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8월은 盛夏의 계절이다. 여름이란 계절은 땀을 많이 흘려야 비로소 그 진미를 맛볼 수 있다.
 조물주의 조화란 참으로 기기묘묘하다. 봄여름 가을 겨울이다. 각기 독특한 즐거움이 있다. 화창한 봄 날씨 태양이 불타는 여름, 서늘한 가을, 눈보라 치는 겨울, 이 모두 얼마나 아름다운 계절인가?
 대지가 뜨겁게 불타는 폭양 아래, 검붉게 탄 얼굴에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은 차라리 성스럽기만 하다.
 가을의 그 황금 빛 풍요로움도, 여름날의 땀방울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의 보람도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여름날 시원한 그늘에서 즐겁게 노래만 부르다가 눈오는 겨울에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는 베짱이와, 뜨거운 태양아래 구슬땀을 흘리며 쉬지 않고 일을 하여 추운 겨울도 무사히 넘기는 개미의 이야기는 매우 교훈적인 것이다.
 이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그늘이나 서늘한 바닷가를 찾고 싶은 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나 비 오듯 흘리는 땀방울이 더욱 가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많은 젊은 대학생들이 농어촌을 찾는다. 소위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캠퍼스 안에서 진리 탐구에 열중하던 그들이 농어촌을 찾아, 비지땀을 흘려 본다는 것은 분명 뜻 깊은 일이다. 한 숟갈의 밥이 사람의 입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담이 흘러야 하는가를 실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책상 앞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진지하고 엄숙한 자세로 땀방울의 의미를 잘 배워주기를 충심으로 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바캉스 계절이란 말이 유행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제발 금년 여름만은 바캉스의 재벌이란 단어가 신문지상에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에 수백만의 피서객들이 산으로 바다로 몰려들었다는 큼직한 신문 기사들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벌거숭이들의 대문 짝 만한 사진들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에 수백만의 지식인들이, 도시인들이 농촌을 찾아 땀으로 목욕했다는 기사가 날마다 대서 특필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교단은 7월과 8월에 걸쳐 각종 하계 훈련이 실시된다. 이리 총부에서, 신도안에서, 영산에서, 무주구천동에서 실시되는 이들 각종 훈련이 모두들 땀 흘리는 훈련이 되기를 기대한다. 행여라도 피서를 겸한 훈련이 되지 않기를 빈다.
 훈련이란 결국 범부중생의 습성을 버리고 부처 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서가 모니 부처님은 이 세상 만 중생들의 묵은 마음 밭을 갈기에 얼마나 많은 땀을 흐렸던가?  우리 소태산 대종사님은 병든 사회를 개조하고, 인류의 병든 마음을 치료하기에 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던가? 불보살이란 결국 담을 많이 흘린 사람들이다.
 땀 흘리기를 싫어하는 사람, 일을 피하고 편안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떻게 불보살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땀이란 결코 가난한 농부나 비천한 노동자가 흘리는 것이 아니다. 성현 불 보살이 사회의 지도자가 더 많이 흘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일찍이 백장선사는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렸으면서도 날마다 호미를 들고 밭을 매지 않았던가?
 일일불작 일일불식이란 말은 백 권의 서적보다 더 소중한 말이 아닌가?
 우리나라가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은 모든 국민들이 땀을 많이 흘리는 길뿐이다. 세계의 강국이 되는 길도 오직 이 길 뿐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지도층과 지식인부터 많은 땀을 흘려야 한다.
 우리 교단이 제생의세의 사명을 다하는 것도 역시 땀을 흘려야 한다. 이 여름에 출가 재가, 선진 후진 모두 모두 땀을 많이 흘려야 한다. 하계 훈련 또한 땀 흘리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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