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계적 불황은 여느 때와 같이 일시적으로 오고 가던 그러한 불황이 아니고 상당한 시간을 두고 계속되리라는 데서 그 지속성이 있다. 또 석유를 비롯한 자원문제는 세계적인 인플레 및 경제침체를 가져왔고 지난해 제4차 중동전쟁의 계기가 된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전약」은 인류의 위기마저 불러일으킬 深刻(심각)성을 동반했다.
 또한 종래에 흔히 있었던 부분적이고 국한 적인 불황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파급되어 점증 일로에 있는 擴散(확산)성을 지닌 것이 오늘의 불황이다.
 35억에 달하는 세계인구가 먹어야하는 식량문제를 놓고 오늘도 격심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식량사정의 악화도 악화려니와 우리나라의 식량 란도 심각해 질 우려가 없지 않다. 10년 전인 64년 만하더라도 94%가 넘는 食糧(식량)자급 율이 73년에는 68%를 약간 상회할 뿐이고 增産(증산)률은 연평균 0.8%에 그치고 소비 율은 3. 4%씩 계속 늘어만 왔다는 통계이고 보면 불황과 인플레 및 국제수지의 악화를 포함한 삼중고로 시달린 세계경제 및 국내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의 물음과 답을 가지지 않는다면 사회인류를 향도한다는 의미가 없게 된다.
 거년 여름 본교 대산종법사는 천도교 방문시 세계의 난제란 첫째평화의 문제요 둘째 인구 및 식량의 문제이며, 셋째, 청소년 지도의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이 난제 극복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세계적 불황을 극복하는 길이라 우리는 믿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바라는 평화는 원한다 해서 오는 것인가? 평화에 대한 봉사 없이는 평화는 불가능하다. 평화에 대한 봉사란 인간도치의 공부에서 출발된다. 인격양성이라는 자기 이념 없이 인간의 존엄성이 소생될 리 만무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중히 여기는 풍토 없이 평화는 싹트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불황의 극복은 거창한 구호나 정책에 앞서 먼저 아껴 쓰는 생활태도의 확립에서 비롯된다 할 것이다.
 본교가 창립할 당시만 하여도 오늘날의 심각성은 비교가 안될 만큼 일본압제하의 어려움이란 큰 것이었다.
 그런 데도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는 큰 이상의 구현을 종이 한 장의 절약, 촛불의 아낌, 쌀 한 수저의 헛됨이 없는 耐乏(내핍)과 검소 와 절약으로써 시작하지 않았는가?
 다음으로 우리는 나누어 즐기려는 공부를 하는 곳에 불황 극복의 길이 있다고 믿는다. 국내외적인 어려운 시기가 올적마다 하나같이 그 해결책을 「공존공영」「상호협동」이라는 이념의 제창이 고조됨을 본다. 이것이 바로 우주자연의 법칙이요 원전임을 어찌 하랴!
 지금 우리가 겪는 고난과 시련은 같은 배에 타고 있는 공동운명체임을 자각함이 중요하다. 가파른 시국일수록 부유층이 자기 앞만 생각하고 사치에 빠진다거나 이기주의에 흐른다면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는 화근이 될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제것을 좀더 아껴 남을 도와 준다면 받는 사람은 더욱 따뜻한 인정을 느끼게되고 도와주는 사람 역시 흐뭇함을 느끼는 법이다. 슬픔은 나눌수록 줄고 기쁨은 나눌수록 극대화된다.
 끝으로 협력하고 이해하는 곳에 불황극복의 길이 있다고 본다. 추한 것을 아름다웁게 가꾸어 가는 역할이 바로 이해다. 세상에는 극복되지 못할 어려움이란 없다. 속담에 영원한 원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따라서 영원한 친구도 있기 힘들다는 말이다. 세상은 항상 변하고 유동적이다. 지나고 나면 후회요 상처뿐인 비생산적 삶을 넓은 안목으로 바라보자.
자원위기나 사회불안 위기도 하나의 인류의 동질성이라는 의미에서 이해 할 때 협력의 눈은 뜨일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세계상을 보는 지혜요 이러한 지혜가 있어서 불황은 극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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