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화 3대 목표 추진 기수들의 좌담회”

때= 원기 56, 3, 31
곳= 본사 편집실
참석해 주신 분
김성학(제원지부장) 진규호(전주주무) 정정훈(광주교우) 장심인행(서울주무) 박은시화(대신주무) 이성신(광주교무) <무순>
사회= 조정근 편집국장
기록= 남해풍 기자
한 명도 입교시키지 못한 날은 허전하기만
총부의 방향제시 교단적인 풍토조성 전체 교우의 합심노력의
조화가 교화 3대 목표 추진 운동의 활력소
다른 종교를 비방하거나 배척하지 말고 그 지방의 신망 있는 사람과 여자를 먼저 확보
초창 교당엔 얼마동안 총부나 기성교당에서 지원
필요한 곳을 가려서 계획적으로 교당을 세워야
(사회)= 원기 48년도부터 범 교단적으로 추진해온 교화 3대 목표는 그 동안 전 교우의 협력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오늘 교화 3대 목표 추진에 앞장섰던 여러분을 모시고 여러 가지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광주교당은 각 분야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어 종합특등을 했는데, 어떠한 계획으로 일했는지요.
(이성)= 상은 광주교당에서 받았지만 먼저 표창 받을 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처음 교화 3대 목표를 시작한 당시의 박은국 교무부장의 창의성을 높이 평가해야 될 것입니다. 교화 3대 목표 추진운동을 시달 받고는 교화의 방안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먼저 단들끼리 경쟁을 시켰습니다. 50년도에 6단과 7단이 각각 6백여 명 이상을 입교시켰습니다. 점심을 싸들고 거리를 누비며 서로 경쟁했습니다. 그때 변중선 선생이 입교하게 되었고, 변선생으로 인하여 크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연원교당을 12개 만들었는데 전남의 지도를 펴놓고 아주 계획을 세웠습니다. 처음 연원교당을 만들 때는 교우들이 서로서로 앞 다투어 살림을 한 가지씩 장만해 주었습니다.
광주는 현재 의식수입이 연간 2백여 만 원이 됩니다. 연간 4백여 회 이상의 각종 재나 제사를 지냅니다. 재를 많이 지내면 그 가족들이 입교하게 되고, 학생들의 자매결연을 통하여도 많이 입교시켰습니다.
광주교우는 한두 사람만이 아니라 수백 명이 불같은 정신으로 노력합니다. 교무가 힘쓸 일이 별로 없습니다. 서로 연원을 챙기고 가정의 부모형제 이상으로 교우끼리의 우호관계가 좋습니다.
총부의 방향제시와 교단적인 풍토조성 교우 전체의 합심 노력이 있으면 교화는 크게 발전할 것으로 봅니다. 교화 3대 목표추진 운동이 이번으로 끝나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된 형태의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겠습니다.
(사회)= 진규호 선생님은 연원교당 만들기에 있어서 불모지를 개척했는데, 어떠한 서원과 계획으로 하였는지요.
(진규)= 뭐 특별한 서원은 없었습니다. 남원이 고향입니다. 처음 입교하고는 교당에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처음 입교하고는 교당에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군산으로 직장을 옮겨서부터 달라졌습니다. 정진숙 선생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진숙 선생이 군산서 또는 전주서 고문을 시켰습니다. 나 하나로 인해서 교단에 폐를 끼쳐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을 했습니다. 제주로 갈 때에는 교정원장님이 연원ㄷ교당을 만들라고 당부했습니다.
처음 아는 사람도 없는 제주에서 변중선 선생의 부탁으로 이세연 박사를 만났습니다. 직장을 포교무대로 삼아 어떠한 자리에서든 원불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종교를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끈덕지고 줄기차게 계속합니다. 청주서는 먼저 종교를 가졌느냐고 물어보고는 갖지 않았다면 원불교를 이야기합니다. 조급하게 생각 말고 꾸준히 노력하면 불교도나 무종교인을 포섭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포교할 때는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르는 사람들이 차츰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몇 전 말해서 안 듣는 사람도 포기하지 말고 오래오래 노력해야 합니다.
