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같이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라디오에선 삼일절 특집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오빠, 삼일절이 무어야?」
국민 학교 1학년짜리 여동생 은희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은학이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 지 잘 몰랐습니다. 학교에서 기념식도 몇 번씩이나 거행했고, 책에서도 여러 번 보았지만 막상 삼일절이 어떠한 날이냐고 물어보지 정확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얘, 은희야, 나 자세히 모르겠는데, 우리 할아버지께 가서 여쭈어 보자.」
은학이와 은주는 사랑방으로 할아버지에게 갔습니다.
「할아버지, 오늘이 삼일절이라는데, 삼일절이 무슨 날이예요?」
은희가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마침 할아버지는 단정히 앉아서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응, 너희들 바로 앉아라. 내 오늘 너희들에게 할아버지의 소년 시절 이야기를 해 주마.」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굵은 주름살이 잡혔고 머리는 허옇게 세었지만 두 눈에서는 광채가 빛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두 눈을 스르르 감으시며 옛날을 회상하는 듯 띄엄띄엄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기미년 삼월 초 하루였어.
그날 서울 파고다 공원에는 발을 옮길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어. 갓을 쓴 노인 한 분이 높은 단에 올라가서 힘차게 연설을 시작했지.
「삼천만 동포 여러분, 일본 사람이 우리나라를 함부로 빼앗고 우리 백성들을 탄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조상들이 물려준 이 아름다운 삼천리 금수강산이 일본 사람의 발굽에 짓밟힐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단결해서 목숨을 걸고라도 우리 조국을 찾읍시다.」
이렇게 연설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와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공원 문을 나서 종로 거리로 밀려나갔어. 거리에는 온통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 부르는 사람들도 물결쳤지.
그 때 이 할아버지는 열다섯 살이었어. 나도 어른들 틈에 끼어 거리로 밀려나갔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면서 한 쪽에서 누가 애국가를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천지를 진동하는 애국가가 하늘과 땅을 덮었지.
얼마를 지나자 갑자기 탕탕 하는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어. 일본 경찰이 나타난 거지. 총소리를 듣고 어떤 사람들은 비실비실 흩어졌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그대로 만세를 외치고 애국가를 부르며 앞으로 앞으로 행진을 계속했지. 나도 옆 골목으로 빠질까 하는 생각이 났으나 그대로 앞으로 갔어.
얼마를 더 가니까 길이 막혔어. 일본 경찰이 총을 겨누고 있었어. 사람들은 고함만 지를 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어. 일본 경찰들 앞에는 수십 명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었어. 나는 그 쓰러진 사람들 속에서 파고다 공원에서 앞에 나서 연설하던 노인을 발견했어. 그 순간 나는 죽음도 무섭지 않았어.
「여러분, 우리 동포의 피를 넘어서 앞으로 나아갑시다.」이렇게 외치며 앞장을 섰어. 사람들은 죽은 동포들을 어깨에 메고 더욱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어.
일본 경찰은 총을 쏘아대면서 도망을 치기 시작했어. 수많은 동포가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도 만세소리는 더욱 우렁차게 거리를 진동시켰지. 그 때 나는 오른쪽 어깨에 총을 맞았어. 피를 흘리면서도 앞으로 전진했어. 총에 맞은 동포들이 내 앞을 인도해 주었거든.
삼일절은 말하자면 독립만세를 부른 날이야. 그래서 지금도 그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선열을 추모하자는 거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은학이와 은주는 훌륭한 할아버지를 모신 것이 매우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고귀한 정신을 물려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할아버지, 저희들도 공부 잘 하고 할아버지처럼 용감한 사람이 되겠어요.」
「암, 그래야지, 우리나라가 해방은 되었으나 또 다시 남북이 막히고 말지 않았니. 지금도 북한 땡에는 우리 동포들이 공산당들의 쇠사슬에 묶여 신음하고 있지. 너희들이 어서 자라서 남북을 통일하고 북한 동포를 구출해야 돼. 그것이 바로 삼일정신을 계승하는 게야.」
「오빠, 나 만화보고 라디오 듣는 일에 너무 시간을 빼앗기지 않을게. 그 시간에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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