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단 사무 감사를 앞두고-

원불교는 새 시대의 새 종교임을 스스로 자랑한다. 지나간 시대는 숨겨졌던 시대요, 어두웠던 시대인데 대하여 새 시대요, 드러나는 시대요, 밝아지는 시대이다. 우매하던 인류가 두뇌가 학문의 발달로 활짝 열리게 됨으로써 자연의 지배를 받아오던 인류는 이제 자연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류의 두뇌가 활짝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정신의 근원적인 광명이 발현되지 못한 곳에 현대 인류의 갈등과 불행이 있는 것이라 전 세계 석학들은 이구동성으로 지탄하고 있다. 즉 우리 인류가 자연의 힘을 개발하고, 이용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자연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으나 인간 자신의 보다 깊은 내면적 지혜를 자각하고 체현하는데 실패함으로써 인간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 곳에 현대의 불안과 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대종사는 이러한 상황을 미리 내다 보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로써 본교를 새롭게 펴는 뜻을 천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확실히 밝혀두어야 할 것은 이 표어의 의도가 물질의 세력을 배제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물질의 힘을 최대로 허용하되 그 힘을 슬기롭게 사용할 줄 아는 정신의 힘을 기르자는 것이다. 지난 시대는 흔히 종교의 문에서 물질을 천시하거나 도외시함으로써 수도 생활에 현실생활에서 멀어져 가는 폐단이 있었다. 그러나 새 시대의 새 종교는 물질의 힘을 경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며 그러기에 대종사는 영육을 쌍전하라 교시하였고, 더욱 나아가 현실 생활을 떠난, 수도생활이 따로 있을 수 없음을 천명하였으니 그것이 곧 불법시생활이요, 생활시불법이라 표어 정신이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표어 정신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우리 교단은 10여 년 동안 거교적으로 추진하여 온 반백년 기념 성업을 돌이켜보면서 그 장단을 가리어 후일의 구감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다. 그 일련의 작업으로써 지난 11월 2일 반백년 사업회에 대한 결산 감사가 실시되었다. 듣건데 지출에 따르는 증빙 서류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지출 세목조차 정리되지 못한 것이 있다고 하니 이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경우 우리는 믿는 동지들끼리이니 사소한 세목까지 밝혀 놓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을까? 물론 우리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바는 아무 서류가 없이도 서로 믿고 지출할 수 있는 세계의 건설이다. 그러나 그 세계에 도달하기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정리해 놓은 서류에는 사실 내용과 일호도 다름이 없고 누가 보아도 일목요연하게 지출내용을 알아 볼 수 있는 철저한 문서의 관리이다. 법은 법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것이나, 지금 우리는 법치국임을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기에 대종사는 정신 교화에 전념하는 제자가 한 사람이라도 아쉽던 초창 당시에 한 제자를 경리학원에 보내어 경리사무를 배워오도록 하지 아니했는가? 또한 일단 적발된 내용에 대하여 우리 동지들끼리니 적당히 덮어두라는 논가가 성립될 수 있을까? 우리 종단은 도가이니 일반 사회에서와 같이 형벌로 문책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책임을 교법으로써 철저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가능한 데까지는 그릇된 내용을 시정시킴으로써 누구나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처리하는 기풍을 더욱 조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대종사는 대자 대비한 가운데도 추상같은 호령을 아끼지 아니했다고 아니하는가?
우리도 도법에 경리 관리를 떠난 곳에서 따로 닦아지는 것이 아니라 함이 불법시생활의 표어 정신이요, 육신 생활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경제 관리를 시범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곳에 영육쌍전 하는 새 종교의 면모가 있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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