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판에서 목단강까지-
우리 교단의 첫 해외 포교사 박대완 선생
기독교 장로가 입교하여 대판교당 창설
해외포교현황

원광대학 본과 3층에 자리 잡고 있는 해외포교연구소의 문을 노크한다. 톱밥난로의 향긋한 훈김이 왈칵 밀려든다. 여사무원의 하얀 손가락이 바쁘게 영문타자기의 키를 두들기고 있다.
오전 9시, 문이 열린다. 해맑은 청초한 수녀교수(영어)님 숨이 가빠하신다. 꽉 짜인 스케줄로 항상 일과 시간에 쫓기시는 본 연구소장이시다. 우리 교단의 해외 포교 현황을 들어본다.
본 연구소는 소장= 전팔근. 고문 및 후원= 이공주, 박광전, 박장식, 이운권, 김정용, 양도신, 리차드 에이 가드 박사. 「Won Buddhism」사 편집위원= 송천은, 유병덕, 한정원, 랄프 앨 고긴, 아르 딘 윈터, 로날드 슬래스키.
「원 부디즘」은 본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영문판 포교지로 매년 2회(여름 겨울)에 각 4백부를 국내외로 공급하고 있다.
또 하나의 간행물로 영어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로 된 「원불교 요람」이 있다. 영어본은 지금 3판을 계획 중에 있다.
우리 교단이 중대한 현안 문제인 교서번역은 영역부= 전팔근, 영역 보조원= 리베느블 랏셀 양, 브라이안 코우푸, 제이 스탭토우, 주정일(이상 국내). 정봉길, 리베느블 아르던 윈터, 로날드 슬래스키, 랄프 엘 고긴(이상 미국).
현재 「원불교 교전」의 영어 번역이 완료되어 최종 감정 중에 있는데 이 달 말경 인쇄에 넘길 예정이다.
「원불교 교전」의 일본어 번역과 중국어 번역도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 교서의 외국어 번역이 계획 진행되고 있다.
정봉길 선생이 미국에서, 김대현 선생은 자유중국에서 순교무로 활약하고 있다. 서세인 선생이 일본의 순교무로 일하다가 1965년에 귀국했는데 현재 정식 교무를 파견할 단계에 있다. 미국의 순교무로 공적을 남긴 전팔근 교수는 1969년 10월에 귀국했다.
80여 종의 서적과 간행물, 그리고 서신 교환이 미국, 일본, 독일, 자유중국 등 24개국의 2백여 개 처와 이루어지고 있다.
재가 교우로도 공삼현, 정종인, 임향근, 전팔진, 박중권, 원일광이 미국에서, 원법광이 캔다에서, 엣스 스페세가 오스트랠리아에서 활약하고 있다.
수업시작을 알리는 벨이 올린다. 층계를 내려오면서 기자의 생각은 대종사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의 신화
깊이 잠든 한반도, 굳게 잠긴 쇄국의 문이 열려진다. 근대 한국 수난의 막이 오른다. 러시아를 물리친 일본이 보호라는 이름으로 침략한다. 을사보호조약이 한일합방으로 발전한다.
일제의 암흑 속에서 우리의 선진님은 결코 당시의 현상을 비판하지 않았다.
「아- 한반도의 일우 익산 금강원에 모인 우리의 생활, 과연 얼마나 청한하여 얼마나 유쾌한가!」「금강원 일우에서 신고의 생활(엿밥에 연한 아카시아 잎을 소금에 저린 것으로 끼니를 메우면서 일했다.)을 계속하면서도 그 마음속은 철주의 道根이 점점 굳어지며 그 얼굴은 봄바람의 화한 기운이 사계절을 통하여 넘쳐흘렀다.」
대종사 설법하실 때에는 박사시화, 문정규, 김남천이 백발을 휘날리며 춤을 추고 전삼삼, 최도화, 노덕송독이 무수히 예배를 올렸다. 대종사 흔연히 말씀 하셨다.