성실한 생활태도를 가지고 진실하게 말하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재가 교우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다음에 이들을 신심 있는 교우로 만드는 것은 교무가 해야 할 일이라 봅니다.
(사회)= 김성학 선생은 이웃 지방에 여러 개의 교당을 만들었는데, 진규호 선생의 불모지 개척에 대해서는 대조적인 것 같은데 여기에는 어떤 비결이라도 있는지요.
(김성)= 교무님이 하신 일이고 옆에서 조금 도왔을 뿐이지 뭐 별로 장한 일이 못됩니다.
(사회)= 항상 그렇게 겸양하는데 무슨 비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연원교당 만들기에 교단에서 해주었으면 하는 점은?
(김성)= 초창 교당에는 첫째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총부나 기성교당에서 후원을 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 경제적인 것 이외의 문제는?
(김성)= 초창교당 교우의 수준을 어디다 둘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 지방의 상층을 상대한다면 하층을 포섭하기 어렵고, 하층을 포섭한다면 상층을 포섭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중간에다 표준해서 상하를 다 흡수해야 할 것입니다.
또 그 지방의 신망 있는 사람을 먼저 확보한다면, 그 사람을 봐서 사람들이 믿고 따르게 됩니다. 남자를 많이 확보하면 여자를 붙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초창교당에서는 여자를 먼저 얻어야 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제도하기는 어려우나 여자가 남자를 제도하기는 쉽기 때문입니다.
(사회)= 박은시화님은 연원달기와 연원교당 만들기에 다 좋은 성적을 얻었는데요.
(박은)= 입교한 지가 별로 오래지 않습니다. 처음 입교하고 정법을 널리 펴서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와야겠다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고향과 시댁 두 곳만이라도 연원교당을 세워야겠다고 서원 했습니다. 그래서 고향인 기장, 시댁인 경주, 기장과 경주의 중간인 울산, 경주서 가까운 포항 등에 연원교당을 만들려고 노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당 만들기의 어려움은 지역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기장의 경우는 좁은 곳에 불교 포교당이 있어서 원불교가 커짐에 따라 대립이 생기고, 그들을 흡수하게 되어 비난도 들었습니다. 결국 포교당은 없어지고 말았지만 좁은 곳에서 어떻게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문제됩니다. 경주의 경우에는 워낙 불교의 고장이라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불교 회장과 부녀회장을 찾았습니다. 진 선생님과 같이 납득이 갈 때까지 꾸준히 찾아다녔습니다.
초창교당의 애로가 경제적인 것과 교우가 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많이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교무님의 법문이 좋아야 합니다.
(사회)= 초창교당의 법문의 성격은 어떠한 것일까요?
(진규)= 처음에는 원불교만 좋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여러 종교를 말하고 다음에 원불교를 말해서, 그들 스스로가 원불교의 좋음을 판단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다른 종교를 배척하거나 비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회)= 인과문제는 어떤가요.
(일동)= 잘 이해되어 갑니다.
(김성)= 너무 어렵게 말고 이야기하고 예화도 많이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 교무의 나이는 어떤가요.
(진규)= 지역에 따라 다릅니다. 큰 도시에는 덕으로 다스릴 나이 지긋한 교무를 모시고 그 밑에 활동적인 젊은 교무가 있으면 좋습니다. 조그만 지방에는 젊고 활동적인 교무가 좋을 것입니다. 초창교당의 경우에 남자교무는 어려움이 더 많을 것입니다.
(박은)= 초창교당에서 첫 살림을 늘리고 여러 가지를 의논하기 위해서는 여자교무가 더 좋을 것입니다.
(사회)= 초창교당에 세대교무의 진출가능성은 어떠한가요?
(김성)= 현재로 봐서 세대교무는 시기상조라 생각합니다.
(진규)= 지방교우들이 교무들을 받들고 존경하는 것은 자기 한 몸을 오롯이 교단에 바쳤다는 바로 그 점입니다. 그런데 세대교무라면 일반과 마찬가지로 가정살림을 해야 하고 자식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을 보고는 지금처럼 존경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교당이나 교무를 신성시하는 마음이 세대교무에게는 별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회)= 장심인행님은 어떻게 해서 연원을 많이 달았는지요?
