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을 기르지 않으면 원불교의 미래가 없다

▲ 윤경일 교무 · 서울보화당한의원
해산 대호법은 해외 인재양성에 주력해 달라는 대산종사의 유시를 받들어 해산원광한의원을 독자적으로 개원했다. 새로운 도약과 발전적 방향을 위해 폐업할 때까지 해산원광한의원은 해외교화 개척을 위한 인재육성사업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와관련 윤경일 교무는 "해산국제육영사업회는 해산 대호법이 희사한 기금과 건물·토지의 임대수입과 운영위원들의 회비 및 본회의 취지에 찬동한 교도의 성금으로 운영해 오고 있다. 또한 운영위원들의 자발적인 후원과 활발한 활동으로 해산 대호법이 염원하셨던 국제교화 인재양성 목적사업을 위해 과천 토지 및 영등포상가 등의 발전적 방향 모색과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교단 내 인재양성사업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해산국제육영사업회의 새로운 도약과 발전적 방향을 위한 것이다.

윤 교무는 "해산 대호법은 교단의 필요한 곳마다 근검절약으로 모은 재산을 상없이 교단에 희사하신 호법공덕주이다"고 평했다.

이러한 해산 대호법은 이북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이다. 혈혈단신이었던 만큼 그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해산 대호법은 여기에 좌절하지 않고 돈 버는 일에 몰두했고 장사라면 해 보지 않은 일이 없을 만큼 좋고 궂음에 관계없이 열심히 일했다.

원기 57년 입교 후 속 깊은 공부로 새 회상의 창업 시기에 자신이 할 일이 결코 적지 않음을 깨달은 후 교단 일에 혈심혈성을 다했다.

윤 교무는 "2대말 성업봉찬 기념사업회의 재무위원으로 협력하였던 해산 대호법은 대산종사의 부촉을 받들고 '해산국제육영사업회'를 만들어 회장의 책임과 함께 해외교화 개척을 위한 인재육성사업에도 정열을 다하였다"며 "해산원광한의원을 독자적으로 후원하여 인재양성에 뒷바라지 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윤 교무는 "강남교당 건축의 후원자, 서울회관 건립에도 기꺼이 동참하고, 강릉교당 후원, 만덕산초선터 기념비건립 후원 등 교단이 필요로 하고 스승님들이 염원하는 일에는 힘 미치는 대로 최선을 다하는 공덕주이셨다"고 평했다.

이처럼 해산 대호법은 자신의 생활은 물론 자녀들에게까지 극히 검박한 생활을 강조하셨으나 공도사업을 위해서는 머뭇거림 없이 정재를 희사했다. 재산이 넉넉해서만 공도에 희사하신 것은 아니다.

윤 교무는 "어느 날 자신이 타고 다니던 승용차를 팔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셨다. 이유는 월 운영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모아 공도 사업에 사용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을 덧붙였다. 스승의 명이라면 두 마음을 가지지 않은 특별한 신성으로 오롯하게 공도사업에 일관하셨던 해산 대호법은 과천에 요양을 겸한 병원과 해산원광한의원 운영을 통해 인재양성을 꿈꾸었다.

윤 교무는 "해산 대호법은 후진을 길러내는 인재양성을 중요하다고 보았다.일찍부터 인재양성 중요성을 인식하고 해산국제육영사업회를 열어 인재양성의 기초를 다졌던 해산 대호법의 뜻을 받들어 인재양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진을 기르지 않으면 원불교의 미래가 없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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