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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종교와 국민운동
사설=종교와 국민운동
  • 원불교신문
  • 승인 1972.05.01
  • 호수 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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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이념을 새롭게 펼 때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새마을 운동의 정신적 측면을 적극 지원하라는 당국의 지시가 있었고, 일선 교당에서는 각 교당 나름대로 이 운동에 협조하고 있다고 한다.
새마을 운동의 목표는 정신풍토 혁신 및 생산구조 개선을 통해서 잘 사는 새마을을 건설하는 데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운동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하여 행정력이 총동원되어 있고, 온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을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참여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흔히 행정력이 동원되어 이러한 범국민적 운동이 전개될 때 일부 행정 당국의 공명심과 과격한 의욕으로 말미암아 ① 전시 효과를 노리는 데 치달아 겉치레가 되었을 뿐 실속이 탐탁하지 못한 경향이 있었으며 ② 그 운동의 본 의의가 행정 당국자의 일방적인 마음속으로 침투되지 못한 경향이 있었으며 ③ 따라서 겉치레가 끝나고 행정 당국의 열이 식으면 용두사미 격으로 흐지부지 끝나 버리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금 추진되고 있는 새마을 운동을 우리 교단이 지원하는 길은 국민 대중의 마음속에 이 운동의 의의를 일깨워 주는 정신 운동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정신 운동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본래의 우리 사명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교단에서는 정부에 앞서서 새마을 운동의 정신을 확연히 제시하지 아니했는가? 이것이 바로 대산 종법사께서 연두사로 내려주신 신생활 운동 강령이다. 그 운동 강령은 7종목에 걸쳐 42항의 세목을 온 국민이 똑바로 인식하고 실천하게 될 때 우리가 바라는 잘 사는 새마을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교단의 역사를 거슬려 살펴볼 때 신생활 운동의 강령은 이미 우리 회상 창립 정신인 근검절약, 이소성대, 일심단결, 사무여한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자립, 자조, 협동의 신생활 정신이 「자력양성」이란 사요정신에 투철하게 제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신생활 정신이 우리 회상 창립과 더불어 면면히 이어내려 온 것이며, 바로 우리 회상 전개의 동력이 되어왔다고 할 진대 우리가 새삼스럽게 신생활 운동 강령을 제시하는 의의가 어디 있을까?
우리 교단의 지금까지의 정신 운동 방향은 교단 자체의 내실에 치중하였고, 주로 개별 교화의 방법을 취해왔다. 또한 이것이 건실한 교단 발전의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반백주년 기념 대회를 계기로 안으로 다져온 실력을 바탕으로 세계적 교단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힘찬 첫걸음을 이미 내딛지 아니했는가? 이제 우리 정신 운동의 방향은 교단 내실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도, 일원의 광명을 교단 밖을 향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던지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개별교화 방법을 꾸준히 활용하면서도 집단 교화의 방법을 도입 활용하여야 할 단계이다. 우리 교단이 세계적 교단으로 신속히 전개할 수 있는 관건은 바로 이 집단 교화의 방법을 우리 교단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바로 여기에 신생활 운동 강령을 새삼스럽게 제시하고 강조하는 의의가 있는 것이다. 집단 교화의 범주는 광범하여 간단히 규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사회 집단에 뿌리 박혀 있는 악습을 뿌리 뽑고, 바람직한 생활 습관 형성을 목표로 대담하게 전화시키는 사회 운동이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낙후된 우리 농촌을 잘 사는 마을로 바꾸기 위하여는 신생활 운동이야말로 우리 집단 교화의 바람직한 형태의 하나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생활 운동은 결코 정부 당국의 새마을 운동과 운명을 같이 할 수 는 없다. 불행히도 행정 당국의 의욕이 감소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신생활 운동은 더욱 힘차게 꾸준히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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