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표어의 정신을 재음미하자.-

교단문화 정책의 빈곤이라는 불모지 속에서 천신만고의 우여곡절을 안고 마침내 문화회관이 기공되었다.
60여 년의 교단사를 통하여 호남의 원불교에서 한국의 원불교로, 한국의 원불교에서 다시 세계 속의 원불교로 발돋움 해 온 우리 교단이 이제 와서야 겨우 문화회관을 기공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현대 사회의 물질만능주의나 배금사상의 팽창에 대해서 정신문명의 계발을 개교 이념으로 내세워온 교단이 이처럼 원불교 문화의 창달에는 무관심해 온 사실을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교단 구석구석에 만연해 있는 물량적 사고방식이나 금전적 가치관은 또 무엇이며, 교단을 움직이고 있는 지도적 인사 중에서 문화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거나 종사하고 있는 인사는 또 과연 얼마나 되는가?
총부나 기관, 또는 각 교당에서 집행되고 있는 1년 예산액 중에서 문화 사업에 지불되는 예산은 과연 몇 %나 차지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몇 가지 물음을 제시하면서 원불교 문화 창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물질적인 것은 곧 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은 영원하다. 그러기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다. 국가는 변천해도 민족은 영원하다는 것도 민족정신이 살아있는 한 국가는 망해도 민족은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교단의 선진들이 남겨 준 유업이 소중하다는 것도 그 물질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적 교단 혼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단 혼이 살아있는 한 어떠한 역경에 부딪친다 할지라도 교단은 불멸할 것이며 외형적 사업이 아무리 번창 한다 할지라도 교단 혼이 죽는다면 교단의 장래를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찾아오는 교도들을 법당 안에 모아놓고 설교 중심의 교화에서 대량 전달 수단을 동원한 대량교화가 아니고서는 교단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일반 사회난 비교도들을 대상으로 각종 문화행사나 강연회 또는 문서교화를 통한 동시성 대량교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현대 사회의 대중문화는 역시 출판 문화를 주종으로 해서 각종 문화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회관의 건립을 통한 문화예술의 창달은 기본적 필요조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 교단은 각 분야의 사업이 과히 바람직한 조화 발전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같은 교당끼리도 너무나 격차가 심하다든가, 기관과 기관, 분야와 분야 간에 혹은 한 기관이나 분야의 비대발전으로 인해 교단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발전을 방해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금년에도 교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많이 있다. 서울 기념관, 영모전, 각종 학교, 각 교당에 이르기까지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업 중에도 문화회관의 건립은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교단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것은 문화란 가장 비물질적인 것이면서도 역사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산 종법사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세계 종교 유엔의 탄생과 각자의 심전계발의 훈련을 주장하는 것도 정치 유엔만으로는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가져오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인류사회를 영원히 지배하는 것은 물질이나 정치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신이나 종교인 것이다. 우리 교단도 마찬가지로 원불교 문화의 창달 없는 발전이란 일시적인 것이요, 거시적 안목으로 볼 때에도 오히려 회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우리 교단을 창립하신 근본 뜻이 정신개벽과 제생의세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질을 통한 세계의 구제가 아니라 종교혼을 통한 제생의세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과 같은 물질주의 시대일수록 원불교 문화의 창달은 더욱 요청되는 것이고, 다양한 현대 사회의 많은 대중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문화교화의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회관 건립은 전 교단의 슬기와 힘이 집중되어져야만 할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