「이와 같이 훌륭한 법을 배우는 여러분이여! 날마다 즐거워하며 날마다 춤추고 싶지 않습니까. 원대한 발원과 독실한 성의만 있는 사람이라면 다만 몇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완전하게 훈련해 놓으면 능히 이 세계 전 우주를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작은 한반도의 일우 일산 금강원에 있는 우리가 장차 세계의 주인이 되고 우리의 교법을 세계에서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편
대판(오사카) 교당
원기 18년(1933) 12월 26일 경산 조송광 선생에 의하여 대판교당이 창설되었다. 교당의 임원은
▲ 지부장 문성원
▲ 서무과장 염경진
▲ 교무부장 전기영
▲ 교무 조성훈
▲ 재무 정광욱
▲ 서기 오기진
교도는 50여 명, 집회 장소는 서무부장 염경진의 집에서 가졌다.
원기 20년 6월 영산 박대완 선생이 우리 교단의 첫 해의 포교사로 현해탄을 건넜다.
7월 7일(일요일) 오후 8시 박대완 선생은 「사업 흥패는 신성에 있다.」는 연제로 명설교를 했다.
8월에는 대판교당이 둘로 늘어났다. 「대판 서성구 지부」와 「대판 동정청구출장소」로.
경산 조송광 선생
- 1876~1957-
대판교당은 「해외풍상을 무릅쓰고 백발을 흩날리며 공사에 헌신노력 하는」 조송광 선생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선생은 추산 서중안 선생의 뒤를 이어 제2대 불법연구회장(원기 13~21)을 역임한 거진출진이다.
원기 10년 4월 송적벽 선생의 이웃집에 사는 기독교 장로가 대종사를 뵈었다.
대종사 「선생이 보통 사람보다 다른 점이 있어 보이니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장로 「여러 십년 동안 하나님을 신앙해 온 기독교 장로입니다.」
대종사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었다하니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요.」
장로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 하여 계시지 아니하는 곳이 없다 하겠습니다.」
대종사 「그러면 선생께선 늘 하나님을 뵈옵고 말씀도 듣고 가르침도 받고 계시겠습니다.」
장로 「아직까지 뵈온 일도 없고 말을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대종사 「그러면 아직 그리스도의 참 제자는 못 되셨습니다.」
장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뵈올 수도 있고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까?」
대종사 「공부를 잘하여 예수의 심통 제자만 되면 그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로 「바이블에 예수께서 말세에 다시 오시되 도둑 같이 왔다 가리라 하였고 그 때에는 여러 가지 증거도 나타날 것이라 하였는데 참으로 오시는 날이 있겠습니까.」
대종사 「성현은 거짓이 없으시니 공부를 잘하여 심령이 열리고 보면 예수님의 다녀가는 것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로의 눈이 빛났다. 경탄하며 희열에 넘치는 표정이었다. 말씨가 달라진다.
장로 「제가 오랫동안 저를 직접 지도하여 주실 큰 스승님을 가다렸더니, 오늘 대종사를 뵈오니 마음이 흡족하여 바로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절하는 것 같아서 양심에 꺼려지기도 합니다.」
대종사 「기독교에서도 예수의 심통제자만 되면 나의 하는 일을 알게 될 것이며 나의 참 제자만 되면 예수의 한 일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저 종교 이 종교의 간격을 두어 마음에 변절한 것 같이 생각하고 교회 사이에 서로 적대시하는 일도 있지마는 참으로 아는 사람은 때와 곳을 따라서 이름만 다를 뿐이요, 다 한 집안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선생이 가고 오는 것은 오직 선생 자신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입니다.」
장로 일어나서 예배하고 대종사의 제자 되기를 간청한다. 봄바람 같은 자비와 태산 같은 위엄을 겸비하신 대종사의 신비스런 체취와 인품에 사로잡힌 것이다. 대종사의 성안에 그윽한 희열이 물결친다.
대종사 「나의 제자 된 이후라도 하나님을 신봉하는 마음이 더 두터워져야 나의 참된 제자입니다.」
이때 김제교회에서는 특별기도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 생애를 교회의 일에 바쳐온 장로가 어떤 신흥종교로 개종했기 때문이다. 49세의 조송광 선생이 34세의 대종사의 제자가 된 것이다.
교회에서 보면 16세의 소녀가 「마귀의 유혹에 빠져 개종한 아버지」를 모시려 총부에 왔다. 이 소녀가 현 동산선원장이며 여자 수위단원인 공타원 조전권 선생이다.
원기 13년 6월 27일 대종사 법좌에 오르셨다. 대중은 정신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대종사께서 조송과, 송만경, 박대완, 전음광 네 제자를 앞 열에 앉히셨다.