(장심)= 기독교나 천주교도 다녀보았고 오랫동안 옛 불교에 다녔습니다. 다른 종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절에 가서는 법문도 못 듣고 절만 무릎이 닳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떤 사람으로부터 원불교 이야기를 듣고 서울교당을 찾았습니다. 송영봉 선생의 인과법설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법회 날이 기다려졌습니다.
서너 달 후에 영봉 선생이 가고 유성일 선생이 왔습니다. 성일 선생이 10명을 입교시키면 한 명이라도 교당에 나올 테니 많이 입교시키라고 권장했습니다. 이때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종교를 갖지 않았다면 원불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친정인 목포 앞 압해도에 교당을 지어놓고 시댁이나 친정 사람들을 많이 입교시켰습니다. 올해에는 교무님을 모셔가야겠습니다.
(진규)= 초창교당에는 교서, 교재, 원광, 신보 등을 무료로라도 많이 보내어 교화를 후원해 주어야 합니다. 이 점은 총부 당국에 요청하고 싶습니다.
(사회)= 정정훈님은 교화 3대 목표 추진기간 동안 연원달기에 1,488명이란 천문학적 숫자를 기록했습니다. 말을 듣기에 아픈 사람들에겐 깨죽을 쑤어가서 입교시켰다고 합니다.
(정정)= 길을 가면서도 언제나 입교시킬 사람이 없나 그것만을 생각했습니다.
(진규)= 제주서 얼마동안 같이 있었는데 이아기 있는 집안에는 과자를 사들고 가서 이야기를 시작해 입교시키기도 했습니다.
(사회)= 정정훈님은 광주바닥에서 내의 하나 새 것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언젠가는 며느리가 새 내의 한 벌을 사 가지고 왔는데 교무께 팔아달라고 부탁해서 입교시키는 경비로 사용했습니다.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도 못하면서 자기 돈으로 입교시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한글을 모르지만 교도증이 나오면 연원들에게 틀림없이 찾아준답니다. 정신이 그처럼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정정)= 머릿속에 입교시킬 생각밖에는 없습니다. 한 명이라도 시켜야 그 날은 살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5년이 되어도 말을 듣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번에 연원달기에 1등을 한 이광석씨도 반년 이상을 애먹었습니다. 그랬는데 입교한 후 그렇게 잘할 수가 없습니다.
(박은)= 옛 불교도들은 입교시키기가 쉽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을 따라 같이 절에도 가주면서 다음에 원불교로 갈이 와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원불교가 좋음을 판단하게 합니다. 교당 불리기에 원불교법이 좋다고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사명감을 갖고, 하면 된다는 신념과 자신을 갖고 마음속에 조그마한 자존심도 버리고 노력한다면 성공하고 맙니다. 원불교는 사교란 말까지 들으면서도 자존심을 버렸기 때문에 몇 번이나 찾아 끝내 성공한 일도 있습니다. 기독교도는 어렵지만 불교도나 무종교인은 입교시킬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 제마다 고향이나 시댁 있는 곳에 연원교당 불리기 운동을 전개했으면 좋겠습니다.
(진규)= 초창교당 지원기금이 확보되면 교당불리기가 빠릅니다. 이제 교화재단에서 초창교당 육성자금으로 얼마동안 지원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경제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고, 차차 스스로 알아서 경제부담을 하도록 해야합니다.
(김성)= 연원교당 불리기에 무리한 계획은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s수라도 필요한 곳에 집중하는 계획이 있어야겠습니다. 즉 면소재지 같은 곳은 당분간 쉬고 아직도 교당이 없는 시나 군소재지에 계획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전남북에는 면소재지에도 교당이 많지만 충남북 가원 경기는 시나 군 소재지에도 없는 곳이 많습니다. 이제는 이런 곳에 집중지원해서 전국에 골고루 유효 적절한 교당 불리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사회)= 여러 가지로 좋은 의견 많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차원에서 교세확장을 위한 총부 당국의 계획이 세워져야 하고, 교단적 풍토가 조성되어 재가·출가가 모두 앞장서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이 세상에 널리 펴가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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