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청년 연합회 출범을 보고

3월 21일 부산지구 원불교 청년연합회가 결성되었다. 이는 청년회의 결사인 동시에 교단의 경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은 부산의 교세에 비하여 너무도 청년회의 활동이 미약했기 때문이며 늦게나마 건실하게 출발하는 동연합회의 출범은 원불교 청년회 활동에 크게 활력소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는 이를 계기로 전국의 청년회원들에게 두어 가지 우리의 소의를 말하고자 한다.
생각건대 지금 우리 교단은 교역자들에게 너무도 많은 짐을 지워주고 있다. 재가 교우들은 교당을 만들어 교역자를 모셔가고 그리고 교당 일을 하여 달라고 일체를 맡기어 버린다. 예회는 물론 결혼식 장례식 심지어는 교당의 살림살이로부터 새 교우를 입교시키는 일체의 일을 교역자들에게 일임해 버리는 실정이다. 매사를 교역자가 계획하고 연구하고 지시하면 교우들은 이에 순종하고 그래서 그 지휘자에 잘 단합이 되면 교당일이 잘되어 간다고 하는 것이 우리 교당의 일반적 상황이다.
사회는 급격하게 다원화되어가고 있다. 현대 사회가 이렇듯 다원화 분업화하여 감에 따라 교당 내에도 천차만별의 삶의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나와 앉아있다. 때문에 교역자 한두 분이 교우 한 분 한 분의 생의 문제를 다 이해할 수도 없는 노릇이며 설령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교우들에게 골고루 다 해답을 효과적으로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듯 다원화 된 현대의 교당에서 교역자는 모든 일에 권위를 가지고 임하는 만능자가 될 수도 더욱 없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단의 일반적 실정은 어떠한가. 교우들의 거의 대부분이 교역자로 하여금 만능자가 되어달라고 오히려 강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점에 청년회의 탄생이 과거처럼 교역자에게 또 하나의 무거운 짐만이 되게끔 하여서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지 않겠는가.
생각건대 현대의 복잡한 사회에서 새로운 윤리사회를 설계하고 꾸미고 유지해 나가야할 책임이 우리 원불교에 주어져 있다고 하겠는데 이 새롭게 형성되는 새 윤리 사회의 건설작업이 어찌 수백의 교역자들의 힘만으로 가능할 것인가. 그러한 작업이 제일 먼저 시도되어야 할 곳이 바로 청년회임을 자각하고 그 긍지를 지녀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원불교의 청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원불교의 준 포교사라는 사명의식을 지니고 각자 자기의 직장이 포교의 무대가 되고 법당이 되도록 이끌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또 지금 우리 교당은 솔직하게 평가해서 발전은 하고 있으나 어느 의미에선 좀 무기력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 무기력 하는 질병의 최대 원인은 교우는 많아도 남자 교우의 출석이 아주 적으며 그 중에도 특히 청년회원이 적다는 것이 그 질병의 핵심이라고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 교당을 볼 때 일반적으로 교당 안에서 나타나는 활발한 활동은 여자 주무급 교우들의 활동이고 남자 교우들 특히 청년회의 활동은 없었거니와 무기휴식 상태에 놓여 있었음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백년 기념총회를 한계점으로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를 시도해 주어야 할 곳이 바로 청년회임을 말하면서 그에 기대를 걸고 또 소망처럼 바라는 것이다. 발달하고 정의롭고 슬기로운 우리 청년들이 이러한 점에 눈을 돌려주어야 모든 교우들도 활기를 얻어 심신이 새로워지고 심신이 새로워져야 또한 신앙생활도 보람차게 되지 않겠는가.
청년회의 발전이 왜 뒤지고 있는가하고 물으면 청년회 간부들의 공통된 답변 중 하나가 교무들의 협조 부족을 들고 있다. 물론 그러한 사례도 있겠지만 교무들의 업무량 폭주로 빚어지는 결과라고 보기 하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청년회의 협조 부족을 탓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벗어나서 어떻게 하면 교무의 업무량을 덜어주느냐에 착안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여 주기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가 부담감 없는 즐거운 관계가 되도록 한다면 청년회는 바람직하게 성장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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