대종사 「만약 이곳에 어떠한 사람이 찾아와서 남자가 세상에 나서 사회에 할 일이 많거늘 어찌 이 같은 궁벽한 곳에 칩거하여 불쾌한 사상으로 용렬한 생활을 하고 있느냐고 비책 한다면 송광은 어떻게 대답하겠어?」
송광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나도 일찍이 기독교 신앙 수십 년에 대종사님을 뵙고 개종했다. 아직 심오한 법훈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무어라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 대종사님의 법은 지극히 원만하고 지극히 평등하여 사람의 정신을 혁명하시니 한 번 우리 대종사님을 뵈옵고 상담하여 보라 하겠습니다.」
<自樂>
만고대의 참 도덕을 목적 삼고 한 곡조를 불러보세.
여기 무궁한 세월이 흘러갈 때 아무 고난이 일지 않네.
현묘하다. 삼강령과 팔조목을 대명 동방에 걸어놓으니
혼몽 중에 생각 없이 살던 사람 천복이 자연 내리도다.
사은사요 소소영령 쓸 줄 알면 문명성세 되리로다.
청정법계 단간심불 우리 생활 이런 영광 또 있는가.
공부 사업 성적표의 제명코자 6일마다 모여앉아 온갖 경전 가진 풍금 백년 향락이 이 아닌가.
일평생 낙은 이것 뿐 도덕일 하다가 이 세상 가도 그 이름 변할 일 없도다.
2심을 먹고 출석은 허사가 아닌가.
자기를 속이면 용신키 어렵다.
삼강령 팔조목을 때때로 잘 쓰면 빈부나 귀천 모두 다 원대로 되겠네.
사은을 알고 사요로 정의를 세우면 말 없는 여러 신명도 전정을 도웁네.
오욕을 탐한 그 사람 누구로 짝할까. 불같은 시험 많으니 취할 것 없도다.
6일歌 좋고 기쁘다. 만곡 중 첫째니 큰 법당에 모여 앉아 나무아미타불
<회보 2>
이 공부 이 사업에 헌신 노력하는 조송광 선생의 법열이 담긴 글이다.
이내마음
이내마음 하늘이요, 이내몸은 땅이로다.
하늘과 땅 그 가운데 무궁보화 실려 있으니
몸과 마음이 다하도록 도덕에 종사하리.
<회보 5>
몸과 마음을 교단과 세계에 바친 조송광 선생은 정녕 구도자였다. 원불교 사도였다.
인재양성단가
시방과 삼계의 내 친우들아
고금의 제일된 법으로
온 천하 인물을 택하여다가
으뜸 될 인재를 양성합시다.
이하생략
<회보 6>
조송광 선생은 인재양성문제를 깊이 생각했다.
법종소리
전략
우주풍진이 고요한 맑은 새벽에
청량하고 삽상한 소리 육합에 차니
오욕 중에 잠든 중생 비로소 잠을 깨고
육금문두 강귀적자 소탕이 되네.
우리들의 기거동작을 어김없이 명령하니
그 위엄도 장할시고 그 형세 크고지라.
천당지옥 방방곡곡에 끝없이 사모치리니
깊은 잠을 깨고 깨는자 영생하리라.
<회보 30>
조송광 선생은 매일 법종 소리를 들었다.
처세가
전략
제일 수양 힘을 얻고 제이 연구 힘을 얻고 제삼 취사 힘 얻으면, 도학군자 예서나고 현인보살 예서나고 명성활불 예서났네.
개인극락 될 것이요, 가정안락 될 것이요, 사회평화 될 것이요, 국태민안 하올지니 삼학공부 어서 하여 처세가로 놀아보세.
<회보 45>
지면 관계로 「처세가」의 끝부분만 적었다. 「처세가」는 선생의 인격과 사상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선생은 일찍이 구산 송적벽 선생의 연원으로 대종사를 뵙고 「나는 산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개종하여, 제2대 불법연구회장 금산지부장으로, 대판교당 창설자로 커다란 공훈을 남기고 갔다.
영산 박대완 선생
- 1885~1958-
박대완(정립) 선생은 우리 교단의 첫 해외포교사로서 길이 기억될 것이다. 선생은
<5면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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