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인도를 저버릴 때 부정부패는 만연된다.

정의와 정치권력이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의해서 인류의 역사는 밝아지기도 바고 어두어지기도 하였다. 권력이 정의를 실현할 때 인류의 역사는 발전하였고, 정의가 권력에 의하여 침해를 받을 때 인류는 질곡 속에서 허덕이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권력자가 자기 개인이나 자기 무리의 영달에 눈이 가리어 정의와 인도를 저버릴 때 그 사회에는 부정부패가 만연되고, 인생은 도탄에서 허덕이게 마련이었다. 미국의 「링컨」대통령은 정의와 인도를 위하여 조그만 나를 초월하였기에 노예 해방이란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중국의 진시왕은 자신의 향락과 영화를 위하여 정의와 인도를 버림으로써 민중의 원증이 드높았으며, 마침내 그는 폭군으로 단죄되어 멸망하고 말았다. 이조 오백 년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슬기에 찬 성군 세종대왕께서는 정의와 인도에 입각한 성덕을 베품으로써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나, 한 나라의 군왕으로서 정의와 인도를 아랑 곳 없이, 사사로운 폭군 연산군은 수많은 사화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우리의 역사를 욕되게 만들지 아니했는가? 「필리핀」의 「막사이사이」대통령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 사심 없이 자신을 바쳤기에 타협을 모르는 공산당까지도 그를 따르고 받들게 되었으나, 우리나라의 자유당 정권은 자신들의 영화에 눈이 가리어, 엄청난 부정을 자행하면서까지 정권 유지에 급급하다가, 마침내 정의를 위하여 봉기한 학생들 앞에 굴복하고야 말지 아니했는가? 자유당 정권은 부패할 대로 부패한 그들의 타락상을 지탄하는 정의의 인간을 걸핏 공산당이라, 몰아 세웠고, 북한 괴뢰 정권은 민중이 고분고분 순종하지 않을 때 걸핏 반동이라 몰아세운다. 자신들의 영화를 위하여 정권 유지에 급급하게 될 때 정의와 인도가 눈에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물론 북한 괴뢰 정권이 4·19 의거를 악 이용하려 했던 사실을 우리는 한시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의를 위하여 일어선 학생들의 순수한 애국 충정을 모독해서 안 된다 함은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하여 학생들의 순수한 정의감은 없어서는 아니 될 소중한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나라의 수도 서울에는 위수령이 발동되었으며, 일부 대학에는 무기 휴업령이 내려져있다. 이는 국내· 외의 어수선한 정치 정세 상황에서 정부로서도 부득이 한 비상 조치였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또한 정부 당국이 발표한 바와 같이 북괴의 악랄한 상투 수법이 학생들을 악 이용하기 위하여 온갖 책략을 꾸미고 있으리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용하려는 것이 이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여야 정당간의 불미스런 추태는 더욱 크게 이용될 가능성이 이으며 여당 자체 내의 불협화음도 그들의 이용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반공 태세를 더욱 강화하여 차원 높은 승공태세 확립이란 이름 아래 학생들의 순수한 정의감을 짓밟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오히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학생들의 이 순수한 정의감과 애국충정을 어떻게 하면 올바로 살려줄 수 있을 것인가를 모색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정부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감을 해소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교련 실시의 목적이 학생들을 옭아매려는 수단으로 이용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민족의 부흥 원동력이 된 「국민개병 태세」를 갖추는 데 있는 것임을 행동으로 확실히 보여 주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정부패」문제가 70년 총 선거의 가장 큰 쟁점이었을진대, 새 정권은 그에 대한 과감한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전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정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끝으로 학생 제군들에게 거듭 당부하고 싶은 것은 북괴가 여러분을 이용하지 못해서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과 청소년 시절에는, 일단 불신감에 사로잡힐 때 사태가 바로 잡혀진 후까지도 그 선입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폐단이 있다는 점을 마음에 깊이 되새기면서 행동해주기 바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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