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 슬기와 총화로 국난을 극복하자.

지난 10월 27일 우리나라는 불의의 돌발 사태로 인하여 비상계엄 하에 놓이게 되었다. 김성진 경부 대변인의 공식발표에 의하면 10월 26일 오후 6시에 중앙정보부 식당에 마련된 만찬에 참석 중인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아 급거하였다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 비보는 이 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 경악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정부 요로의 현관이 국가 원수를 시해하였다는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서는 현재 가해자와 관련자들을 계엄 당국이 구속 조사하여 그 전모가 밝혀져서 그들은 그들 죄 값을 받겠지만, 이 나라 온 국민은 지금 박정희 대통령의 불행한 서거에 슬픔을 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 74년 부인 육영수 여사를 흉탄에 잃고 아직도 그 쓰라린 경험이 생생한데 그 자신마저 불시에 비명에 갔다는 사실을 돌이켜볼 때, 한 가정으로 보나 한 인간으로 보나 이보다 더 참혹하고 불행한 일이 또 어디 있다 하겠는가. 하물며 도의를 앞세우고 예양(禮讓)을 숭상한다는 문화민족의 강토 그 한 울안에서 그런 끔찍스러운 변칙이 자행됐다는 것은 이 땅에 사는 이 겨레로 하여금 두고두고 가시지 않을 오욕이요 한이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왕사(往事)를 말하여 무엇하랴마는 백범 고하 몽양 설산 같은 민족의 거성들이 한결같이 저와 같은 변칙 자행으로 쓰러졌다는 악몽의 사실을 상기할 때, 이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제 손으로 제 눈을 빼는 따위의 어리석음이 절대로 되풀이 돼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이 분명히 서져야 하겠다.
이제 우리들은 충격과 슬픔을 박차고 혼미를 떨어버리며 의연히 일어서야 할 때다. 우리들의 슬기와 저력을 온통 한 데로 집중하여 나라의 위난(危難)을 극복하는 총화와 전진의 기상이 추호도 흩어지거나 나약해져서는 안 된다. 지금 세계의 이목은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국내 상황은 정상과 안정이 평상시나 다름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하니 이 얼마나 미쁘고 고마운 일이겠는가. 자고로 우리 겨레는 내우외환을 당할 때마다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드높은 슬기와 경륜과 끈질긴 인내력을 통하여 백 번을 넘어진 땅에서 다시 백 번을 일어설 줄을 알았다.
박대통령 재위 18년, 고난의 멍에를 지고 그동안 쌓아올린 가지가지의 찬란한 업적들은 과연 그 누구를 위한 보람이겠는가? 이것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들 자신이 차지할 수밖에 없는 혈심노력의 소산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들의 꿈과 피땀, 그리고 우리들의 끊임없는 생명의 의지를 투자하여 이루어나가는 오늘날의 온갖 삶의 작업은 단 한 때인들 중단될 수 없고 또 중단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안보 태세의 강화가 그러하고 경제 성장이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이와 아울러, 보다 더욱 중단돼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은 정신개벽의 그 역사(役事)요 인간회복의 과업이다. 안보를 튼튼히 하자는 것, 경제를 풍요하게 이뤄내자는 것 이것은 도무지 무엇 때문이겠는가? 정신문화 인간문화 나아가서는 인류평화에 이바지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잘 살기 위하여 사람 노릇하기 위하여 그만한 여건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의 질서, 평화의 이상은 일체의 욕구를 선행하여 우리 모두에게 방향을 제시하여 주고 뚜렷한 목표를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공동목표가 선행되어 있지 않는 어떠한 산업주의 물질주의도 그것은 정신의 질서를 교란하고 인간을 물질의 노예로 지배하려는 반도덕적인 세력인 것을 이 기회에 더욱 명심하고 각자가 하는 그 일을 통하여 먼저 정신의 질서 확립에 주력하여야 하겠다. 삼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 슬기와 총화로 국난을 극복해 나갈 것을 다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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