일을 두고 생각할 때 과연 교단에서 지금 일하는 모든 분에게 우리의 기본경전인 경전과목을 단 한 번 이라도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를 공식적으로 주고서 교역자로 인증하였으며 그런 중책을 맡겼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기회나 그런 훈련을 한 번도 준 바도 없으면서 않기를 바라는 것은 오히려 자가당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종사님께서는 사람을 쓰실 때 먼저 그 신성과 사람됨을 보았지 재주와 학식을 앞세우시지 않았다고 하신다. 신성과 사람됨은 훈련에 의하여 일으켜야 되고 길러야 된다. 훈련받지 않은 재주, 훈련받지 않은 기교나 기술을 훈련을 통하여 올바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우리 누구나 스스로의 위치와 권한은 종단의 한 부분체로서임을 알고, 스스로의 단독지견은 편견과 부족의 위험성이 있음을 알고, 자기만능의 자부심은 실패의 원인임을 알아서 죽기로써 공중사를 단독이 처리하지 말아야 하겠으며 앞으로의 인사에 있어서는 훈련경력을 중요시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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