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요 천문학자인 갈릴레이(1564~ 1642)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기여했다. 이것은 당시 교회에서 주장하는 우주론에 역행하는 증명이었다. 그는 1632년에 간행한 <천문학 대화>에서 표면상 천동설의 승리를 구가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지동설의 옳음을 표시했다. 그리하여 격렬한 비난을 받고 고발되어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는 표면상 굴복하여 지동설을 철회하는 것 같았으나 “그래도 역시 지구는 돈다.”고 하여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가 죽은 후 공적으로 장례를 지내는 일도 묘비를 세우는 것도 허가되지 않았다. <천문학 대화>는 1835년에 이르러서야 금서목록에서 풀렸던 것이다.
갈릴레이보다 조금 앞서 철학자 브루노(1548~ 1600)도 역시 지동설을 지지하였다 하여 이단자로 몰려 7년간의 옥고를 치룬 후 1600년 2월 로마에서 화형 당했다. 브루노는 그의 주장은 조금도 굽히지 않았고 “지구는 돈다.”는 말을 남기고 죽어갔던 것이다.
브루노나 갈릴레이가 아무리 이단자로 몰려 핍박을 받았어도 그들이 주장한 지동설은 임연히 진리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들을 이단자로 몬 교회가 옳았던가 아니면 이단자로 몰린 브루노나 갈릴레이가 옳았던가는 오늘날 명백히 증명된 것이다.
루터(1483~ 1546)의 종교개혁이 성공하기까지에 우리는 위클리프(1329~ 1384)와 후소(1370~ 1415)의 두 사람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의 종교개혁자 위클리프는 그의 유명한 저서 <신의 통치>와 <세속의 통치>를 통하여 교회의 분열과 악습, 감독의 사치풍조, 걸식수도사들의 폐단 등을 비판하였다. 1382년 영국 교회 회의에서는 그의 가르침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1415년 콘스탄스 대회에서는 위클리프의 죄상을 무려 267항목이나 나열하고 그의 뼈를 파내서 불태워 강물에 뿌리도록까지 결정하였다.
위클리프를 가리켜 “개혁의 새벽 별”이라 한다. 그는 당시 교회의 잘못을 시정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고, 그의 교훈에 따라 조직된 <가난한 전도자>라 불리는 롤라드 전도대는 세속사회 어디에나 침투하여 복음의 참 뜻을 전파하기에 헌신하였다.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체코의 종교개혁자 후스는 구령(救靈)예정설을 제창하였으며 성직자의 토지 소유의 세속화에 반대하였다. 따라서 그는 이단자로 규탄 받고 성직을 박탈당했으며 1415년 7월에 화형당하고 말았다. 호소는 교회개혁에 열성을 다하였으며 자기 자신의 정결한 생활태도를 견지하였다. 그는 자기의 소신에 대해서는 굽히지 않았고 종교재판에도 숙연한 모습으로 임하여 시종여일하게 생을 마쳤던 것이다.
위클리프나 후스를 비롯한 많은 종교 개혁가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루터의 종교개혁이 과연 성공할 수 있었던 지는 의문이다.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바칠 수 있었던 희생정신 때문에 종교개혁은 성실할 수 있었고, 종교 개혁자들은 이단으로 정죄한 자들은 오히려 종교 발전의 죄인이 되었던 것이다.
불교적 윤회설에 입각해 본다면 위클리프나 후스는 루터의 전생이었는지도 모른다. 서가모니가 전생에 수백 생을 닦아서 마침내 부처가 되었고, 우리의 소태산 대종사가 과거 생에 많은 회상을 펴오다가 마침내 가장 큰 회상으로 원불교를 창립하게 된 것은 이 모두가 돌고 도는 진리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는 돈다.” “인생은 돈다.” “생사도 돈다.”  결국 진리는 돌고 도는 것이다. 돌고 도는 진리 그것이 곧 일원상의 진리다.
흥망성쇠, 성주괴공, 생로병사, 춘하추동, 생주이멸, 이 모두가 돌고 도는 진리인 것이다.
가는 자가 오는 자요, 오는 자가 가는 자로다. 주는 자가 받는 자요, 받는 자가 주는 자로다. 인생은 이처럼 돌고 도는 것이 아닌가.
오늘의 강자가 내일의 약자가 되고, 오늘의 약자는 내일의 강자가 되는 것, 강대국과 약소국의 관계도, 권력자와 핍박받는 자의 관계도 모두 다 돌고 도는 진리 따라 한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지구는 돈다. 인생도 돈다. 강자 약자도 돈다. 진리는 돌고 돈다. 쉴 새 없이 돌고 도는 일원상의 진리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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